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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흔적들


BY 빨강머리앤 2004-11-23

오버코트를 꺼내 입은지 벌써 오래고 야외 활동이 있는 날엔 오리털 파카도 걸쳐 입었다.

화려했던 단풍 행렬이 정말 그자리 그곳에 있었기나 했을까, 싶을 만큼 잎새를 떨구고 앙상하게 서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벌써 나는 춥다.

더구나 어제는 절기상으로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되고 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아니던가,이젠 어쩔수 없이 눈앞에서 발견되고 느낌으로 감지되는 겨울의 징후들...

추위에 민감한 나를 걱정한 언니는 일할때 춥지 말라고 전기방석을 사다 주었다. 엉덩이가 뜨끈해 지면서 온몸이 노긋노긋... 아, 벌써 이런 뜨뜻함이 참으로 좋기만 하니 겨울은 분명 겨울인가 보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언니 한테 맡긴 김장이지만 김장도 끝냈다. 김장김치로 가득찬 김치냉장고의 묵직한 무게가 느껴질때의 그 뿌듯함은 뭐랄까, 꼭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월동준비도 어느정도 끝났고 며칠 감기로 고생한 아이들도 다시 활기를 되찾으니 이젠 소복히 눈이 내려주는 일만 남았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름답고도 아픈 가을을 보냈다. 주말이면 시간이 아까워 가만 있지 못하고 길을 나섰었다. 단풍이 유난히 고왔던 올가을, 주변에서 그리고 먼데서 단풍빛 고운 소식이 나를 자꾸만 불러 냈었다.

남한강변을 끼고 작은 숲을 형성한 수목원의 첫가을은 햇살아래 반짝이는 물빛을 닮았었다. 용문사 가는길,노란 은행나무 가로수길에 쏟아지던 풍요로운 가을빛은 얼마나 눈이 부셨던가! 그 차고 넘치던 햇살들이 부려놓은 황금빛 들녘은 또 얼마나 풍요로웠던가.

천년을 살아낸 은행나무가 키워낸 수천개의 은행알들의 신비를 기껏해야 백년을 살까말까한 우매한 인간들이 어찌 풀수가 있었을까?

다시 가도 그리 깊이 감동할수 있을까 싶은 미천골의 가을빛은 여전히 나를 감동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어쩌면 미천골로 하여 나는 가을을 앓았을 지도 모르겠다. 내 딛고 서 있는 현실의 세계와는 다른 결코 가 닿을수 없는 그 어떤곳의 이미지를 품고 있던 곳....어쩌면 천상의 아름다움이 잠시 인간세계로 와서 화려한 가을을 잠시 수놓았던건 아니였을까 싶은 미천골의 단풍숲이 현실의 나를 흔들어 놓았던 탓이 아니었을까?

 

아파트 앞 어린느티나무 잎새를 다 떨구고 가을이 갔다. 먼데 단풍숲 뿐만이 아니라 집앞 느티나무 잎새도 노란단풍으로 아름다웠던 날들... 행복과 고통이 교차하던 시간들과 함께 가을이 갔다. 내게 있어 올 가을은 길고도 짧았던 날들이었다.  가을이 빨리 가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이대로 가을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수시로 바뀌었던 변덕스러운 날들이었다.

이젠 숙연해 지는 법을 배워야 할것 같다, 마른잎새처럼 고요히 흙으로 스며드는 법을 매워야 할때인듯 하다.

나의 뒤척임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상처로 나마 남은 지난계절을 기억하기 위해 가을의 흔적들을 가슴에 새긴다.

끝내 실한 열매를 키워내지 못했지만 아이의 화분에서 자라던 수세미의 눈부신 노란꽃과

채송화에게 자신의 영토를 반쯤이나 내주고도 끝내 탐스런 꽃을 피워낸 국화꽃 다섯송이와

햇살을 가르며 비상하는 앞동의 아파트옥상에 둥지를 튼 비둘기 두마리와

여전히 청록의 푸르름으로 서있는 잣나무의 행렬과

붉은 잎새로 사그러 들면서도 결코 당당함을 잃지 않은 메타세콰이어의 마지막 위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