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31

남양주세계야외공연축제


BY 빨강머리앤 2004-08-11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라.이름이 좀 길다. 올해 4회째인 이번 공연은 지난해에 비해 대폭 축소가 되었다. 아쉽게도 말이다. 그래도 나처럼 두해째 축제를 즐기는 시민입장에서는 모든 공연 들이 새롭고 신나고 그야말로 한여름밤의 꿈같은 시간들이지만, 이곳에 오래 살았고, 그간의 축제를 꾸준히 지켜보았던 사람들에겐 같은 공연을 또 보는 구나, 싶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게 한 반쪽짜리 축제이다. 그간에 문제가 좀 있었단다.

공연이 4회를 맞기까지 '축제시민추진위원회'가 꾸준히 진행을 맡아 국내에 유일무일한 '세계야외공연'으로 자리매김을 했었다. 그런데 올해 갑작스럽게 남양주 시측에서 공연의 주체를 가지고 문제를 삼은 것이다. 남양주 시에서는 이제 우리가 축제를 맡을 것이라 했고, 시민추진위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이번 축제도 벌써 준비중인데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 반발을 했었다. 시민추진위와 남양주시측 간의 공방은 언론의 지면을 오르내렸고,마침내는 법정공방까지 이어질 뻔 했다. 와중에 시민추진위는 거리서명운동에 들어갔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추진위가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다행히, 축제를 얼마 앞두고 남양주시에서 한발 물러 났고 이미 공연일정은 잡혔으므로 예정대로 공연을 시작할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공방은 축제일정을 촉박하게 했던 모양인지지난해에 비해 축제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버렸다.공연에 참여하는 공연단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까지 초청하는 까닭에 해외공연단을 초청하기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턱없이 부족했던것 같다.

어쨌든 6일부터 16일까지 장장 열흘간의 세계야외공연 축제가 진행중이고 골라보면 그동안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야외공연을 즐길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찾아가는 축제' 일환으로 우리동네에 공연이 아이들 학교운동장에서 있었다. 삼삼오오 가족들끼리 모여들어 운동장은 금세 마을사람들로 가득찼다. 온동네 사람들이 거의다 모인건 아닌가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에 깔아둔 자리에, 그리고 의자에 앉고 또 뒷쪽에 서서 공연을 관람했다.

관내 학생들이 공연하는 사물놀이가 먼저 흥을 돋웠다. 사물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저녁이 밤으로 바뀌고 하늘은 짙은 남빛으로 물들었다. 인파가 만들어 내는 더운 열기 못잖게 공연단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관중의 호응에 응했고, 머잖아 가야금 4중주단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우리가락 좋을시고.~~ 아이들은 다소 정적인 우리음악에 자꾸만 딴데 시선을 두었지만 밤으로 향하가는 남빛하늘 멀리로 퍼져나가는듯한 가야금의 낮은울림이 참 어울리던 저녁이었다.

무대는 학교 운동장 한켠, 80년이나 되었다는 우람한 둥치의 굴피나무 아래였다. 모처럼만에 조명을 받고 서있는 굴피나무는 더욱 우람해 보였고, 가야금 소리가 울림면 울리는 대로 검도시범을 보이면 기합소리가 울리는 대로 묵묵히 공연을 위한 멋진 배경이 되어 주었다.

음악소리가 빵빵해지고 남양주공고의 그룹사운드의 무대가 시작되자 이미 이동네의 유명인사가 되었는지 젊은이들의 함성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연주실력이 제법이었다. 어쩌다 보이는 실수도 오히려 이뻐 보이던 무대가 끝나고 대안교육을 추구하는 젊은 엄마들의 공동육아모임의 합창순서가 있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래하면 엄마들은 춤을 추고 엄마가 노래할때면 아니들이 춤을 추었다. 밥상이라는 노래였는데 참신한 느낌이 들었고, 그 엄마들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그날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온 비누방울 마임 순서였다. 한 인상좋게 생긴 아저씨가 연미복을 입고 등장했다. 중절모를 쓴 이 아저씨는 사람좋은 웃음을 흘리면서 갖가지 모양의 비눗방울을 만들어 냈다. 비눗방울이 팔랑팔랑 밤하늘을 떠돌자 아이들이 가만있지 못하고 무대중앙으로 뛰어들어 비눗방울을 잡느라 야단이 났다.

비눗방울 마임은 연기자 뿐만 아니라 비눗방울을 잡겠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또한 주인공인듯 싶었다. 밤이 깊은 하늘엔 별을 몇개 띄우고 있었고, 크고 작은 비눗방울이 피어 오를때마다 지상의 별이 떠도는 것같았다.  그도 아니면 개똥벌레가 갑자기 군무를 추는 듯해 보였다. 비눗방울은 동심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이 아닐까 싶었다. 아저씨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듯이 골고루 이쪽 저쪽에 비눗방울을 날려 보냈고, 그럴때 마다 비눗방울 근처로 비눗방울 만큼의 아이들이 몰려 들었다.

비눗방울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몸짓을 보며 문득 가슴이 뭉클해 졌다.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싶어서... 비눗방울 아저씨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아이들의 웃음을 유발했고, 자신이 만든 비눗방울을 손으로 잡아 공처럼 튕기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비눗방울을 손으로 잡는 많은 아이들 중 어느 아니도 비눗방울을 잡진 못했으나 그들의 몸짓은 순수 그자체였다. 비눗방울 공연은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해주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담배연기가 가득찬 비눗방울이 만들어 졌고, 아주작은 비눗방울들로 소낙비가 연출되었다. 소낙비 맞는 장면을 위해 즉석해서 '예쁜 여주인공 모집'이 있었다. 일본인인 비눗방울 아저씨는 글씨를 써서 관객들을 한번 휘 둘러 보았는데 어쩌면 진짜로 이쁜 여자 아이가 나와 자신이 그 역활을 하고 싶다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거였다. 열살쯤 되었을까, 꼭 영화속에서 튀어 나온 것처럼 청색원피스를 파마한 짧은 머리를 한 여자아이는 정말로 이쁘고 당차 보였다. 아저씨의 작은 우산을 쓰고 비눗방울 소나기를 피하는 아이는 단박에 조명을 받았는데 그 장면은 정말로 영화의 한장면만 같았다.

그밤 내내 비눗방울 공연이 계속되도 좋을것 같았는데 1시간 여의 공연은 금방 끝이 나버렸고, 이어 콜롬비아의 어릿광대가 출연해 한바탕 좌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콜롬비아의 유머를 보여준 광대아저씨는 한시간이 넘는 공연동안 끊임없이 당나귀(가짜) 위에 앉아 말타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아저씨 뒤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면서 공연을 마무리 했다. 참 정겨운 장면이었다.

그렇게 이번 공연에 초청되어온 극단은 대부분 무료공연을 해주기 위해 먼길을 달려와 준 분들이라서 더욱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연단의 무대가 준비되고 역시 콜롬비아 광대극이 이어질 거란다. 또한 열흘간의 일정동안 호주의 새로운 형식의 연극무대를 보여줄 '숲속의 밤'공연이 계속될거라니 이래저래 즐거운 시간들이 이어질 것이다.

금요일 밤엔 밤늦게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별빛이 춤추는 한여름밤의 낭만콘서트'가 있을 예정이어서 기대가 크다. 즐겁게 일정표를 짜보며 볼수 없는 공연에 대한 아쉬움을 접는다. 무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열어줄 멋진 야외무대 공연이 있어 이 여름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