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마케팅이었을까? 이 영화가 개봉을 알리는 포스터의 도난사례 잦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느낀건, 마케팅 전략도 가지가지군.. 그랬었다. 귀신영화를 찍을때 주연배우들이 실제로 귀신과 마주치곤 했다는 다소 부풀려진 홍보전략( 현실 가능한?) 보다는 그래도 낫다 싶은 문제의 얼굴없는 미녀 포스터는 머리카락을 잔뜩 부풀려 파마를 하고 섹시미를 한껏 강조한 표정과 짙은 화장이 보일듯 말듯한 김헤수가 포스터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이다.
글래머스타 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그녀는 지금껏 찍은 많은 영화속에서 극히 노출수위를 조절해 온걸로 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엔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내 매력을 맘껏 발산해주마'고 작정이라도 한듯, 포스터는 그녀의 그런 도발을 숨김없이 드러낼 만큼 알수없는 복합된 감정을 실어냈다. 아마도 얼굴없는 미녀의 포스터를 훔쳐간(그럴수도 있다)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김혜수를 좋아한 남성들일지 모른다. 영화가 너무 좋아 포스터를 훔친게 아니라 영화의 주연 배우이자 우리시대의 섹스심벌인 여자의 포스터를 가지고 싶은 남자들.
그런 뉴스를 접해서인지 얼굴없는 미녀 포스터의 이미지가 매우 특별하게 와닿았다. 주연배우의 저 과장된 표정속에 숨겨진 그녀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궁금증.. 그래서 영화를 봐야지 생각한 나같은 사람이 많았다면 이 영화는 일단 성공을 거둔 셈이다.
지수는(김혜수) '경계선 장애'라는 특이한 정신병력을 가진 여자다. 보통때는 멀쩡하다가도 자신이 감당할수 없는 감정에로의 몰입을 할때마다 자신이 서있는 위치와 과거의 기억이 혼재하는 곳에 서서 길을 잃는 특이한 병력을 가진 여자.
그런 그녀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주변사람들 틈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그녀는 출판되지도 못할 소설을 써댄다.
-나는 불행한 과거를 가진 여자야. 나는 그 불행한 과거로 부터 도망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돼. 자꾸 나를 따라붙는 어두운 과거가 발목을 잡고 있어 나는 온전히 현실을 살아갈수가 없어. 그런 세월이 하도 깊어 나는 이제 과거가 현실인지, 현실이 과거인지 도무지 헷갈릴때가 있어. 그럴땐 내 주변의 모든것들이 그것도 깨지기 쉬운 유리로 된 물건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곤 하지. 이제 나는 그런 현상들을 즐길정도가 되었지만 나의 환상속으로 누군가 끼어들면 나는 상처를 입고 말아. 그러니 나를 방해하지 말아줘. 유리가 산산히 부서지고 나는 깨진 유리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면 내가 누군지, 내가 어디 서있는지 깡그리 잊고 말아. 나는 한마리 상처입은 작은동물. 아,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그냥 내버려 둬.-
그녀의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혹은 상처받은 기억에 대한 파편이 어지러운 글들은 출판사 선배로 부터 매번 퇴짜를 당하고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외도를 한다.단조로운 일상, 사랑을 하면서도 외로운 남편과의 관계, 가슴속에 할말을 가득 채워둔 그녀는 자해소동을 벌이고 그녀의 담당의사인 석원(김태우) 앞에 실려온다. 석원은 자신의 환자인 지수에게서 사랑인지 연민인지 모를 묘한 감정을 받는다.
지수의 얽힌 생각의 실타래를 자신이 풀어 줄수도 있을것 같다. 지수도 석원이라면 믿을수 있을 것 같아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마주한 두사람,석원은 지수에게 최면을 걸어 그녀의 과거를 본다. 지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요트를 타는걸 즐기고 설원을 질주하던 남자 ,그를 사랑한 지수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남자를 사랑하여 아이를 가진다.
그런 그녀를 두고 이젠 사랑이 시시해져 버린 남자가 떠나버린다. 사랑이 자신의 모든것이었으나 이젠 사랑이 떠나 홀로 남겨진 지수.. 남자한테서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자신을 감당할수 없는 그녀는 날마다 술과 담배로 나날을 보낸다.마침내 사산이 되어나온 아이가 될수 없었던 쌍둥이..
최면상태의 그녀가 울었다. 석원은 그녀에게 한없는 연민이 느껴지고 그녀를 보듬고 싶어 의사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최면상태의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석원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들간다. 최면상태인 지수, 과거의 남자와 사랑의 기억을 더듬는 그녀의 알몸위로 석원의 몸이 겹쳐진다 석원은 자기번민에 휩싸여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도저히 지수에게서 벗어날수 없을 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안타까워 한다.
지수의 무의식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육체적 사랑을 탐하면서 석원은 서서히 지수에게 빠져 들지만 현실의 지수에게 있어 석원은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정신과 의사이자 친구같은 존재다. 엇갈린 사랑. 옛애인과 아내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지수의 남편과. 아내와 사별한 석원이 자신의 환자에게서 느낀 사랑이라는 감정이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고 그 사이에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여자 지수의 이야기가 얼굴없는 미녀의 줄거리다.
마침내 지수의 남편은 애인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자신이 사랑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상대는 애인이 아니라 지수라는걸 알았지만 때는 너무 늦어 버렸다. 석원의 위험한 사랑이 처놓은 거미줄에 걸린 지수는 이제 한마리의 나비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가 벗어났다고 생각한 아픈 과거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른 상처가 그녀의 상처에 예리한 칼끝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석원의 최면에 이끌려 석원에게 향하던 지수는 마주오는 차량과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채로 죽고 만다. 그녀의 죽음에는 일체의 감정이 생략되어 있다. 과거의 사랑에서 놓여난것도 아니고 현실의 남편에 대한 애정이 새삼스러울것도 없고 석원의 눈빛이 예전같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그 앞에선 마음을 터놓을수 있었는데 그녀의 몸은 그녀의 환상속에서 부셔져 내린 유리파편처럼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슬픔일까 안타까움일까, 가슴이 아프다. 그녀가 과거로 부터 놓여나는 위기해소의 장치만 있었던들 이리 가슴이 답답하진 않았겠다 싶었다.
지수의 죽음도 알지 못한채 석원은 그녀를 기다리다 그녀의 환상과 맞딱뜨린다. 얼굴없는 미녀, 지수일까, 내 안의 욕망의 실체일까? 방안에 있는 모든 유리들이 움직인다. 그것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다 비명 소리와 함께 산산히 부서진다.
얼굴없는 미녀가 돌아서 나간다. 제발, 석원은 그곳에서 멈춰야 했는데 욕망인지 미련인지가 그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끈다. 자신의 환자들이 좋아했던 도레미계단이 단발마의 파열음을 내고.. 마침내 석원이 계단을 굴러떨어진뒤 서서히 차게 식어간다. 비로소 그에게서 떠나는 지수의 영혼을 보여주며 쓸쓸히 영화가 끝이 났다. 엔딩 장면에서 흐르는 '브라질풍의 바하'가 쓸쓸함 위에 슬픔을 덧칠했다. 비로소 영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영화가 참 기묘한 아름다움을 주었다라고 생각하며 전원 스위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