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가면서 마음도 커간다는걸 가끔 잊고 산다. 아니 자주 잊고 산다.
그래서 사소한 일로도 아이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때마다 아이들은 엄마가 내맘을 몰라준다고
반항기를 내보이고 나는 나대로 녀석들을 힘들게 키워 주었더니만(?) 엄마 말도 안듣는다고 서운해 한다.
성장통은 몸만이 겪는 병이 아니다. 마음도 성장통을 겪는 법이다.
마음이 겪는 성장통은 어쩌면 몸이 겪는 아픔보다 훨씬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 크느라 겪는 성장통을 치료해 주는 일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법이란 생각도 든다.
나는 얼마만큼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50점도 못 되는 낮은 점수를 받게 될것 같다.
요즈음 들어 부쩍 아이들과 부딪히는 횟수가 많아진다. 그
건 아이들 마음을 내가 점점 못 읽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자주 야단을 치고 아이들은 내맘을 몰라준다고 반항하다가 지쳐 아이들은
이제 엄마한테 내맘 읽어 주세요 라고 예쁘게 표현하지 못하고 엇나가기도 하는것 같다.
내가 그리 만들었다 싶은데도 얼른 나서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못난 엄마인가.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선배가 내 하소연을 듣더니 그랬다.
나는 아무래도 모성보다는 책임감만 앞서는 부모같다고... 가만 생각하니 그말이 내 맘이라...
지나치게 아이들을 훈육하려는 모습만 보인게 아닌가 싶었다.
부드럽고 자애로운 모성본능에 충만한 엄마의 모습이라야 가장 이상적인 엄마일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한번은 딸아이가 엄마가 너무 모범적인 것만 얘기하는것 같아서 답답해. 라고 말한적이 있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해놓고도 돌아서서 내심 놀랐었다.
그말은 피아노연습을 하라고 한 내말을 잘 듣지 않아 아일 앉혀놓고 일장훈계(?)를 늘어놓은 일이 있고 난 후였다.
피아노 학원보다는 개인교습이 낫겠다 싶어 작년부터 두아이를 피아노 개인교습을 시키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잘 따라하고 연습도 충실히 하는듯 하던 아이들이 그것도 매너리즘에 빠지는지
언젠부턴가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 하고 있었다. 아들녀석은 아예 연습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고
그나마도 선생님이 오셨을때 열심히 잘따라하면 고마워할 정도였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피아노공부 할거니 말거니... 딸아인 정말로 피아노를 더 치고
싶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였고 아들녀석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 눈치였다.
피아노 공부를 계속할것 인가 말것인가는 사실 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나로선 딸아이 보다 오히려 아들녀석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었었다.
녀석이 어릴때 보여준 범상한(?) 행동이 나로 하여금 그 일말의 기대를 제공해 주었으니까.
세살즈음이었을 것이다. 어린 녀석의 손을 잡고 산책을 갔다 오는 길에, 아니면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집으로 가는 작은 골목길이 있었다. 그 길 모퉁이를 지나갈때면 내손을 잡고 묵묵히 걸어가던 녀석이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내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곤 했었다.
차 한대 정도가 지날갈 정도의 길이었기에 갑작스럽게 차가 모퉁이를 돌아 나올지도 몰라
아이손을 잡고 길을 가는 중이었는데 말이다. 내 손에서 벗어난 아이가 길을 건너 한군데로 향했는데
그곳에 서서 가만 귀를 기울이고는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따라 가보니 그곳은 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피아노학원이었고 안에서 누군가가 피아노 치는 소리가 났었다.
아이는 그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가끔 그렇게 천사가 되기도 했었다.
길모퉁이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나오는 피아노소리에 이끌려 길을 건너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작은 아이를 생각하면 그래서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잔잔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아이는 '리틀베토벤'이라는 근사한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고 말았었다.
그리고 나 역시 한동안 그런 사실을 잊고 있었었다.
아이가 여섯살 이 끝나갈 무렵 뭔가 아이에게 새로운걸 배우게 하고 싶었었다.
