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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극한-거미숲을 보다가-


BY 빨강머리앤 2004-10-04

몸도 마음도 분주했던 추석 연휴가 끝났다.

몸은 나른한 피로감에 한동안 못 벗어날 것이지만

그래도 주부로서 어떤 중요한 일을 끝냈다는 자족감은 한웅큼 마음에

여유로움을 선물처럼 안기기도 한다.

그럴때 영화 한편이 간절해 진다. 감동이 큰 영화일수록 환영이다.

영화가 전해주는 감동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끼다 문득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손쉽게 어느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간단하게 취미생활화 할수

있는 '영화보기'가 그래서 참 좋은것 같다.

오랫만에 비디오 가게를 들러보니 내가 못 간 시간만큼

새로운 영화들의 목록이 보태져 있었다.

몇몇의 신작들이 눈에 띄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이 빌려갔는지

빈 테이프만 남아있어 선택의 폭이 다소 좁아진다.

더군다나 오늘은 남편과 함께 영화를 봐야하니

내 취향과 거리가 있는 남편 취향에도 맞고 나도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야 해서 선택이 쉽지 않다.

그런 조건에 맞는다 싶으면 대여된 비디오고

남편의 조건에만 맞추면 내가 보지 않을것 같아

'거미숲'이라는 영화를 찾아 들었다.

감우성의 연기가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들었었다.

내용이 탄탄한 스릴러 정도로만 알았고

공포의 수위에 대한 이렇다할 위험 경고가 없었기에

나는 별 의심없이 영화를 집어 들었던 것이다.

영화가 조금은 공포 스러울 것이라고 하는 얘기는 귓등으로

흘렸었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혼자서는 못 보았고

남편과 같이 보니 뭐 지가 무서우면 얼마나 무서울까 싶었다.

낮은 첼로음 같은 배경으로 숲을 앞에둔 산길에

감우성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장면으로 부터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바싹 공포감이 조성되었다. 공포영화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어 영화보는 취향이 다소 편협하다할 정도로

공포영화 장르를 아예 무시했던 나였다. 공포란 문학이나 예술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감각기관을 비정상적으로 상처내는 일이라

결론을 지으며 말이다.

감우성의 과거의 기억인지 아니면 순리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중간이었는지 감우성이 밤이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가득 달빛같은 푸르스름함에 젖어 있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숲엔 줄기가 가느다란 나무들이 듬성 듬성 보이고

그 사이를 가득 산죽이 자라 있다. 소백산을 올라가면서

등산로 양쪽에 제멋대로 자란 산죽이 그땐 참 멋스러웠는데

깊은밤이고 별도 없이 캄캄한 밤, 조명에 드러난 숲을 가득 채운

산죽은 을씨년 스럽기그지 없다.

그런 숲 저쪽에 집한채가 있다. 감독의 연출에 의한

세트장이거나 실제 페가를 촬영한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사람이 살리가 없는 외딴집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카메라는 공포를 극대화 시킬 요량으로

감우성의 뒤를 따라간다. 마치 괴한이 그뒤를 비밀스럽게 따라붙어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가격할것 같은 분위기다.

간이 콩알만 해진다. 보이지 않는 괴한의 그림자가 더욱

공포감을 조성하고 마침내 집안으로 들어선 감우성 앞에

펼쳐진 폐가에 피가 범벅이다. 그것까지는 보아줄만 했다.

마침내 카메라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방안 풍경을 담아내다

식탁위에 올려진 시체의 발을 비추었다. 읍, 나는 단말마의 비명을

안으로 삼켰다. 잠시 그 장면을 무시한다. 저 장면이 흘러가면

이젠 평화로운 장면도 펼쳐질거야. 그래서 감우성이 왜 폐가로

찾아들어 시체를 확인하고 방안에 누워 있던 여자를 안고 울부짖었는지

그리고 그 여자와 거실에서 죽어있는 남자와는 어떤 관계였는지

이러한 끔찍한 일련의 사건들이 어찌해서 일어났는지 알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순간, 나는 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공포의 극한이 바로 그럴거라

생각을 했다. 숨이 멈출것 같았다.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며 잠시 숨이

가빴다. 내가 서 있었으면 그대로 주저 앉을 만한 충격적인 공포였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높은음의 비명을 멈추자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독한 공포감 뒤에 오는 허탈이 눈물 몇방울로

흘러 내리는 동안 남편이 깜짝 놀라 비디오를 껐다.

내가 공포의 극한을 체험한 문제의 장면은 거실에 죽어 있는 남자의 썩어가는

얼굴을 비춘 장면이었다. 실제같은, 분장의 기술이 너무도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표현된 죽은 남자의 얼굴은 피가 범벅이었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입을 벌린채 였으며 시체위로 작은 곤충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거미였을 것이고

외딴집 앞에 산죽으로 가득찬 숲이 아마 '거미숲'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 숲과 거미와 관련되어 치정관계 혹은 삼각관계에 얽혀

마침내 서로를 죽이고 죽는 과정을 담아내며 인간의 내면을 그려냈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그토록이나 놀라 자빠지는 나를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남편도 더이상 영화볼 생각이 없는지 텔레비젼으로 눈을 돌렸다.

이후로 나는 다시 공포영화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어렸을때 '전설의 고향'을 보고 느낀 공포이후 가장

충격적인 공포를 체험한 이후 그 생각만으로 가슴이 콩닥거린다.

어쩔수 없이 간뎅이가 콩알만한 나는 다양한 장르의 공포영화가

추구하는 영화적 묘미를 끝내 누리지 못할 것이다.

대범하고 씩씩한 당신, 공포영화의 미덕을 맘껏 향유할수 있는

어떤 당신들이 부럽다.

그나 저나, 거미숲에 두 사람이 죽은 이유가 뭘까?

대체 누가 그들을 죽였으며 감우성은 그여자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영화 제목은 왜 거미숲인 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