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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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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BY 빨강머리앤 2004-03-06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고 있는 창가에 엎드려 편지를 썼다.

오랫만에 '친구에게'라고 시작한 봄편지를 썼다.

얼마만인가, 한때는 참 열심히 편지를 썼었다. 그래서 취미가

편지쓰기라고 얘기 하고 다닐 정도였었다. 그러다가,

아마도 메일이라는 것이 보편화 될 때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편지대신

편리하게 메일로 편지를 대신했다.이 얼마나 편리한 소통수단인가,

참 빠르기도 하지. 게다가 실시간이고 또 비용도 없다는것이 신기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편리함에 안주해도 괜찮은 건가

하고 의심이 들기도 했다. 편리함에 안주하다 보면 나태해지는 뭔가가

부작용으로 나타나리라 생각했던 것이 괜한 우려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발버둥을 치는 셈으로 오랜 친구, 내 고향친구에게만은 편지를 썼었다.

이년전까진.. 컴퓨터 복사용지에 틈틈히 모은 꽃사진을 부치기도 하고

아이들의 칼라펜을 이용해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했었다.

없는 솜씨였지만 그것은 어느 문방구에서도 살수 없는 나만의 편지지가

되어 주었다.

그 편지를 봉투에 넣고 친구네 집 주소를 적는 동안 나는 적어도

친구의 곁을 향기롭게 맴돌고 있진 않았을까... 내 영혼 한자락

친구를 향하여 보내는 그 일이 참 좋았다. 설레임도 있었다.

어느 틈엔가 하나둘씩 사라진 우체통을 찾으러 동네를 순례하기도 했었지.

찾다 못해 그냥 우체국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그길을 걷는 동안 만났던

꽃들, 그 꽃들이 만들어낸 꽃길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아파트 담장을 따라 진홍빛 덩쿨장미가 무수히 피어나기도 하고

장미가 지면 질세라 하얀 찔레꽃이 향기로운 길을 만들어 주곤 했었다.

노랗게 물이든 어린 느티나무나 붉은 잎새를 한장 한장 떨구던

벗나무 가로수 아래를 걸어가던 늦가을엔 그 정취에 함뿍 빠져

문득 아름다운 슬픔에 젖기도 했었다.

어느 늦은 봄엔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길로 접어들었다가 하얀산사꽃을

만나기도 했던 아름다운 길을 기억해 본다.

작은 우체국, 손님 대기용 소파 옆에 금붕어 몇마리가 헤엄치고 있던 어항이

생각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던 기쁨도 떠오른다.

우체국에서 만난 이는 환한 웃음을 웃었다. 우체국에서 만나는

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각자 우편을 보내는 이를 향한 사랑 한조각씩

가슴에 담고온 이들.. 그들의 맑은 웃음을 만나는 곳은 우체국이었다.

우표열개가 나란한 우표한매를 살때면 늘 '기념 우표 있나요?" 하고 묻곤

했었다. 그러다가 언제는 우리들꽃이 그려진 기념우표를 받으면

때아닌 기쁨에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우표는 쓰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두고 두고 보다가 하나씩 편지 봉투에 부칠때마다 아련해 지는 내 마음까지

받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지.

한번은 우리 산하에 사는 들새들이 주인공인 때도 있었다. 그 새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 새이름처럼 노래가 들려올것 같았던 한때가 있었다.

이젠 오래된 이야기다.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해 나온 우표를 마지막으로 나는 우체국을 가지 못했다.

더구나 그때 산 기념우표는 반만이나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그건

그후로 그만큼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만큼 내 마음을 실어보내는 일에 게을렀다는 반증이다.

메일이라는 편리한 수단이 결코 줄수 없는 은근한 매력ㅡ

그것은 편지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매력이다.

내 손수 글을 쓰는 일이 내 손가락의 자극을 통해서 내 뇌를 신선하게 하듯이

내가 쓴 편지는 친구에게 신선한 기쁨 한자락 전해줄 것임을 믿는다.

 

엊그제 신문에 딸려온 광고지에서 오려낸 하얀꽃들이 만발한 꽃다발을

편지 한켠에 붙였다. 봉투에 편지를 넣고 오랫만에 친구의 주소를 적는다.

밖은 때아닌 봄눈이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놓았다.

흰눈을 뒤집어쓴 화단의 나무들의 행렬이 아름답다.

날은 영하의 기온이라는데 어쩐지 저 햇살만은 봄의 것만 같다.

봄편지를 띄워 보내는 내 마음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