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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엔...


BY 빨강머리앤 2004-10-29

여행을 다니다 보니 자연 여행에 관심이 많아지고 여행이 더 좋아졌다. 알아야 할것도 더 많아진것 같고 돌아다 보아야 할곳도 더 눈에 많이 띄여 이래저래 해야할일만 잔뜩 늘어나 그 일에 치여 있는 자신을 들여다 본다. 여행을 참맛을 알게 된건 몇해 되지 않았다. 여행을 특별한 취미쯤으로 치부하던 때가 있었다. 한가한 사람들이 흥청망청 돈쓰러 다니는게 여행아닌가 하는 삐뚤어진 시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해이던가 친정을 갔다 오는 길에 강진에 있는 무위사라는 절을 들렀었다. 절의 미학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나였건만 절집앞에 당도하여 일주문 사이에 빼꼼히 보이는 무위사 경내가 어찌나 아담하고 소박하며 정갈하던지 그만 한눈에 반하고 말았었다. 아, 절이 주는 이미지가 이런 거구나.. 그때부터 절집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불어 돌아다니는 일,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냐의 여행기는 소박하기가 그지 없다. 그것은 꼭 내 마음하고도 닮은 것이고 천상 나는 찬란하고 화려한 것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란 생각도 든다. 다니다 보니 천상 내마음이 들여다 봐지는 것이라곤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들이었다.

전체적인 산의 웅장한 외곽보다는 산이 품고 있는 작은들꽃과 풀꽃의 잔잔함이 더 마음에 끌렸고, 군락을 이룬 나무보다는 개별적으로 자라나 숲과 조화를 이루는 나무들이 더 좋았다. 그리고 그속에서 만나는 산새들의 우짖음과 그소리에 맞춰 돌돌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이 갔다.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낸 자연스러운 조화속을 들여다 보며 나는 수없이 감탄도 하고 감동에 겨워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었다. 내 여행기는 그런것들의 목록이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여행지에 글을 기고하는 일을 해오며 내가 좋아하는것이 여행이었구나고 새삼스러워 했던 기억도 있었다. 즐겨 찾은 자연이 품어주는 아늑한 공간에서 나는 행복을 찾아 나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다른건 몰라도 적어도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때까지만이라도 자연으로 자주 소풍을 다녀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해줄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은 산으로 들로 나서 자연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나 못지 않게 여행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남편이 그런 내게 멋진 약속을 해왔었다. '올 가을엔 적어도 열번의 가을여행을 떠난다!!' 지난 여름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여러번 얘기한 이후에 얻은 자랑스런 결과물을 그대로 흘려 보낼수가 없어 나는 남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펜과 종이를 가져와 남편의 그말을 그대로 적어 두었다. 글옆에 남편의 사인과 함께...그 종이를 냉장고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보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바쁜 와중에도 그 약속에 충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시간을 만들어 냈다. 주로 주말을 이용해 너무 멀지 않은 곳을 선정해 사전자료를 검토하고 동선을 최소화 시키면서 원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돌아볼수 있는 여행계획을 설정하고 길을 나서곤 했다. 한곳을 다녀오면 딸아이는 남편의 각오 옆에 번호를 매겨가며 갔다온 여행지명을 적었다. 그렇게 해서 올 가을엔 다섯번의 여행 목록이 추가되었다. 가을이 빠른속도로 지나가고 올 가을 여행 목록은 아직도 많이 남았있다. 나는 물론 지금까지의 행로에서 충분히 만족을 한다. 남편에게 아직 말은 안했지만 그 정도면 멋진 가을 여행을 만끽했다 싶다.

초가을이 다르고 가을이 무르익은 지금이 다르고 늦가을의 서정또한 다르게 느껴지기에 앞으로 남은 다섯번의 여행도 무척 기대가 되지만 그걸 다 채우지 않아도 나는 결코 남편의 약속 배반에 딴지를 걸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시월 중순에 다녀온 미천골의 단풍에 흠뻑 취하고 온 가을여행 만으로도 나는 이토록이나 행복하니 말이다. 지난주 운악산 정상을 오르고도 연봉 서너개 까지를 발품을 팔아 다 넘어보고 온 감격만으로도 이가을이 이토록이나 풍성할수 있었다고 말해주리라 ...

낼모레면 다시 주말이다. 이번 주말엔 김포에 사는 남편친구네와 강화도를 갈 거라는 남편의 주말계획에 나는 다시 마음이 달뜬다. 가면 대하만 먹고 오지 말고 예전에 했던 대로 강화도 일주를 꼭 하고 오자고 부탁했다. 대하가 제철이고 늦가을의 강화의 풍경또한 제철일 터였다. 벼가 베어진 논배미위로 고추잠자리의 유영이 쓸쓸함을 따스하게 위로하는 풍경을 마주하고 싶고 일주도로를 달리다가 어느 지점에서 길 양옆의 소나무가 사열하듯 서서 지나가는 길손에 경례를 붙이는 그 길이 여전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고려성을 지나 북문에도 들러 길어온 약숫물로 성문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커피도 한잔 끓여 마시면서 길 양켠에 심어놓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감상하는것도 좋겠다.

무엇보다 일몰 무렵 오른편엔 바다를 왼편으로 산길을 끼고 달리고 노을에 비껴 하얗게 빛나는 갈대의 군무를 볼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싶다.

다행히 아직은 가을이 싱싱하다. 내 앞에 펼쳐진 야산도 단풍이 절정이다. 그래, 내 가까이에 있는 가을도 찾아가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