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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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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 있는 봄.


BY 빨강머리앤 2004-04-06

아침, 문을 열고 청소를 한다. 이불을 털기위해 베란다로 나섰는데 뭔가

내 눈길을 사로잡는게 느껴진다. 우리집 베란다 아래, 화단에 목련 세그루였다.

언제 저리 꽃을 피웠을까 싶게 하얀목련 두그루, 자목련 한그루가 크고 환한

꽃송이를 한들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감나무 여린잎이 풀색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에 그리 바빴다고 내 발아래 바로 여기서 봄이 하얀색으로 자주색으로 피고 있는것도

모르고 있었는지.. 자세히 살피니 여기저기서 봄이 피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쥐똥나무는 새잎을 틔우는 대신 노란꽃망울을 가득 달고 있고, 울타리 아래로 가지를

드리운 개나리 노란꽃도 가득 피어 났구나.

전나무 가지에 푸른잎 돋을 자리가 예사롭지 않다.

 

엊그제 양평의 산수유꽃 행렬도 장관이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전령사인 산수유꽃은 남쪽에서만 피는 꽃인줄 알았다.

주말에 양평에 있는 한 산수유 마을에서 축제에 다녀왔다.

가늠할수 없는 봄바람이 제법 불고 있어 쌀쌀 했지만, 햇살은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산수유 하면 '산동'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양평이야 말로 가장 오래된 산수유 나무를

자랑하는 동네란다.  농사를 짓는 작은 동네가 추읍산 아래 둥그렇게 모여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산수유는 집과 집 사이, 밭과 밭사이에서 피고 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다 보니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그 평화로운 정경속에서 노란꽃사태를 벌이고 있는 산수유를 찾아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잦았다. 산수유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변과 조화로운  정경속에서 어김없이

사진작가들의 심상치 않은 눈빛들을 만날수 있었다.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 산수유꽃 행렬일수도 있었을 양평의 산수유꽃축제에는

그렇듯 여러부류의 사람들로 복작거리고 있었다.

보리싹 초록물결이 산수유노란꽃과 어울리던 정경속에서

어김없이 사진작가들을  만날수가 있었고 그 사이로 다정히 걷는 연인들,

동호회에서 나온듯한 젊은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개울가엔 송어잡기행사가 한창이었다. 쌀쌀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바짓가랑이를 

걷고, 팔뚝을 걷어부친 남정네들이 대여섯명이 개울가로 들어섰다.

미리 풀어놓은듯  개울엔 어른 팔뚝 만한 송어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지만

개울에 들어선 송어잡이꾼들로 해서 개울물은 이내 흙탕물이 되고

불안한듯 꼬리를 감춘 송어들은 쉽사리 잡혀주지 않았다.

송어한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구경하는 이들은 신이나서

송어잡는 남정네들을 향해 얼른하나 잡아 올리라고 성화를 부렸다.

송어잡기 행사가 흥겹게 진행되는 반대편엔 장터가 열렸다.

국수도 맛있고, 도토리묵도 감칠맛났다. 무엇보다도 따끈따끈하고

쫀득한 메밀전병이 너무 맛있어 둘이 먹다 하나 죽는데도 모를 정도였다.

산수유가 만발한 곳에서 산수유차 한잔도 빼놓을수가 없지.

시큼하고 달콤한 산수유 차 한잔씩을 들고 논가를 걷고

밭가를 거닐며 산수유꽃을 찾아 다녔다.

몇백년씩 묵었다는 그곳의 산수유 나무는 둥치가 우람한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잣나무 사이로 목련과 어울린 산수유나무를 만나면

그 기가막힌 정경에 발걸음을 멈추고는 했다.

밭둑에 한가롭게 나물캐는 아낙은 산수유축제보다 나물캐는 재미에

푹 빠진 모양이었다. 쑥이 한창이고 냉이는 벌써 꽃을 피운것도 보인다.

 

이 동네에 들어섰을 때부터 참 아늑하구나 싶었는데 그것은 마을뒤에

서있는 둥그스름한 산봉우리가 있어 그리 느껴지나 싶었다.

추읍산이라고도 하고 칠읍산이라고도 했다. 산봉우리에 올라서 보면

일곱개의 마을이 보인다고 해서 칠읍산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봉우리는 둥그스름한데 그 높기는 상당하다. 높고 둥그스름해서 인가,

마을이 그 꼭 그모양새를 닮았다. 그 봉우리는 이 마을에 풍요의 신으로

작용하는지 이고장 특산물은 두릅도 크고 싱싱하고  논이면 논, 밭이면

밭이 다 풍요롭게 보인다. 바지런한 동네분들이 가꾼 마을이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도 좋다.  마을사람들의 성정을 닮은 동네는 깨끗했고,

그 사이로 노란산수유꽃은 지천이었고, 하늘이 그날따라 파랗게 일렁이고 있었다.

 

새총을 만들어 아이들과 노는 행사가 있었다. 정성스럽게 깍아둔

Y자 모양의 나무가지를 양쪽끝을 손질해 고무줄을 걸고 가운데 둥든조각천을

붙여 새총을 만들어 놓았는데 아들녀석이 제일 좋아했다. 넓직한 논바닥에

두아이를 세워놓고 새총으로 과녁맞추기를 했다. 처음치고는 아들녀석의 솜씨가

제법이다. 새총쏘는것에 금방 흥미를 잃었는지 딸아인 밭둑에 지천으로 돋아있는

쑥캐느라 정신이 없다.

잠시후에 떡판이 벌어졌다. 산수유즙에 버무린 쌀가루로 반죽한 영양떡이란다.

묵직한 떡메를 든 아저씨 아줌마들의 얼굴에 웃음이 잔뜩 묻어나고

한복을 곱게 차린 할머니의 구령에 떡메가 허공을 가른다.

찰기가 더해진 떡을 썰어 콩가루를 묻혀 한입씩 먹어보는 이들의 얼굴에

행복이 묻어난다.  고향의 맛을 한입씩 베어물고 행복에 젖는 우리들..

떡메와 콩가루에 묻힌 인절미에서 고향을 발견하는 일이 가능했으므로

오늘의 이 행사에 후한점수를 주어야 겠다 생각을 했다.

 

산수유축제는 두곳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두곳을 왕래하며 참여를 하는 방법이 가장 좋았겠지만 '개군리' 축제만 보고

아쉬움을 접은채 돌아서 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만발한 산수유만큼이나 풍요로움을 안고 왔으니...

내 가까이에도 봄이 새근거리고 있었다.

우리집 베란다 아래 화단에도 목련이 피고 아파트 담장에 개나리가 지천이다.

복사꽃도 피었고 매화꽃도 피었고, 담장에 민들레도 하나둘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