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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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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영화관


BY 빨강머리앤 2004-08-31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게 언제였는지 손꼽아 한참을 헤어려 보아야 할만큼 오래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일이 좀 있었노라, 핑계를 대보고자 하지만 사실 내 게으름이 내 의지를 못 따라가다 보니 하루를 어찌 보냈는지 모르게 그냥 흘러 보냈다고 해야 맞는 말인듯 싶습니다. 영화보기가 취미라고 하면 지나치게 평범한 느낌이 듭니다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반짝 미소가 머금어 지니 내게 있어 영화는 삶의 특별한 기쁨을 주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처음 본게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할수는 없지만 초등학생이 되어서의 어느 여름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학교에서 온동네 마을분들과 함께본 영화가 처음이었지요. 마을에 공지가 있었던가, 아니면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영화를 통한 반공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그때는 정기적으로 반공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영화상영이 예고된 날은 저녁밥먹고 엄마손잡고 학교로 영화보러 나들이갔지요. 영화를 보기 위해선 시내로 가야 하는 작은동네라 영화를 상영하는 날은 온동네 어른들이며 아이들이 학교로 모여들었습니다. 학교 강당에 하얀 목양목천같은것이 씌워지고 영사기를 그곳에 싸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닳고 닳은 필름은 몇번씩 끊기기 일쑤였지요. 끊길때마다 여기저기서 야유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곧 영사기가 돌아가면 다시 잠잠해져 영화에 몰입을 하곤 했었습니다. 영화가 끊기지 않으면 화면에 비가 내리듯 하얀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는 했던 그 시절의 영화는 반공영화 아니면 새마을홍보용 영화가 전부였습니다.

반공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의 반대편 북쪽에 머리에 뿔달린 공산당이 살고 있음이 가늠할수 없는 공포심을 주었고, 새마을 홍보영화를 보고 나면 어렵고 가난한 가운데 ( 참 그 가난이란게 그려낼수 없을 만큼 가난했고, 삶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비루해서 어린 내가 보기에도 참 가슴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고난을 참고 이기도 다시 일어서 끝내는 성공해 내고야 마는 농촌사람들의 현실을 통해 어린마음에 나도 저처럼 어떤 고난에도 꿋꿋한 사람이 되어야지 순진한 각오를 다지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그런 영화들은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저녁먹고 나들이 삼아 엄마손잡고 학교로 향하는 그 일이 좋았습니다. 스토리전개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여기저기서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던 반공영화를 보다가도 잠이 들곤 했지만 영화를 보는 그 시간이 참 좋았던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진짜 극장에 간것은 초등학교 6학년때였습니다. 작은엄마가 처음으로 극장에 데려가 주셨는데 하필이면 내가 본 진짜 영화가 로맨틱코미디 비슷한 것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당시엔 15세 관람가 등급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영화가 애로틱 한것도 아니였고, 초등학생이 눈을 가리고 봐야 할 정도로 노출이 심한영화도 아니였고, 그 흔한 입맞춤도 한번 없는 영화였지만  한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남자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영화로 내 인생 첫영화치고는 참 멋없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것이 '시네마천국'같은 명작이었으면 하고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만 이제와 언감생심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수나 있겠는지요...

지난 토요일에 우리아파트에서 '가족영화제'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내가 놓치고 보지 못한 '투모로우'였습니다. 못본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것 보다 아파트 테니스장에 야외상영관을 설치하고 동네사람들이 어우러져 함께 영화를 보게 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안내방송이 나오자 마자 아이들 보다 내가 먼저 들떠 꼭 보러 가자며 흥분했던 것도 노천극장에서의 낭만 같은것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여름밤의 흔적이 풀숲에 남아 찌르찌르 밤벌레 합창소리를 불려 들였지만 가을바람이 선연히 불고 하늘에 달이 환하게 떠있었습니다. 토요일밤, 아이들에게 일러 먼저 자리를 잡으라 그랬으니 퇴근길을 서둘렀습니다. 혹시라도 우리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늦게 가면 앉을 자리도 없지 않을까 즐거운 걱정을 하며 들어섰지요. 서둘렀는데 30분이나 늦어 도착했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모이진 않았지만 돗자리 들고 엄마자리 맡아 놓겠다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수없이 가까운 아무자리를 차지하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작은애기서 부터 시커먼 중고등학생들까지 모여 영화대사보다 더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사이로 그래도 열심히 영화에 몰입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강 영화의 내용을 알고 있어 영화를 따라 가긴 했지만 우리동네 처음으로 생긴 노천극장이 마냥 신나는 일인지 아이들의 소음은 잦아 들줄 몰랐습니다. 처음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생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가 싶어 아이들의 소음도 참을만 했습니다. 그것이 외화였으니 망정이지 만약 우리나라 영화였다면 입장이 달랐을 수도 있겠네요.

하늘에 보름달이 구름사이를 뚫고 환하게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저도 영화구경을 하겠다고둥근얼굴 내밀때마다 구름은 길다란 띠를 만들고 작은 별들에게 자리를 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때즘,영화는 절정으로 치달아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해일이 밀려와 뉴욕이 물바다가 되고 곧이어 태풍마저 불어와 도시 전체가 얼어붙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피난행렬이 이어지자 이 무시무시한 기상이변에 떠들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져 버렸습니다. '엄마, 진짜 저런일이 있을수 있어?'. '그럼~".

'엄마, 빙하기는 얼만큼 길어?'. '글쎄다, 니가 책에서 본것처럼 아주 길수도 있겠지?' 하는 엄마의 대답에 아이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 집니다.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가 흔히 표방하는 가족주의방식을 충실하게 대입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우려했던 빙하기 대신에 얼어붙은 뉴욕에 찬란한 아침햇살이 비춰 들고 우주에서 들여다본 지구는 그 어느때보다 깨끗한 지구로 되돌아 와 있었습니다. 기상이변을 예고했던 기상학자인 주인공은 동사직전에 놓인 의롭고 용감했던 아들을 구해 냅니다. 금방이라도 지구에 빙하기가 올것 같다며 울쌍을 짓던 아이들의 얼굴에 태풍이 지나간뒤의 햇살같은 안도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영화가 끝나자 박수를 치고 다들 자신들이 흘린 쓰레기를 줍고 돗자리를 거둬 자리를 떴습니다.

하늘엔 여전히 구름사이로 달무리를 인 보름달이 떠있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깨끗하게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아이들에게 투모로우는 훌륭한 환경교과서 역활을 해주었습니다.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달빛이 비추고 있었고, 이젠 그 질감이 좋아서 화면에 빗줄기같은 하얀줄도 없는 노천극장에서 영화를 볼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오래 잊고 있었던 내 어릴적 엄마손잡고 학교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옛일을 떠올려 보기도 했으니까요. 요즘 아이들이야 영화에 익숙해 있을 뿐더러 극장나들이 하는 것쯤은 신기한 일도 아닐테지만요..그래도,그날의 영화감상은 내 추억의 한모퉁이를 돌아 이렇게 내곁에 가까이 와내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내 아이들과의 추억하나를 다시 만들어 주었습니다.달빛영화관, 그 영화관에 자주 들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