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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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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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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BY 빨강머리앤 2004-03-16

2학년 들어 학교 급식을 먹고 오는 아들녀석의 귀가 시간은 대체로 일정치 않다.

어제도 들어올 때가 지났는데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녀석을 기다리며

오늘은 또 어디에서 정신을 팔다 오는건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계단식인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올라오는 소리가 거실에서도 들리는데

마침 엘리베이터 올라오는 소리가 나고 6층인 집앞에서 멈추는 소리까지 들렸다.

하지만 아이 발자욱 소리보다  '삐약, 삐약'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먼저 들려 왔다.

엉, 웬 병아리?? 병아리 소리가 몇번 난후에 초인종 누르는 소리가 난다. 아들녀석이다

작은 스트로폼 상자에 병아리 한마리가 들어 앉아 삐약거리는걸 내게

내민다. '엄마, 이거 학교앞에서 500원 주고 샀어'

지난해 병아리 두마리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는지라 지레 겁부터 났다.

귀엽게 삐약거리는 병아리의 연한 주둥이를 보는 순간,드는 생각이란,

그 병아리 참 귀엽기도 하지.. 그런 느낌이 아닌, 이거 보나마나 금방 죽을텐데..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들여다 봐서인지 원래 연약한 병아리건만 웬일인지 삐약거리는 소리
빼고는 걷는 폼새하며 눈을 꿈뻑이며 하는양이 영 불안해 보였다.

말그대로 햇병아리를 아들녀석이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난 그런 녀석에게 대뜸 화부터 냈다. 금방 죽을 지도 모르는데 왜 사왔느냐,

병아리는 본래 넓다란 마당에 내놓고 키우는 법이지 이렇게 꽉막힌 아파트에서

기를게 못된다며..

그래도 병아리가 귀여운지 연신 병아리 주변을 맴돌며 아들 녀석이 하는말이 그랬다.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자기는 3년동안 길렀대' 3년이라구..

그건 어른닭이 아니라 닭할아버지쯤 되겠네. 그렇게 말하는 녀석이나 그말을

믿는 녀석이나 다 웃기는건 마찬가지고 ,..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수상한 햇병아리 녀석은 새로운 공간이 낯설었는지 내가 보는대로 어딘가가

안좋은 건지 연신 삐약거리면서  스트로폼 상자안을 맴돌았다.

아들녀석이 사온 병아리 한마리를 보자 작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맘때즘,그 봄에 잊지 않고 병아리 장수 아주머니가 학교앞에서

병아리를 팔았고, 병아리를 보면 사죽을 못 쓰던 딸아이가 용돈을 털어

두마리의 병아리를 사들고 왔었다.

베란다에 라면박스로 병아리 집을 만들고 그속에 병아리를 넣어 주고

아이의 소꿉놀이 그릇에 물을 넣어주고 먹이도 주었었다.

병아리 두마리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싫지 않았었다. 오히려 삐약거리는

병아리 소리가 집안에 활기를 주는 듯 했고 아이들은 병아리의 행동하나하나를

유심히 들여다 보며 기뻐하고 신기해했다.

그 병아리들이 사흘만인가, 시들시들 앓더니 그날밤 몸이 뻣뻣해져서 쓰러져

있는걸 제일 먼저 일어난 딸아이가 보았다.

아마도 아이는 병아리에게 아침 인사라도 할 양이었던 모양인데 아무 느낌없이

뻣뻣한 병아리를 보자 저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엄마를 불렀다.

한눈에 봐도 죽은 게 확실했다. '엄마, 병아리가 아직도 안 일어났어.왜

지금까지 자고 있지?'하는 아이 얼굴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병아리가 병에 걸렸었나 보다. 네가 병에 걸린 병아리를 사온거야. 아파서

그만 죽었나 보네.. ' 엄마의 마지막 선고에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죽은것 같은 병아리를 보면서도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인데

죽었다는 말에 서럽게 울던 아이를 보며 참 마음이 찹착했었다.

죽은 병아리를 위해 딸아인 피아노를 쳐주었다. '작은슬픔'이라는 피아노 곡이었다.

 

그렇게 병아리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는 나로선 당연 아들녀석이

작년 딸아이와 비슷한 포즈로 들고 오는 병아리를 보는 순간

죽은 병아리의 그 뻣뻣한 몸이 생각나는건 당연 지사였을 것이고

이 병아리 역시 얼마를 견디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병아리가 달가울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제가 사온 병아리라고 아들 녀석의 정성이 지긋하다.

쌀가루를 조금 뿌려 주었는데 병아리가 먹을 생각을 안했다.

혼자 삐약거리는 폼이 영 안되었던지 '엄마 한마리 더 사와서 친구 만들어

줄까?'했다. 아서라, 한마리도 지금 불안해 죽겠는데 친구도 좋지만

그친구 병아리도 얘처럼 비실거리면 두마리를 다 어쩌니...

 

그 병아리가 하룻만에 죽고 말았다. 예견된 일이긴 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병아리를 판 사람이 미웠다. 그 사람도 나름대로 먹고 살려고 한일이었겠지만

500원을 주고산 피라미 같은 목숨에 대해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를

생각하면 이건 작은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생명경시풍조를

경계하라고 캠페인을 벌인다. '생명존중' 그것은 참 좋은 말이고 가장 고귀한

명제다.. 하나, 돈뜯겠다고 아이들 유인해서 야산으로 끌고가 죽이는 어른들이

있는한,  어린이를 성폭행 하고 유기하는 어른들이 있는한 생명존중에 대한 구호는

헛구호 일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무얼 보고 배우겠는가 말이다.

아이들도 저희들 끼리 다 안다. 어른들이 저지른 흉악무도한 사건까지 저희들끼리

어찌 알아서 수군대고 있다. 정보화가 발달한 현실에선 공자님 왈, 나쁜것도 보지도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한 , 그말이 통하질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병아리가 하얀 스트로폼, 하루동안 자신의 집이 되어 주었던 작은 공간에서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딸아인 또 그랬다. 엄마, 병아리 자는 거지?

아, 이젠 설명해 주기도 지쳤다. 아들 녀석 말대로 마당 넓은 외할머니댁으로

병아리를 보내 키우게 하자는 말이 끝난지 24시간도  안지났는데

오늘 아침 병아리는 남편의 손에 들려 흙으로 돌아갔다.

하룻동안의 삐약거림에 신나하고 신기해 하고 기뻐 어쩔줄 몰라

병아리의 행동 하나 하나를 흉내내던 아이들에게 500원의 목숨은 너무

단순하고 연약했다. 사랑을 느낄 만한 시간은 그리도 짧았고

찝찝한 느낌이 버무려진 슬픔은 아이들의 기억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아,아름답고 푸릇한 봄이 갓태어난 햇병아리 한마리에겐 잔인한 봄이 되고 말았으니..

이를 싫어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