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참에 비가 내린다. 하루종일 하늘이 뿌옇더니 드디어 봄을 갈무리 하는 비가 내리고 그속에 반가운 소리가 덧붙여 졌다. 오랫만에 듣는, 일년만에 듣는 무논의 개구리 울음소리...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소리들은 한두가지가 아닐테지만, 어쩐지 저 개구리 울음소리야 말로 고향의 서정을 가장 가깝게 느끼게 해주는 소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지금쯤 한창 산철쭉이 제철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곳에 있는 서리산에 '철쭉축제'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년에는 조금 일러 산행을 했더니 꽃은 아직 피울 생각을 않고 꽃봉오리만 몇개 달고 있었던 탓에, 올해는 꼭 서리산 정상 즈음에 있는 철쭉을 보러 가야 겠단 생각을 했다.
그럴 참이었는데 일요일의 아침 날씨가 영 개운치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곳이 모란공원이었다. 예서 모란공원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걸어서도 갈수 있는 거리고 차타고 고작 십여분정도면 갈수 있는 곳이다.
때는 마침, 노동절도 있고, 오월이다. 이땅의 민주화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시키고자 목숨 바친 이들을 추모하는 달인것이다. 그들이 묻힌곳이 바로 모란공원에 있다. 모란공원은 미술관을 갖추고 조각품과 나무들로 공원 자체를 아름답게 꾸며놓은 공간으로도 유명하지만 공원옆 민주열사들의 묘역으로도 불리우는 곳이다.
대개가 가족단위로 나들이온 사람들은 미술관이 있고 파란잔듸를 배경으로 서있는 조각작품들 속에서 휴일을 보내곤 한다. 그런 반면에 바로 옆에 있는 민주화열사들의 묘역은 상대적으로 쓸쓸해 대조가 되곤 하는데 오월을 맞아 여러단체의 발길이 잦아졌고 오늘은 유가족들이 단체로 내려와 있어 민주열사묘역이 오랫만에 술렁이고 있었다.
마침 기일을 맞은 모양인지 한 재야인사의 묘역에 여러사람들이 모여 묵념을 하고 고인을 기리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오늘은 아이들과 문익환목사님을 참배할 예정이었다. 거기에 누워 있는 모든 분들이 자신보다는 나라를 위한 의로움을 위해 살다가신 분들이지만 특별히 문목사님 묘앞에 꽃다발을 받치고 싶었다.
문목사님이 돌아가시고 그분의 노제가 대학로에서 치뤄졌었다. 대학로에서 종로5가 까지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속을 따라 가다 너무 힘이 들어 그만 뒤돌아 섰었다. 그때 뱃속에 있던 딸아이가 지금 열한살이다. 아이에게 그 얘길 해주고 싶었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분이 여기 누워 있는데 네가 엄마뱃속에 있을때 그분의 노제를 따라 갔었노라고... 그분이 서울서 부터 여기 마석의 모란공원 묘역에 누어 계시니 참 묘한 인연 아니냐고... 꼭 네 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렀구나고..
둥글고 네모난 무덤들 사이 노란꽃들이 무수히도 피어나 있었다. 민들레와 씀바귀, 애기똥풀과 산딸기꽃등...제비꽃을 가득인 어느무명열사의 무덤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신기하게도 제비꽃들이 가득차 봉분을 에워싸듯 피어있었던 것이다. 어느 무덤엔 솜다리꽃 화분이 두개 있었고, 또 어떤 묘 앞엔 데이지가 하얗게 꽃을 피웠는데 그 꽃을 보는 잠시 넋을 잃고는 했었다.
아이들은 일삼아 민들레홀씨를 후후, 불었다. 내년에 더 많은 꽃을 피우라고 땅을 향해 후후 민들에 홀씨를 불었다. 둥둥 떠다니는 꽃씨들.. 훨훨 날아가는 희망의 씨앗들을 날리는것은 우리 아이들 뿐이 아니었다. 엄마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은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민들레 홀씨를 찾아 후후,불고 있었다. 내년엔 꽃천지가 되겠네? 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다..
모란공원에 처음 묻힌 이는 '전태일열사'다. 청동조각상이 있는 전태일열사의 무덤은 쉽게 찾을수 있었다. 오늘은 전태일열사 추모 달리기 대회가 있을 예정이라더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묘비앞에 꽃들이 풍성하다. 그곳에서 만난 낫을 든 할아버지가 설명해 주신다. 당신은 전태일열사가 묻히던 때부터 지금까지 삽심년동안이나 주말엔 꼭 이곳을 찾으신다고... 유가족이 없는 무덤이나 무명열사 무덤을 손질해 주고 계신다고 하셨다. 가끔 묘역을찾는 사람들이 묘지를 수선하는 일을 맡기면 재료비만 받고 손질해 주고는 하신다는 할아버지께서 낫을 들어 어지럽게 풀이 무성한 봉분을 손질 하셨다. 그 무덤의 주인하고 당신의 큰아들이 같은 나이라고 하시며 좋은일 하니 기분도 좋고 아마도 당신의 자손들에게 복이 돌아갈 것이니 좋은일이라 웃으셨다.
문목사님 영전에 꽃을 바치고 내려오는 길, 민주열사 묘역을 감싸고 펼쳐진 산에 푸르름이 절정이 이루고 있었다. 모란공원 민주열사들의 묘역에서 느낀 숙연함이 오월의 푸르름과 더해져 오늘 하루 의미있고 넉넉한 하루가 되리라.. 여전히 민들에 홀씨를 찾고 있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내려오며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오월의 첫 주말이었다.
'디카에 푹빠진 남편은 사진을 찍느라 늘상 열걸음 정도는 뒤에 쳐저 있곤 했습니다. 그게 불만이었지만, 당분간은 통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님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제가 직접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남편의 도움으로 컴에 저장된 사진 한장 올립니다. 아빠옆에서 커메라 삼각대를 챙기며 사진을 찍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민들레 홀씨를 불다 찍힌 우리 아들 입니다' 컴맹인 저로선 사진을 복사해 놓을줄만 알았지 크기 조절하는것은 모르니.... 원, 사진이 좀 큰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