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티비를 통해 '번지점프를 하다'를 다시 보았다.
꾸미면, 백마탄 왕자님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털털함 그 자체인 이병헌의 조금 지난 모습이
반가웠고, 거의 신인에 가까웠던 이은주의 모습은 상큼했다.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일약,
주연급 스타로 부상했고, 작가주의 감독이랄수 있는 홍상수 감독의 눈에 띄어 '오, 수정!'
이란 영화의 주연배우로 급부상했다.
그러니까, 주말에 본 것 까지 합해서 세번이나 다시 본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세번째 보아도 새로운 감동이 일었던 우리나라 영화상 보기드문 수작이 아닐까 생각하는
영화였다. 오늘날, 우리영화의 극장 점유율이 50%대를 넘긴지 오래고 '실미도' 가
천만관객 동원이라는 영화개봉 사상 초유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 있다. 관객 천만을 동원한 영화들이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하고 홍보를 위해 대대적인 마켓팅을 벌이는 영화라는 점.
그래서 순수영화, 독립영화, 또는 작가주의 영화들이 대작들에 밀려 제대로 간판도 걸어
보지 못하고 스크린에서 사라는지는 현상을.
번지점프를 하다'하다 역시, 흥행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던 영화다.
많이 사람들이 보고 영화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참 좋은 영화였는데 말이다.
이 영화는 참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영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그래서 어쩌면 영화못잖게 영화작업의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음악'이 아름다운 영화다.
태안반도 어디 해안가 솔숲에서 주인공 남녀가 춤을 출때 흐르던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은 아름답고도 그 장면과 참으로 잘 맞아 떨어졌다. 일찌기 이 아름답고 경쾌한
곡은 탐크루즈와 니콜키드먼 주연의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환상적인 음악으로
태어났었고, 우리영화 '텔미썸씽'에서는 분위기와 공포를 아우르는 매개로
쓰였던 적이 있다. 이 세영화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스타고비치의왈츠는 당연,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흐르던 음악이다.
저녁노을이 지고 솔숲과 하나된 주인공 남녀는 노을에 물들어 까만 그림자가
되고 태희(이 은주)가 허밍으로 시작된 곡이 서서히 웅장한 오케스트라 반주로
바뀐다. 인후( 이 병헌) 가 태희의 스텝을 따라 단조로운 동작을 하는 동안 노을진
바다를 배경으로 이 음악이 흐르던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 장면은 영화음악을 빼놓고 얘기하더라도 한편의 그림같은 아름다움을 주었던
장면이다. 또 하나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은 영화의 주제곡이다.
이 곡은 오래된 우리가요로 아는데 나는 사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된
생소한 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후가 제자와 뉴질랜드의 어느 계곡으로
떨어질때 엔딩장면에서로 흐른 이 곡은 아름다움과 슬픔, 그리고 쓸쓸함의 이미지를
잘 살린 음악으로 보여진다.
둘째, 이 영화는 성적소수자내지는 성에 대한 편견을 이야기한 몇안되는
영화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잘못 보면 동성애를 다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희와 인후의 사랑의 깊이를 알고 나면 그들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되는 동성애 코드를 과감히 사용한 감독의 의도가 오히려 신선했었다.
어느 비오는날 우연히 만난 두사람은 하늘이 점지해준 반쪽과 반쪽의 만남이었다.
태희없이는 인후의 존재가 불필요 했고, 인후 없이는 태희존재 또한 무가치했다.
인후의 입대를 앞둔 하루 전날 낙엽진 공원에서 만난 두사람, 태희는 인후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너 보고 싶은면 어떻게 하지? 오늘 많이 봐 둬야 겠다. 절대 잊어
먹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인후의 얼굴을 반쯤 가린 태희가 말한다. '아까워서 한꺼번에 다 못보겠어'
눈,코, 입 하나씩 마음에 담아 둘 양으로 태희는 인후의 얼굴 이쪽을 가리기도 하고
저쪽을 가리기도 한다. 그런 사랑, 우리 해봤을까? 그런 사랑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너무 아름다우면 슬프다더니 눈물이 찔금 흐른다.
그런 사랑이었기에 태희의 죽음은 인후의 제자에게로 옮겨온 것이겠거니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인후가 만난 고등학교 제자, 그에게서 태희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림에 대한 사랑, 음료수를 마실때 새끼손가락을 올리던
습관, 그리고 한마디씩 던진 태희가 했던말.... 인후에겐 그가 제가가 아닌 태희의
전신으로 보인다. 태희만을 영원히 사랑할수 밖에 없는 인후에겐 태희의 겉모습은
상관이 없다. 오로지 태희의 마음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이 인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다. 동성애자 라고 낙인 찍힌 인후는 학교에서 쫒겨나고
아내와 이혼을 감수해야 했다. 이젠, 갈길이 없다. 오직 태희에게 가는 길밖에..
그자리, 태희가 자신에게 오기 위해 급히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인 그자리
'용산역'사에 우두커니 앉아 오지 않을 태희를 기다리던 인후 앞에 제자의 모습을
한 태희가 나타난다. 그리고 둘은 뉴질랜드로 떠난다. 밧줄도 묶지 않고
둘은 손을 잡고 아래로 아래로 낙하한다. 새롭게 태어나 사랑할거라고 맹세하며
둘은 번지점프를 하며 생을 마감한다.
셋째, 영화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대사들이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많다.
특히, 고등학교에 부임해서 담임을 맡게된 인후가 학생들 앞에 놓고 '인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칠판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줄을 긋고, 그것을 지구라고 가정을 한다. 그 지구에 바늘하나를
꽂고 하늘에서 밀씨하나가 하늘하늘 떨어져 그 바늘에 꽂힐 확율,,, 그것이 인연이다. 라는
말.... 이 커다란 지구에서,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서울에서, 그것도 00학교에서,
그것도 0학년 0반으로 만난 너희와 나는 그런 확율로 이자리에 있는 거다라는
'인연'이라는 말이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이 커다란 지구에서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하고많은 사람중에 당신과나,
혹은 우리 아이들, 혹은 그대, 혹은 내 친구로 만난 우리들은 얼마나 대단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인가 싶은 생각으로 물큰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인연에 대한 명징한 해석, 내지는 적절한 비유를 내 이토록
가슴에 와닿게 알아 들은적이 또 있었을까 싶었다.
태희와 인후처럼, 생을 넘나드는 사랑은 아니더라도,
내 남편, 내 가족 , 내 형제, 내 아이들, 내 친구들.. 그리고 그대들..
나와 인연맺은 사람들을 가슴 뜨겁게 사랑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는
강렬함은 감동으로 바뀌고... 영화는 끝이 나고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행복한 건 나~'.. 김연우의 애잔한 목소리가 흐르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가슴을 적시는 뜨거운 것이 눈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영화,다시보면 또 감동 받을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