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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 대한 두가지 상념-유월엔 내가-
BY 빨강머리앤 2004-06-21
- 이해인
숲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
유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 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유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1-
선생님은 학기가 시작되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 우리 학교에 합류를
하셨다. 귀를 덮으락 할만큼 짧은 단발머리를 파마한 선생님 한테서
'소녀'같은 느낌이 전해져 왔다. 나는 그 선생님이 처음부터 좋았다.
먼저는 '국어 선생님'이라는 것이 좋았고, 나중은 소녀같이
둥근 얼굴에 파마한 단발머리가 좋아서 나는 선생님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뿐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상대방에게도 텔레파시 비슷한
감정이 전달 된다는 것이 참말인가 보았다.
첫 수업때 인삿말 대신 칠판에 '시'를 적었던 선생님께 우연히 나는 선생님의
수업에 첫질문을 한 학생이 되었고,
그후로 선생님은 나의 인사를 살갑게 받아주시고
나를 눈여겨 보셨다 하셨다.
나는 국어 과목이 좋았다. 선생님이 좋았으므로 ...
그래도 선생님을 교정의 뜨락에서 만나면 짐짓
안그런척, 절제된 표정으로 간단한 인삿말을
하고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서곤 했었다.
나는 선생님께 새침한 학생이었던 모양이었다.
첫수업이 있고 며칠후, 등교하는 나랑 선생님은
교정 오르막길에서 만났는데 내가 모른척 고개만
살짝 숙이고 가더라고...그 모습이 새침떼기
같았다고 하시며 '새침떼기'란 별명을 붙여주셨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란 권위 의식 보다는 다정한 선배의
모습으로 항상 가까이 계셔 주셨다. 고만할때, 참 고민도
많아 별일 아닌 일도 힘겨울때, 선생님은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간 인생선배로서 이모저모 좋은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항상, 교정을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교실앞 등나무 벤치에 앉아서 , 대개는 교내방송이
흘러나오는 점심시간을 전후한 시각에..
(나중에 결혼을 앞두고 선생님을 찾아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선생님은 나를 그곳으로 안내 하셨었다.)
그곳엔 봄햇살이 아련히 흐르는 아래 목련꽃이
피었다 지고 보라색 등꽃이 보라빛꽃그늘을 만들다 가곤 했었다.
시간이 살같이 흘러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까지도
자주는 아니였지만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학생이었던 사람이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큰 고통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또한 통과의례였겠지만
그때는 그대로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던 때였다. 그 와중에, 엽서 한장이
날아 들었다. 선생님이 보낸 그림엽서였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유월엔 내가'를 푸른색 잉크로
쓰신 엽서를 받아들던 그 뭉클한 기억을 아직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참 힘들었던 시기, 그 시기에 날아온 선생님의 엽서는
뻐꾸기의 울음소리로, 아카시아 향기로,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의 숲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의 엽서로 해서 나는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해 냈던것 같다.
그후로, 유월이면 나는 선생님의 그 푸른엽서를 기억하곤 했다.
-2-
유월이면 자연스럽게 '유월엔 내가'라는 시를 떠올린다.
목타는 빨간장미의 계절, 숲의 싱그러움 속으로 뻐꾸기
울음소리 찾아드는 계절, 아카시아 꽃 향기롭게 날리는 계절,
'유월엔 내가'라는 시로 내가 다가가고 싶었던 계절, 그 속에
친구가 사경을 헤매던 안타까운 유월이 있었다.
사지가 마비되고 온몸이 마비되면서 서서히 심장쪽을
향하여 몹쓸병이 진행되고 있었다.이미 심장도 한쪽은
병마에게 먹히고 친구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르 버티고 있었다. 피스톤이 몇번 움직여
물과 같던 밥이 친구의 여린 몸뚱이를 연명케 하고
과즙 몇방울이 친구가 맛볼수 있는 지상의 아름다운
축복 한자락이었던 때였다.
꽃이 피었다고 해도 그 향기 하나 묻어올수 없는 이층 중환자실
그너머로 파란 하늘이 축복처럼 펼쳐진 어느 봄날엔
언니의 보라빛 원피스에서 '제비꽃의 봄'을 느꼈다던
친구는 여전히 삶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내보이곤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함박꽃이 피었다고 꽃한송이 말려 보낸
친구에게 나도 내년에 그꽃을 함께 볼수 있을 거라고
미소를 짓기도 했었다. 나는 친구의 삶에 대한 애착에
더 끈끈한 접착제 역활을 자청하기로 했다.
봄꽃들이 부지런히 개폐를 계속하는 동안 나는
그것들의 피고짐을 상세하게 친구에게 적어 보냈다.
친구는 편지는 읽을수는 있어도 편지를 적을수는
없었다. 그래서 안타까웠다고 했다.대신,
아직 말을 조금 이라도 할수 있었던 그해 친구의 마지막
유월에 친구는 언니의 필체를 빌려 마지막 편지를
보냈었다.그것은 유월을 맞이하여 '유월엔 내가'라는
시를 적어보낸 유월의 어느날 이었다.
나는 초록색 색종이에 친구가 볼수 없는
세상에 펼쳐진 유월을 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시를 적어 보냈었다.
초록색 색종이는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의 숲을
대신해 줄 터였다.
몸은 형편없이 무너져 가는데 정신과 안면근육만 멀쩡한 친구의
시력은 그때도 1.5을 고수하고 있었다. 친구는 자신이 가장
잘 보이는 곳,침대발치에 시가 적힌 초록색 색지를
붙여 달라고 했고, 날마다 그 시를 읽다가 외웠노라고
적었다.읽을수록 가슴에 와닿는 부분은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였노라 했고,
자신도 생명을 하얗게 쏟아내고 유월이
가기전에 어쩌면 하느님의 품으로 떠날것 같다고
쓸쓸히 적었다.
하얀나비들이 무수히 날아 오르듯 하얀꽃잎을 분분히
날리는 아카시아가 어쩌면 자신의
생을 이야기 하는 것만 같다고
친구는 언니의 필체를 대신한 마지막 편지에 적어 보냈다.
열심히 시를 읽었다고
초록색 색지에 적힌 수녀님의 시가 좋다고
자랑삼아 얘기하던 친구는 시의 한귀절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고 했다.
그해 가을 친구는 서른다섯해 생일을
보낸 이틀후, 사랑하던 남편과 아들 그리고 지상의 모든 이들과
기나긴 작별을 하고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가볍고 따스하고 정겹고 향기롭던
유월의 시에 아픈 기억이 추가되었다.
유월을 맞이하며 올해도
여느유월처럼 이해인님의 시를 떠올려 본다.
'유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산기슭에 엎디어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다시 읽으니 새롭게 다가오는 싯구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가라고 등을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