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의 서울나들이 끝에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을 만났다.
구리나들목, 아차산 중간쯤에서 였다. 샛노란 자작나무숲을 우연인듯 마주하고 나는
오랫동안 간직한 그리움 앞에 선 사람마냥 짐짓
터져나오려는 탄성을 입막음으로 한단계 늦추고 천천히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싶었다.
자작나무는 목하 가장 아름다운 노란색 단풍으로 가을을 나고 있는 중이었다.
혹,자작나무만이 노랗게 그곳을 차지하였다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숲은 그러하였다. 숲 중앙에 아직도 청록색으로 푸르른 잣나무가 무성하였다.
방점을 찍어놓은듯 그 부분만 짓푸른 초록숲이 덩그렇니 놓여있고
그 주변을 감싸고 한창 타오를듯 노란 자작나무가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초록과 노랑 조화는 지상의 모든 총천연색중 그중 으뜸이 아닐까 하고 그 숲을 보며
생각해 보았다.
적어도 가을햇살아래 청록의 잣나무와 어울린 노란자작나무숲이 주는
느낌 앞에서는 누구도 그말에 수긍을 할것이라 감히 장담을 할 정도로
두가지 색의 조화는 아름다웠다.
아차산도 여느산과 마찬가지로 소나무가 듬성거리는 틈을 참나무류가
메우고 있어 갈색의 단풍으로 펑범해 보였다. 다만, 자작나무 숲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느해 보다 단풍빛이 곱다는 올가을 단풍.. 깊은 산중에서 만나는 단풍은
말할것도 없고 가까운 야산의 단풍빛도 여느때보다 붉어서 곱다.
심지어 길가의 가로수로 심어둔 은행나무 잎새도 올해엔 유난히 선명한
노란빛이어서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어인 행운인가 싶어 행복해 진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운동장 한켠에 심어둔 오래된 은행나무가 노란은행잎을
하늘하늘 떨어뜨리는 모습을 마주하며 문득 자작나무가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주었던 두편의 영화를 생각했다.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서있는 두 주인공
언젠가 영화감상을 써놓았던 '집으로 가는길'에서의 자작나무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가을햇살을 받고 찰랑이듯 반짝이던 자작나무 숲이 주인공인
장쯔이 못지 않게 훌륭한 주연이 되었던 영화였다.
주연배우의 뒤를 항상 따스한 색감으로 채워주던 자작나무 숲은
하얗게 가느다란 줄기의 노란잎을 가득단 채로 흔들리며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영상을 완성시켜 주었던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높진 않았으나 산을 가득 채운건 자작나무 외에
다른 수종(樹種)은 단 한그루도 없이 오로지 자작나무로만 된 산이었던 점이다.
아무려면 한가지 수종으로만 이루어진 산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햇살을 받고 기뻐 함성을 지르듯 반짝이는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던 내겐 영화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장면마다 한번씩 얼굴을 내미는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는 일또한 행복했음을 두말해서 무엇하랴.
마을사람들이 자작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또한 아름다웠다.
자작나무로 기둥을 만든 학교와 아이들 책상과 걸상.
자작나무 울바자, 학교담장을 대신한 울타리, 불을 붙이면
유난히 빨갛게 타오르는 자작나무 장작더미.
마을밖 숲에서도 마을안에서도 그리고 집집마다에서도
자작나무가 지천인 동네.. 마치 자작나무 타는 향기라도 맡아질것 같은
분위기였다.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오래된 독일영화가 있다. 언제 만들어 졌는지 확실히는
잘모르겠으나 영화는 2차대전이 끝난 독일의 시골이 그 배경이었다.
전쟁중에 피난을 떠났다가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온 '안토니아스; 라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였다. 예쁘장하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주인공인 영화와는 거리가 멀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안토니아스는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였다. 물론 여기서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할 것이며 그녀는 주인공 역활을 훌륭히 소화해
냈을 뿐만 아니라 오래전에 보았던 그 영화를 확연하게 기억할 만큼 그녀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전쟁이 휩쓸고 간 황폐한 고향에서 여자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마을사람들의 보수적이고 편협한 시각에 맞서 당당하게 삶을 살아내는 안토니아스와
그녀의 딸 그리고 손녀의 이야기. 이 씩씩하고 유쾌한 페미니즘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후련하고 통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 영화에서도 자작나무가 자주 비춰지는데 주로 가을이 배경이어서 그랬고
독일의 시골마을에 드문 드문 심어진 자작나무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성채를 닮은 시골집과 집 사이로 숲이 있고 작은 오솔길을 따라 심어진 자작나무는
가을햇살이 머물다 간곳마다 노랗게 물이 들었다.
안토니아스의 딸로 천재소녀 바네사는 늘상 책을 손에 들고 다녔다.
시골농장의 가을이 깊어가고 여기저기 자작나무가 노란잎새를 흔들며
가을 햇살을 받고 있는 외딴 농가. 마당에 놓여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은 바네싸 앞에 그녀의 딸이 그네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햇살은 눈부시고 그네를 타고 있는 손녀딸과 바네싸의 등뒤로 자작나무가
노란잎을 반짝이고 있는 배경이 겹쳐진다. 그 위로 음악이 흘렀었다.
그 배경에서, 그리고 가을이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과 만났을때 가장
아름답게 받쳐 줄수 있는 음악, 바흐의 '무반주첼로 조곡'...
엊그제 우연히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을 전곡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집안일을 하며 틈틈히 귀를 기울이며 듣느라 온전한 감상이
되지 못했으나 그래도 좋았다. 음악을 들으며 줄곧 '안토니아스라인'에서의
그 장면이 떠올랐다. 햇살, 노란자작잎, 그네타는 아이, 그리고 중후한
아름다움을 주던 첼로선율이 모두 깊어가는 이 가을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