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서보라 고향길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길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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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가득한 베란다에 서서 이수인 곡'고향의노래'를 흥얼거려 보았다.작년 사능수목원에 갔다온 기념으로 받은 국화꽃 화분을 들여다 보는 중이다.그 화분에 뜻밖에 채송화가 피어 한들 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목원에서 박타기 체험을 하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탈곡기에 수수도 털어보며 농촌체험을 제대로 하고 나오는데 입구쪽에서 참가자 들에게 국화화분을 하나씩 안겨 주었었다.
그 화분을 받아들며 아이들녀석이 그랬다.'저 할아버지 되게 고맙다. 이렇게 화분까지 주시니' 녀석의 말에 우리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고, 차안에 국화 화분을 싣고 오며 혹시라도 꽃이 다치지 않을까 조심하며 집을 향했었다.
이미 꽃이 만개한 국화화분은 노란국화를 잔뜩 피우고 있었다. 황금빛 들녘을 떠올리게 하는 노랗게 만개한 화분을 그래서 조심스레 집으로 옮겼는데 국화 특유의 강건성은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가을동안 내내 싱싱한 노란빛의 꽃을 보여 주었다.
가을햇살을 받고 빛나는 노랑색이 되던 국화꽃을 보는 동안 아침이 늘 행복했었다. 적어도 꽃을 들여다 보는 순간만큼은 말이다. 햇살을 받은 꽃빛은 밝은 노랑이었고, 가끔은 아침이슬 한두방울이 햇살을 받아 영롱한 빛으로 일렁이곤 했었다.
국화는 오랫동안 싱싱했다. 이틀에 한번 정도 물을 주는 것 외에 나는 그저 국화꽃을 바라만 주었을 뿐인데도 노란꽃을 화분가득 피워 올린 국화꽃은 찬서리 내리던 아침까지 늘 오랫동안 싱싱한 채로 가을을 났다.가을빛이 사그러 지고 찬바람이 불어와 가끔씩 아침마다 찬서리가 내리자 이제 제 할일을 끝낸 국화화분은 조금씩 시들어 가기 시작했다.
짙은갈색의 꽃대는 말라버린 잎새와 구별할수가 없을 정도로 화분은 이제 제 모습을 잃고 겨울을 났다. 저렇게 흉하게 말라버린 가지를 뚫고 새로운 싹을 돋을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국화는 여러해살이 꽃이라서 초겨울에 졌던 꽃이 다음해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고 했다. 기꺼이 기다려야 했다. 겨울동안 삭막한 모습으로죽어있는 듯한 국화화분을 바라보며... 그것은 얼마간의 안타까움이기도 했다.그냥 베란다 철제난간에 두고 보는 이제는 생명이 다 한것 같은 국화 화분은그냥 두어야 할지 다른 방법으로 보관을 해 주어야 할지 분간을 할수가 없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에 들어서 국화 화분에 조금씩 새싹이 움트는걸 보았다.진녹색의 푸른잎새가 참으로 예뻐 보였다. 어느식물인들 새잎부터 피우는 법이지만 특별히 말라버린 잎새사이로 얼굴을 내민 국화의 진녹색 잎새가 대견해서 더욱 이뻐 보였다.
올해도 가을이면 노란국화꽃을 마주할수 있겠구나, 국화꽃향기를 맡으며 김하인의 소설집 제목을 떠올려 보기도 하겠지 싶었다.그렇고 그런 사랑얘기가 아닐까 싶어 아직 읽어 보진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소설 제목이 참 그럴듯하게 생각되었다. 국화꽃향기... 소설제목이 전해주는 향기는 진하게 퍼져와서 나는 국화 화분을 볼때마다 진짜 향기인지 문학이 전해 주는느낌 인지 모를 향기같은 것을 느꼈었다.
가을이 오기도 전에 한여름에 국화화분은 커다란 변화를 보여 주었다.어디서 날아왔을까. 화분속에 채송화!!. 땅을 향해 바싹 엎드려 줄기를 뻗어가 붉고 노랗고 하얀 꽃을 피우곤 하던 채송화가 국화 화분을 비집고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꽃씨가 어디서 날아왔을까?" 딸아이는 신기한듯 채송화 싹을 들여다 보곤 했다.
'어디서 날아 왔을까?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바로 윗층에 화분이 빽빽하게 놓여져 있었다. 혹시 윗집 화분에서 씨앗이 날아 왔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야, 채송화 씨앗을 먹은 새가 날아가다 우리집 화분을 새똥을 떨어뜨렸을 거야. 혹시 저 아래 화단에 피었다가 꽃씨가 바람에 날려 우리집 화분에 앉았을 지도 모르지. 아니야, 이 채송화 꽃씨는 원래부터 이 화분에 있었을 거야..그래, 그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생각을 맞대다 보니 채송화 씨앗은 아마도 수목원에서 올때부터 그곳에 들어 있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채송화는 제 집도 아닌 국화네 집에서 잘도 커갔다. 국화가 채송화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것 같았다. 국화줄기는 몇개 자라 잎새를 피우다가 맹렬한 기새로 줄기를 뻗어가는 채송화를 그냥 봐주는듯 해 보였다. 여름엔 네가 꽃을 피우렴 대신 가을엔 내 차지다.. 국화꽃으로 부터 당당히 자리를 확보한 채송화는 좁은 화분에서 나름대로 세를 확장하기 위해 옆으로 기는 대신 키를 키워냈고 머잖아 꽃을 피웠다. 두개의 줄기였던가, 노란색꽃 옆에 하얀꽃 두송이가 보였다.
채송화꽃잎은 세모시 옥색 치마도 아닌것이 엷디 엷어 부는 바람결에 금방이라도 찢길것만 같았다. 하지만 채송화는 엷은 꽃잎을 아침마다 환하게 만개하여 햇살을 받아 먹었고, 해가 지는 저녁참엔 영락없이 꽃잎을 접고 다음날을 예비하곤 했었다.
한달 남짓 아침이면 꽃잎을 열었다 저녁이면 꽃잎을 접는 채송화가 여전히 싱싱한채 가을아침을 환하게 열어주고 있다. 이 뜻밖의 기쁨이 한달이상 진행되는 동안 여름이 가고 가을빛이 완연해 졌다. 아직은 가을햇살을 받고 영롱한 노란빛으로 일렁이는 채송화도 얼마지나지 않아 꽃잎을 완전히 접고 내년을 기약할 날이 올것이다.나는 더 늦기 전에 채송화 꽃씨를 받아 놓아야 겠단 생각을 했다.
가을햇살이 베란다 유리문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가을햇살은 채송화 노란꽃잎에도 골고루 뿌려지고 있다. 풍요로운 가을햇살을 받으며 채송화 씨가 익어 가리라... 노란나비 한마리가 잠시 쉼을 하고 난 자리 다시 햇살이 곱게 내린다. 마지막 계절 앞에선 채송화 노랑꽃이 국화잎새에게 눈길을 보낸다.
'나를 받아줘서 고마워. 이젠 네 차례구나. 너를 닮아 노란꽃을 피웠는데
어때 괜찮았니? 안녕, 내년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