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히 열정하나 있어 그것을 채울 요량으로 배움길에 들어섰다. '공부'라고 하기엔 그 비중이 낮고 하니 그냥 '배움길'한자락에 들어섰다라고 표현을 해본다. 전공이 문학이 아닌고로, 어줍잖은 글이나마 쓰면서도 항상 갈증을 느꼈다.
'글쓰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것은 아니였다. 그저 글쓰는 일에 대해 조금 더 전문적이고 싶다는 갈망에 물을 적셔주고 싶었다. 그래서 문예반 강좌라도 듣고 싶었는데 마땅치 않아 '어린이 독서지도'에 관한 강좌를 듣는 중이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와 다소 거리가 있지만 지금은 '차선'이라도 감사하다.
서울있을때, 상대적으로 문화적 수혜를 받기가 쉬웠을때 진작에 물을 구하러 나섰어야 했는데 나의 만성증, 게으름 때문에 작은거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시골로 내려와 이제야 후회가 막급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지 하는데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페이지는 더디게만 넘어간다. 내 딴에는 굳이 문학공부를 하지 않아도 독서를 통해 뭔가 나만이 가질수 있는 글쓰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오만도 한몫 했으리라..
그마나의 어린이독서지도 강좌를 듣기 위해선 여기서 버스로 한시간 가량 떨어진 구리까지 가야 한다. 한시간 가량의 거리는 또 다시 나의 게으름을 불러 내고 한동안 선택의 기로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게 하기도 했다. 뭐라도 다시 시작하자. 이제라도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자 싶은 마음이 다행이 내 게으름을 이겨 길을 나섰다.
의외로 그 길은 아름다웠다. 때로 공사현장이 있고 산이 깎여 나가며 비명을 지르는 곳도 있었지만 계절이 오는 대로 가는대로 아름다운 자연 한자락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수많은 꽃길들을 만났다. 벚꽃이 가로수 양쪽에 피어 내가 타고 가는 버스를 감싸주었다. 머잖아 벚꽃이 흩날리며 연분홍 꽃비를 뿌려주기도 했다. 검게 그을린 나무등걸 사이로 분홍 진달래가 참 많이도 피어났었고, 진달래 아래 노란개나리가 길가를 장식하던 때는 버스는 그 꽃대궐속에 파묻힐것만 같았다.
진달래도 지고 개나리도 지고, 꽃이진 자리에 풀색 나뭇잎들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할 무렵엔 역시 초록옷으로 갈아입은 산속에 산벚꽃이 하나둘 피어나 있었다. 신록으로 물들어 가는 가깝고 먼 산속에 산벚꽃의 분홍색이 참 잘어울렸었다. 그때는 같이 버스에 탄 할아버지 일행도 연신 창밖을 보며 '산이 참 좋구나'하고 감탄들을 하셨다. 나는 차마 그말은 못 뱉어내고 감정으로 충만한 마음이 산빛처럼 울렁였다.
매주 금요일아침, 싱그러운 봄날을 뚫고 구리가는길에 본 산과 들의 모습은 늘상 그렇듯 새로움을 주곤 한다. 지난주엔 그 길에 배꽃이 하얗게 피어난 배꽃과수원을 만났다. 과수원밭은 아직 초록이 드물었는데, 나뭇가지는 앙상한 채로 였는데 그 가지에 다닥다닥 하얀꽃들이 피어나는 걸 보았다. 가슴에 파도처럼 하얀물결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에 내리고 그길로 가고 싶었지만 내 시선을 따라 오던 하얀꽃물결이 끝날때까지 보고 또보며 아쉬움을 대신했다.
이번주는 하얀꽃물결을 이루던 배꽃이 거의 지고 나뭇잎새들이 파릇하게 올라와 있었다. '계절의 변화가 참 빠르구나 '꽃대신 잎이 파랗게 올라오는 배나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일주일만에 산도 더 푸르러져 있다.
산벚꽃도 안보이고 오로지 초록세상인 산은 이제 봄은 갔노라 말하는것 같았다. 꽃을 대신한 온갖초록색들이 산을 덮었다. 연두빛, 풀색, 연초록 진초록의 공간은 마치 초록색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 하다. 초록만의 세상이 오히려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초록의 강렬함에 맞서 주변에 핀 철쭉꽃 색깔도 초록과 대비되는 강렬한 분홍색이다. 무더기로 피어난 철쭉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눈길을 끌었다. 이제 세상은 초록산과 진분홍철쭉꽃들의 세상이다. 이또한 아름다운 봄의 모습이다. 늦봄.
다음주에 그 길을 달리면 산과 들은 또 어떤 그림을 그려놓고 기다릴지 자못 기대가 크다.공부하러 가는 길에 나는 매번 계절따라 변하는 산빛과 햇살가득한 들녘에 먼저 취하고 만다.
연둣빛
유경환
땅속엔
초록물감 얼마나 많기에
봄마다 해마다
해마다 해마다
해마다 봄마다
퍼올려 퍼올려도
저리도 고운
연둣빛 산과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