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62

손가락이 아파서..


BY 빨강머리앤 2004-03-20

그때 그 계단에서 손가락을 접질렀을때 그길로 한의원이든,정형외과엘 달려 갔어야 했었다.이렇게 오랫동안 손가락 하나 때문에  이토록이나 행동의 제약이 클 줄 알았다면.....지금,잠시 오른손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을 감았던 깁스를 푼다... 깁스를 한채로 키보드를 두드리니 '정타'보다 '오타' 치는 횟수가  오히려 더 많은 까닭이다.

손가락 관절에 인대가 늘어 났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니 늘어난 인대가 정상으로 회복될때까진 깁스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권고대로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다닌지 오래 되었다. 깁스를 하는 까닭은 손가락을 보호하고 되도록이면 충격을 가하지 말라는 의미건만, 가끔씩 이렇게 나는 편법을 쓰고 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쓴다는 명목으로 깁스를 잠시 푼다는걸 알면 남편은 지금까지 순수한 의도로 도와주었던 집안일을 당장에 그만 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물하고 상관된 일을 남편이 담당해주고 있다. 조금전에도 설겆이를 끝내고 출근을 했고, 물청소도 남편의 온전한 몫이다. 다친 손가락 하나 하나에 깁스를 할수 있었다면 깁스를 한채로 고무장갑을 끼고 내가 해야 할 정도로 평소에 남편은 집안일로 부터 한걸음 물러나 있었던 사람이다.

아침에 남편이 설겆이를 하는 양을 지켜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 맘에 안들었다. 이 깁스만 아니면 내가 팔걷고 나서고 싶은맘이었다. 벌써 이주째에 들어서니 설겆이가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니, 세제를 세번이나 펌프를 하네.. 나는 한번만 펌프하고도 충분히 같은 양의 설겆이를 끝냈는데 말이다. 물은 어쩌자고 계속 틀어 놓는거야...  내가 쓰는양의 배는 쓰는것 같아.. 한손은 뒷짐지고 깁스한 오른손을 남편 눈앞에 대놓고는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밥그릇을 그렇게 놓으면 안되지.. 작은것 부터 닦아서 아래에 놓고 큰것을 위로 해야 가지런히 정리가 될것 아니냐고요...

남편의 청소 솜씨도 영 맘에 안차긴 마찬가지다. 당장이라도 깁스를 풀고 내가 나서 시원하게 청소를 끝내고 싶게 하는 솜씨다. 아빠의 방 닦는 솜씨가 영 아닌것 같은지 딸아이가 나선다. 내 방 청소는 이제부터 내가 할께.. 그래,이 기회에 아이들 방은 아이들에게 넘기는 것도 괜찮은 일일듯 해서 마뜩찮은 솜씨나마 딸아이에게 제방 청소할 전권을 넘겨 주었다.

내가 일을 할때마다 깁스를 풀면 인대보호를 목적으로 한 깁스가 소용이 없다는걸 시간이 지나면서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바다. 그래도 한손으로 식사 준비를 내가 직접한다. 엊그제는 퇴근해 오는 길에 봄나물을 파는 할머니에게서 취나물을 한바구니 사왔다. 깁스를 한 내 손가락을 보더니 '어쩌다 그랬냐?'며 걱정 스레 물어 주셨다. 나물이 많이 남았다며 이천원어치 치고는 너무 많다 싶을 만큼 나물을 싸주시는 할머니에게  어리광이 부리고 싶었을까.. 손가락이 아프니 불편한게 한둘이 아니네요.. 차라리 아프고 말지 이 깁스 팍, 풀어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예요.. 했더니 그러신다. '그러게. 병신들은 얼마나 불편하것어' 할머니가 하신 '병신'이란말이 나쁘지 않았다.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한 표현을 그리 하셨지만 할머니의 얼굴 표정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진지한 연민이 느껴졌으니까.. '많이 파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돌아서려니 할머니가 의표를 찌르는 한마디를 건넨다. '애기엄마도 손가락 때문에 속상해 하지 말고 맘 살살 달래며 살어..다쳤는데 어쩌것어.'

그래, 손가락 하나 다쳤다고 , 그 손가락 때문에 내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고 얼마나 많은 화를 표현했던가..내 손가락이 불편해서 나도 모르게 불편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지나치게 내 불편함 만을 앞세웠던것은 아닌가... 내 손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주변사람들에게 필요이상의 불편을 주는 행동은 없었던가.. 그런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할머니 한테서 산 취나물은 자연산이었는지 향기가 진하게 배어 나왔다. 할머니가 직접 캔듯한 취나물의 뿌리의 흔적들이 얼마나 고귀하게 느껴졌는지... 할머니 말씀을 되새기며 끓는 물에 파랗게 나물을 데치고 찬물에 헹궈 참기름을 듬뿍 두르고 나물을 무쳤다. 일련의 과정을 한손에 의지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향긋한 취나물 냄새,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주방을 가득채우고 내 맘까지 흘러 드는 것만 같았다.

손가락 하나가 내 행동을 이토록이나 통제하는 지금까지의 일을 되돌아 보며 손에 장애가 있어 아니면 발에 장애가 있어 손발을 못쓰는 사람들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손을 못쓰는 어떤 이는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화가가 되기도 하였고, 사지가 마비된 근육병 환자는 입으로 키보드를 두드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신체의 불편은 결코 마음의 불편에 우선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리라... 마음에 열정이 있는 자는 분명 신체의 불편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던 이야기들을 되짚어 보며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다. 날이 밝고 화창하다.. 내 발은 아무탈없이 튼튼하니, 이발로 봄빛 푸르른 들을 마구 걸어 다녀도 상관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