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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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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란다. 역사는 흐른다.


BY 빨강머리앤 2004-03-14

일요일 오전, 설겆이를 막 끝내고 커피를 한잔 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누굴까? 일요일 인데도 출근한 남편일까?  출근한지 한시간도 안되었는데

지금 전화할리가 없는데 누굴까, 궁금한 마음에 전화기를 집었다.

'여보세요'  이제막 변성기에 접어든듯한 남자아이 목소리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저 한별이하고 같은반 친구, 상순데요...아, 그렇구나.. 갑자기 멍한 느낌,

낯선 느낌이 들어 잠시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4학년 딸아이에게 걸려온 첫번째 남자아이 전화였다.

'그러니, 지금 한별이 없는데 전할말 있니?'

'저기 조금 있다 한별이 들어오면 비상연락망 보고서 저 한테 전화좀 하라고

전해주세요' ... 그리고 끝이었다.

무슨일인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애가 남자친구인지 어쩐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딸아이에게 걸려온 남자친구로 부터의 '첫번째 전화'라는 것이 그렇게

나를 낯선 느낌에 빠져 들게 했을 뿐이다.

그 낯섬이란, 우리아이가 많이 컷구나. 이젠 남자아이로부터 전화도 오는구나,

싶은 일종의 통과의례를 치루고 있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쿡쿡, 웃음이 났다.

아무일도 아니고 거저 전화한번 온거 뿐인데 이러쿵 저러쿵 생각해 보는

엄마인 내가 우스웠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선머슴같은 구석이 있는 딸아이에게 다가올수 있는 이런식의

변화에 대해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떤 엄마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딸아일 보며 그아이가 커서 월경을 맞고 함께

생리대 사러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요.. 라고 말하는걸 본적이 있다.

나도 막연히 내딸아이완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구처럼 지내리라 그런 생각은 했었다.

아이가 어렸을때 얼른 저 아이가 커서 나랑 삶에 대한 향기로운 느낌을 공유했으면

했었다. 하지만 삶에 대한 향기로운 느낌을 공유하기엔 나랑 아이와의 세대차가

생각보다 컸고 세상은 내가 미루어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변해갔다.

그런 변수들을 잘 조절하는 일, 아이와의 세대차의 간격을 좁히는일은 내게 주어진

숙제이다. 그것은 결코 쉽잖은 일인걸 아이와 부딪힐 때마다 느끼며 때론 절망하고

때론 생각지 못한 곳에서 답을 발견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아이가 커가면서 생기는 변수들을 어른의 눈이 아닌 아이 입장에서

살피는 일일것이란 생각을 한다.

내가 읽는 책을 같이 보려는 딸아이.. 그것을 비록 완전히 이해하진 못할지언정,

새로운 책에 그것도 엄마가 보는 책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를 보며 조금씩 내가 생각하는

영역의 포물선이 그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보는 영화를 관심있어 하는 딸아이... 그것또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엄마가 보는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딸아이를 보며 또한 내가 관계맺고 싶어하는

그 자리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딸아이를 보는 것이다.

아이는 자라고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몸도 마음도 균형잡히게 자라면 그보다

더 좋을게 없겠지만 끝없이 부딪히고 화해하고 부서지고 아물면서 자라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은 자라는데 역사는 혼동스럽기 그지 없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탄핵정국'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을 들여다

보려니 이보다 더한 야단법석이 없다. 그동안 피흘려 가꾼 민주주의의 꽃밭이 당리당략에

눈이 어둔 무리들에 의해 망신창이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뭐 묻은 개가 겨묻은개 나무라는 식이다. 정치권에 발담그고 있는 사람중

그중 깨끗한이 몇이나 될까, 이런 비관적인 시선은 괜한것이 아니다.

대대로 당파싸움에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듯이 오늘날 관료들 또한 그시대의 그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것 같아 참으로 답답하였는데 결국은 그마나의 민주주의

퇴보시킨 탄핵정국에 분노를 금치 못하겠다.

역사에도 생명이 있을 터이다. 역사의 진보에도 숱한 상처와 치유의 역사가

있어 왔던 것처럼...

역사의 발전에 정치권이 제동을 거는 것은 어인 모순인가.

역사의 발전을 이끌고 가도 쉬원찮을 판국에...

하지만 외세의 침략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우리민족성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그 힘을 보여줄 것임을 믿는다.

한손에 아이들을 한손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여든 이들의 눈빛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불씨를 본다.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역사또한 유구하게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