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랜 옛날 같이 느껴지는 '몸짱스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배우 '권상우'주연의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았다.
나 자신은 한창 인기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연예인에
별로 점수를 주지 않는 편이라 한창 줏가가 폭등할때도 권상우라는 연예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가 이 영화를 선택했던건 남편의 부탁도 있었거니와 의외로 평단에서의
좋은 평이 있었던 바가 크다. 무엇보다 시인이었던 유하라는 사람이 감독한 영화는
어떤 시적 감흥을 담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크게 작용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잘 생긴게 확실한 권상우가 내겐 이렇다할 매력을 주지 못했다고 하면 권상우 팬들에게
한대 얻어 맞으려나?, 어쩌려나....
적어도 영화 후반부, 몸짱 권상우의 매력이 발산되기 전까지 그의
연기란 풀린눈, 어정쩡한 발음, 혹은 생각없는듯한 표정이 다소 실망스럽기 까지
했다. 물론 영화는 배우가 전부는 아닐것이다.그리고 영화는 주인공 혼자 이끌어 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또다른 축을 이끌어 갔던 우식역의 배우가 눈길을 사로잡았고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리 만큼 한가인은 얼굴 만큼이나 예쁜 연기를 보여 주었다.
70년대 후반 개발 열풍에 휩싸인 강남의 황량한 거리가 주무대다.. 지금 30년도 안되어서
그 거리는 목하 대한민국의 가장 휘황찬란한 도심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흙바람마저 날리는 황량한 강남의 말죽거리... 그곳에 이사온 현수( 권상우) 의 눈에 비친
학교는 한마디로 조폭 집단이 따로 없었다.
짝꿍 햄버거라는 뚱뚱한 친구는 포르노잡지책을 친구들에게 천원씩을 받고 빌려주고
건방기가 철철 흐르는 우식은 싸움질할 만반의 태새를 갖추고 사는 것 처럼 보인다.
유급이 되어 일년을 꿇은 친구는 애꿎은, 힘없는 반친구들을 상대로 돈을 뜯고 폭력을
행사한다.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폭력교사들이다. 꼴찌를 했다는 이유로 교장선생님께
불려간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살벌했고, 그날 수업시간에 문제를 못푼 학생들은
출석부를 든 선생님의 무자비한 뒷통수 가격에 그대로 고개가 꺽이고 만다.
친구들 앞에서 뺨을 때리는 교사들.. 거만한 표정으로 나타나 한번씩 겁을 주고 가는
선도부, 군사독재를 생각나게 하는 군복을 입고 지휘봉을 들고 다니며 말보다는
지휘봉을 휘두르고 군홧발을 휘두르는 교련선생. 그리고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의
뺨을 때리는 교장선생,..
그 살벌한 고등학교 풍경이 어디 말죽거리만의 풍경이었겠는가, 싶어 곁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남편한테 물었다. 영화가 조금 과장한 측면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고교시절이 비슷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어쩐지 때리고 부시고 맞고 비명지르는
학생과 선생님들의 몸부림이 서글퍼 보였다.
하지만 살벌한 학교와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청춘의 피는 뜨거웠다.
그 청춘의 뜨거운 피를 수혈해주는 것은 '사랑'.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현수는 예쁜여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도,
아버지로부터의 구타도 그녀를 생각하면 다 참을수 있을것 같다.
그녀 앞에 서면 참을수 없이 가슴이 뛰어 '좋아한다'고 고백도 못하고 한발 물러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를 우식이 뛰어든다.
'쌈짱'인데다 멋있는 외모, 화끈한 성격으로 현수로 하여금 항상 열등감 비슷한 것을
갖게 하던 녀석이다.이소룡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친구가 되어버린
전학와서 유일한 짝꿍이었는데 녀석이 은주를 자기 애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식과 은주가 데이트 하는걸 멀리서 바라만 보는 현수...
은주에 대한 사랑을 마음으로만 키우는 착한남자 현수...
