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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기행


BY 빨강머리앤 2004-10-12

 

양평에 있는 용문사를 향해가며 나는 줄곧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전하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라는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우리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는데... 천년하도고 백년이라는 세월이 더해진 나무의 위용을 감히 상상할수가 없었다. 그냥 그리움으로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어느 가을 깊은날, 은행이 노랗게 물들다 지쳐 한잎 두잎 낙화를 할 즈음, 고즈녁히 늦가을이 들어앉은 산사를 호젓하게 찾고 싶다는 오랜 바램 같은걸 품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른가을,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벼이삭만이 절정이고 도로 양옆에 심어진 은행나무 가로수는 이제 막 누른듯 푸른듯 하니 단풍철은 아직 일렀다. 여행객들이 길에 차고 넘쳐 주차장에 주차하기 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호젓함은 글렀구나, 뭐 나도 이렇게 부산함 속으로 섞여들었는데 어쩌랴. 그런데 저 요란한 트로트 메들리는 또 뭔가. 고요한 산사를 애초에 기대하지 말았어야 하는건지.. 게다가 저 휘황찬란한 놀이기구는 웬일이냐 싶었다.

절 안에 있는 놀이기구라.. 이 희한한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그저 용문사 은행나무나 잘 보아두고 오자며 길을 걷는데  이래저래 사람들이 많아 찾아서 인지 길이 얌전하게도 포장되어 있다. 놀이기구와 상가쪽은 몰라도 적어도 일주문에서 절 앞까지는 그냥 정갈한 느낌의 흙길을 걷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나의 바램에 그치고 말았으니 길대신 나무에 눈을 주고 절을 향한 산길에 올랐다. 그나마 나무가 제법 우람하고 솔향기가 섞여 들어와 그 길을 걷는 맛이 있었음에 위로를 받고 일주문에서 약 이십여분을 올랐을까? 드디어 은행나무가 빠꼼히 얼굴을 내민다. 절은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은행나무는 대웅전 앞에 잘 모셔져 있었다.  이 오래된 나무를 보호할 목적으로 철책을 둘러 놓았는데 그것이 또 한번 나를 상심케 한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은데 나무와 철책사이가 너무 멀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다. 나무를 보러 오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 아닐테고 그 사람들 저마다 나무 보는 양이 틀릴 것이었다. 가만히 만져보는 사람, 나무를 툭, 쳐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기어이 나무 껍질을 벗겨보는 사람도 있었겠지? 누군 은행알 딴다고 올라가는 이 혹 있었을까? 그러니 나무는 그만 사람과 멀리 떨어져 홀로 늙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무 아래 제 품에 품을 듯 은행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 은행나무는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을까? 남편이 궁금해 했다. 글쎄, 천백년의 세월을 산 은행나무는 도애체 얼마만큼의 은행알을 맺힐것인가, 문득 나도 궁금해 진다.

이 우람한 나무는 생각보다 잎새는 적었다. 아직도 건장한듯한 가지와 둥치는 여전한데 잎새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커다란 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잎새가 적은 것도 은행나무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일수도 있을 것란 생각을 했다. 철책 안쪽이 궁금한 아이들이 철책에 매달려 은행나무 둥치가 몇아름 일지를 궁금해 했다. '꼭 토토로 나무같아' 아이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만한 나무는 분명 나무의 정령이 깃들어 있을거야, 그치?' 바람이 불어와 은행나무 가지를 건드리자 잎새 몇장이 낙화한다. 오후의 저녁햇살이 비켜든 은행나무 사이로 용문산의 가을빛이 환하게 드러난다.

절은 그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다. 바람이 불때마다 대웅전 처마밑에 매달아 둔 풍경이 댕그렁 맑은 소리를 냈다. 풍경소리는 산깊은 골에 닿고 싶어 멀리 멀리 퍼져 갔는데 그 소리가 참 좋아서 풍경소리를 담아 낼까 하고 사진을 찍었다. 풍경은 자주 울지 않았다. 가끔 바람에 몸을 부딪히며 아껴두었던 그리움처럼 한번씩 조심스럽게 울었을 뿐이다. 늘상 산사의 풍경소리는 그렇게 아쉬움을 남겨 주는 것 같았고 용문사의 풍경도 예외가 아니었다.

석불도 석탑도 새로 만든 것이라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돌이든 건물이든 오래된 것이 주는 은근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감동을 주는 법이다. 다만, 부도밭이 오래되어 그 은근함으로 오래 발길을 붙잡았다. 여러기의 부도가 단정하게 자리한 용문사부도밭이 용문사를 가장 오래 기억하게 할 것이었다. 부도밭은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위치해 있었다.

절을 돌아나와 특이한 목장승을 만났다. 목장승 머리께에 새긴 웃는 듯한 동자승은 그걸 새긴 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게 했다.  산사를 에워싼 풍경이 장하고 아름다웠고, 나무들이 우람했었다. 용문사의 오래된 은행나무에서 신선한 기운도 받았다. 절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동안 은행나무는 긴 그림자를 드리워 오래 오래 배웅을 해주었고 그제야 숲에 익숙해진 내 귀에 근처의 계곡물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내가 용문사를 제대로 보았던가, 싶어졌다.

주차장 가는 길에 시골할머니들이 길가에 좌판을 깔고 저마다 가을걷이한 것들을 내다 팔고 있었다. 먹음직하여 대추를 한되 샀다. 보는것 보다 훨씬 달고 맛나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나들이 나온 햇콩이 햇살아래서 반짝인다. 첫수확한 땅콩이며 호박이 누렇다. 잘 익은 해바라기를 골랐다. 차안에서 하나씩 까먹으며 갈 요량이었다. 할머니들이 펼쳐놓은 좌판이 풍성하다. 그중 은행알이 유난히 많다. 밤도 한켠을 차지하고 손님을 부른다. 자고로 풍요의 계절이다. 들녘의 풍요로움까지 마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내 해바라기 씨를 야금야금 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