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엔 찬바람이 제법 불었지요. 꽃샘추위라더군요.
언땅을 따사롭게 어루만지던 태양도 잠시 숨을 고르며 꽃샘추위를 몰고오는
바람을 바라만 보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제는 꽃샘추위에 맞서 햇살이 꼿꼿하게 일어서
우리 베란다에 한움큼 은빛나는 햇살가루를 뿌려주었습니다.
그 빛에 이끌려 잠시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 두었습니다.
그 베란다에 버리지 못하고 둔 식탁이 하나 있습니다. 식탁위엔 작은 화분이
몇개 그리고 지난가을에 수목원에서 만든 조롱박이 나란히 손을 맞잡고 있고,
또 지난 여름에 아이들이 흙으로 만든 인형들이 몇개 놓여 있습니다.
정리를 하지 않아서 어지러운 그것들 사이로 찰흙판이 놓여있고
만들다만 고무 찰흙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딸아이가 빛을 따라가듯 그곳에 앉아 있는걸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햇살이 가득 내리는 베란다 식탁에 앉아 조롱박과 흙으로 만든 인형과
바삭하게 말라버린 화분 사이에 앉아 고무찰흙을 만지작 거리는 아이.
그것은 '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 머리위로 금빛가루를 뿌려줄듯
환한 햇살이 내리는 정경이 따뜻했습니다.
나름대로 삶의 방향을 가늠하느라, 엄마와 선생님 말씀 그리고 책에 쓰여진
진리들의 그 어지러운 향방을 정리하느라 나름대로 힘에 겨울 아이를 따뜻이
위로하듯 햇살이 한줌 아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어찌나 곱던지요.. 잠시 일손을 멈추고 아이와 그 아이 머리위로 쏟아지는
봄햇살을 한동안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고무찰흙을 이기고 잘라서 찰흙판에 식탁을 차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갖가지 고무찰흙은 밥도 되고 나물도 되고 김밥이며 햄버거가되기도 하여
아이가 만든 식탁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범세계적인 식탁이 되었지만 나름대로 알록달록 예뻤습니다.
'엄마, 내가 차린 밥상 어때? 저 고무 찰흙도 햇볕을 받으면 조금씩 자랐으면 좋겠다. 화분의 나무처럼...'
햇살을 받으면 자라는 나무들과 꽃처럼 햇살을 받아 자라는 아이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지난해 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의
봄은 먼저 황사소식을 실은 바람이 먼저 전해 주었습니다. 봄은 아주 멀리에 있는 듯이
느껴졌지요. 남쪽에선 연신 봄소식이 전해져 왔지만 그건 신문이
알려준 대로 멀리에 있는 남도의 들녘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현관에 들어서며 '엄마, 선물이야' 하고 손을 내밀어 보라 그러더군요.
아이손엔 노랗고 작은 꽃이 두개 들려 있었습니다. 두송이라 하기엔 너무 자그마한
노란꽃이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산수유 꽃이었습니다. 매년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던 , 섬진강변 하동에 노란물감을 들이부은듯 샛노랗게 피어나던 그 산수유꽃이
아이손에 두송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길로 아이손을 잡고 그 꽃을 딴 자리로 가보았습니다.
아파트 뒷편 화단에 심어진, 그냥 앙상한 나무로만 보았던 한나무에서 이제막 노란움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산수유 나무가 있었다는게 놀라웠고,
내 사는 서울에서 봄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는게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지난 봄.
아이는 그렇게 작은손길로 내게 봄을 전해 주었습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의 기세가 생각보다 오래 갑니다만 그래도 보이지 않은
곳에선 언땅이 풀리고 봄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살펴 보아야 겠습니다. 내주변 어딘가에서 봄을 준비하고 있는 나무들을요.
그 나무중 하나는 산수유 나무일수도 있겠지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노란꽃을
피울 산수유... 그 나무를 만나면 나는 또 지난봄의 그 작은 손길로 전해준 봄의 전령사를
떠올리며 잠시 행복에 젖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