하지만 이를 어째, 나는 현수를 보고 싶은데 왜 자꾸 혀짧은 권상우만 보인다.
엽서에 말린꽃을 부쳐 음악을 신청하는 남자가 이상한건 아니었지만
왜그리도 닭살이 돋던지...
은주를 위해 기타연습을 하고 강변에 앉아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입술,...'을
어정쩡하게 부르는 모습은 보는 내가 참 어색해 혼이 났을 정도였다.
하지만, 후반부로 흐를수록 영화는 비장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본래 르와르 영화를 즐겨하지 않은 편향적인 영화취향을 가진 나도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전무후무한 완벽한 비장미를
느꼈던바다.
선도부와 한판 붙은 우식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짝꿍 햄버거가 포르노잡지를 팔다가 들켜 죽을 만큼 폭력을 당하는걸
보며 현수는 자신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에의 유혹을 받는다.
이소룡의 폼새를 연구하고 그의 자세를 따라하기 위해 불철주야 연마의 시간을
갖는다. 마침내 몸짱인 권상우가 웃통을 벗었다. 옷을 벗으면서 권상우는 비로소
현수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소룡 특유의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쌍절권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강렬한 이미지가 읽혀지기 시작했다. 단련된 몸, 무장한 정신이 빚어내는
빛나는 눈빛은 예전의 현수가 아니다.
우식과의 맞장에서 우식을 쓰러뜨렸던 선도부가 현수의 의지를 실험하기라도 하듯
윗층에서 우유를 던진 학생을 무자비하게 때린다. 교실은 아수라장이고
학생들은 겁에 질려 있다. 그 사이로 현수가 나선다. '야,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올라와.!!' 옥상에 마주선 선도부와 현수.. 초반부는 선도부의 우세인듯
했다. 하지만 현수의 아버지가 누군가. 태권도장의 관장님이 아닌가.
현수의 어퍼컷은 예상외로 셌고, 선도부가 넘어지자 비겁하게도 한꺼번에
공격해 왔다. 괜히 쌍절권을 익힌건 아니지... 현수의 옆구리에서 나온 쌍절권이
춤을 출때마다 상대편은 한명씩 쓰러지고 마침내 피투성이가 된채 현수의
일방적인 우세로 싸움이 끝났다. 하지만 박수칠 일은 절대 아니다.
서로 반대편에 싸웠지만 그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인 것이다.
경쟁을 독려하는 사회는 경쟁을 하게 만든 학교를 낳았고, 경쟁 을 시킬수
밖에 없는 교사는 말대신 매를 들어야 했던 가슴아픈 시절의 이야기인 것이다.
현수는 이겼지만 학교에서 잘린다.
늘 폭력을 행사하고 누구보다 무섭게 대했던 아버지가 현수를 위해
선도부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현수는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진심을 읽는다.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한 현수는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
여기서 잠시 잊혀진듯한 은주와의 사랑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감독은 사회적 폭력이 어떻게 학교폭력으로 연결되는지.
그런 폭력문화에서 자라는 청춘은 얼마나 우울한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고 그 속에 양념처럼 사랑이야기가 첨가된 것이었을 테니...
그래도 그속에 양념처럼 곁들인 현수와 은주의 사랑이야기는 예뻤다.
폭력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이소룡을 흉내내며 청춘의 한때를 우상에 바치던
현수와 우식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비록 꿈을 대신한 몸부림 일망정 말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시인감독이 만든 작품치고는 다소 거칠었고, 권상우는 동갑내기 과외하기 에서 보여준
신선한 이미지를 많이 잃어버린 느낌이었지만 홍콩르와르를 연상 시키던 마지막
싸움장면의 비장미가 꽤나 영화적 감동을 주었던 멋진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배에 왕(王) 자가 새겨진 조각같은 권상우의 몸매는 덤~~
학원이여, 부디 폭력은 멀리하라..이건 영화가 주는 메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