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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꽃이 피었습니다.


BY 빨강머리앤 2004-06-25

지난주부터 한두 송이씩 피어나기 시작하던 봉숭아가 제법 꽃을 많이 피워냈다.

아이둘 이름을 각각 달고 지름 12센티 정도의 작은 화분에 심어둔 봉숭아였다.

먼저 이 봉숭아의 출처를 소개하고 싶다.

지난봄 서리산철쭉꽃 축제가 있어 서리산과 인접한 축령산을 다녀왔었다.

입구는 축령산이고 축령산 입구를 지나, 왼편으로 오르면 축령산보다 조금 낮은 고지의

서리산이 위치하고 있다.그러니까 서리산과 축령산은 입구가 같은 셈인데,

입구 못미쳐 휴게소가 하나 있다. 근방에 있는 유일한 휴게소에서 무사히 산행을

마친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화단에 돋아난 봉숭아 어린싹을 만났었다.

그 어린싹이 무수히 돋아나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길래,

슬몃, 아저씨게 하나 달래 보았었다.'아저씨, 봉숭아 싹 몇개만 가져 가면 안될까요?'

'그것 주변 공터에 심으려고 많이 키웠으니 많이는 안되고 서너개만 뽑아가세요.'

먹고난 우유곽에 적당한 흙을 채워 봉숭아싹을 그렇게 집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땅의 습기를 잠시 받지 못한 탓인지 오는 도중 살짝 고개를 수그리고 있어

그대로 말라 버리는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지만 집에 오는 즉시 빈화분에

마사토 한층, 화단의 흙한층, 그리고 가져온 흙을 뿌리근처에 잘 다독여

봉숭아 싹을 심었다.그렇게 하고 물까지 흐북히 주고 나니 얼마 안있어 봉숭아는

보란듯이 싱싱한 줄기를 세우는 것이었다.

봉숭아를 심은 화분이 작았으므로 두개씩 심은 아이들의 봉숭아싹은 날마다

갈증을 호소했고, 어쩌다 물을 주는 일을 잊으라 치면 곧바로 고개를 아래로

뻗으며 시위를 하곤 했었다.

그것들은 가끔씩의 물주는 일을 잊는 주인장의 건망증에도 불구하고 줄기를 튼튼히 세우고

줄기 마디 마디에 잎새를 하나둘 피워 내더니 어느 순간에 꼬투리가 달린 꽃봉우리를

하나씩 돋워 내고 있었다.

 

일부러 화분중 하나는 베란다 밖에 두어 자연속에 내버려 두었고,

나머지 하나는 베란다 안 서랍장 위에 올려 두고 보았다.

사실은 베란다 밖에 있는 철제난간에 다른 화분들도 있어서

두개의 화분을 다 올려 두기엔 지나치게 비좁았다.

처음 얼마 동안 각각의 다른장소에서 커가는

두개의 화분은 눈에 띄게 다른 점을 느낄수가 없었다.

 

하지만 꽃봉우리가 하나씩 올라 오면서 보니 밖에 내다 놓은 것은

줄기가 굵고 선명한 줄기에 잎새도 안의 것보다 더 푸르고 꽃봉우리도

더 많이 맺혀 있었다. 반면에 베란다 안에 두고 간접햇살을 받고 자라는

화분은 상대적으로 잎새 색깔도 더 누렇고 키만 멀대같이 큰게

조금은 위태해 보일 뿐더러 꽃봉우리를 맺는 속도도 더딘 것 같았다.

하루는 둘의 화분을 식탁에 올려 놓고

두아이와 식물관찰 일지를 작성해 보았다.

안쪽에서 키운 작은아이의 화분과 밖에 두고 키운 큰아이의

화분의 다른점을 짚어보다 작은 아이가 울쌍을 지었다.

'내것도 밖에 놔줘~~'... 마침 장마철이라 작은 아이 화분도

좁은 철제난간의 틈새로 들어와 내리는 비를 흠씬 맞았다.

가끔씩 해가 나면 내리는 햇살도 실컷 받아먹고 자연의 바람에도 흔들리기도 하면서

둘째의 화분도  줄기가 굵어지고 빛깔은 선홍색으로 밝아졌으며 꽃대의 봉우리도 하나둘

만들어 지고 있었다.

하나 둘,,, 오늘 세어보니 각각 열송이의 꽃을 피웠다.

봉숭아가 첫 꽃송이를 피웠을때 딸아이는 그 꽃을 따서 새끼손가락에

물을 들였었다. 오래 들이지 않아 연한빛이었지만 딸아이의 새끼손가락에

남은 불그레한 봉숭아흔적은 첫꽃을 피운 봉숭아를 기억하게 하게 하리라.

 

아이들은 관찰일지의 마지막에 '느낌'이라고 쓰인 란에

각각 다른 문체로나마 같은 마음을 적어 놓았다.

'봉숭아꽃이 더 많이 많이 피었으면 좋겠다. 우리누나랑 엄마 손톱에

봉숭아꽃물 들이게...'

'봉숭아 꽃이 많이 피면 엄마랑 손톱에 이쁘게 꽃물들여야지!'

봉숭아꽃을 보니 화단을 곱게 가꿔 여름 한철 내내 꽃을 보며

살았던 고향집과 친정엄마가 생각난다. 나무로 된 마루에 앉아

내손톱에 무명천을 친친 동여 봉숭아 물을 들여 주시던 엄마의 손길이

그립다. 열손가락 모두 봉숭아 물을 들이고 깜빡 잠이 들면 어디선가

매미소리 시원하게 쏟아졌었지...

 

주말엔 내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나도 아이들 손에 하나 하나 봉숭아꽃물을

들이며 추억하나 만들어 주어야 겠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여름날의 추억 말이다.그날은 베란다 문도 활짝 열어 두어야 겠다.

아파트 앞 느티나무에서 혹시 철이른 매미가 울어줄지도 혹,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