에너지 넘치던 여섯살 남자아이에겐 아마도 태권도가 딱 일듯 싶었는데 의외로 아이는
태권도 학원은 절대 안가겠다고 버텼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딸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을 데려갔다.
여자아이들도 그렇지만 남자아이들은 대체로 7살 이후라야 피아노 배우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선생님이 말씀 하셨다. 녀석이 할수 있다고 하고 선생님께서 테스트 끝에 학원에 다니기로 결정이 났었다.
처음이라 그랬는지 아이는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배우는 눈치였다.
피아노 기초를 굳이 연습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집에 와서 선생님 흉내를 내가며 피아노 연습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걸 바라보는 엄마 심정은 얼마나 뿌듯했던가.. 그때 까지만 해도 아인 사랑스러운 천사의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칭찬이 자자하시고 같이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 보다 앞서 진도를 나가는 획기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저러다 진짜 피아니스트 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을 할정도였다.
아이가 집중력이 좋아 책이 뚫어질것 같아요. 선생님의 그런 과도한 칭찬은 아이를 한껏 고무시켰고
엄마의 마음을 고무풍선처럼 부풀려 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일년을 못 넘겼다. 학원을 오가는 길에 문구점 앞에 놓여있는 오락기에 푹빠져든 것이다.
직접 오락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쩔땐 두어시간을 그렇게 오락기 앞에
서서 집에 오는것조차 잊을 정도였었다. 화내고 매를 드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아이는 점점 피아노로 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학원을 빠뜨리도 않아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학원에 가서도 나름대로 제분량을 치고 나오니 적당한 핑곗거리는
오락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제분량의 피아노 공부는 마치되
예전의 그 피아노에 대한 열정비슷한 것을 상실한 아이.. 그 상실을 주도한 범인은 오락기.. 내 공식은 그랬다.
물론 나름대로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쉬웠던 피아노 공부가 점점 어려워 지고
체르니로 들어서니 연습 분량도 많아진 것을 무시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획기적인 전환의 방법이 바로 개인교습이 아닐까 하던 차에 이사를 오게 되고
나는 주저없이 피아노 개인교습 선생님을 불렀다. 하지만 아들녀석은 역시나 별 신통한 반응이 없었다.
피아노 수업에 있어서는 열심히 배우는듯해 보이지만 예전 같지 않고 일주일에 두번 선생님이
오시는 날 외에 해야할 연습을 게을리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에게 지금 시점에서 피아노를 그만 두게 하는게 옳은건가
아니면 지금 이 과도기 같은 시기를 넘기고 끝까지 아이에게 피아노 공부를 시키는게 옳은 건가..하고.
아이가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 할때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엄마는 말이지 너 혼자서도 악보를 보고 너무 어렵지 않은 곡정도는 칠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중에라도 삶이 쓸쓸할때나 적적하다고 느낄때 피아노 앞에 앉아
내 마음을 쏟아 놓을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 음악을 사랑하는 일은 네 인생을 풍요롭게 할테니 말이다.
네 손으로 네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 얼마나 근사한 일이니? 네가 지금 어렵다고 포기하면
평생 누릴수 있는 그 근사한 일을 못하게 될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겠니? ... 그
리고 너의 음악을 가끔 엄마에게도 들려준다면 그 또한 고마운 일이고 말이다. '
'아이 키우는 일, 좋은엄마 되는 일 이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 또 있을까요?'이런 하소연을
하게하는 녀석들이 어쩌다 내게 기쁨을 주는 때도 있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가 피아노 쳐 드릴께요'하는 때이다. 둘이 앉아서 한옥타브씩을 차지하고 같은 곡을 치기도 하고
주거니 받거니 배우고 있는 피아노 곡을 들려 주기도 한다.
딸아이가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 아들녀석을 가르치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아들녀석이 역할을 바꿔서
선생님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것보다도 동요곡집을 치면서 딸아이의 반주에 아들녀석이
노래르 부르는 모습이 나를 가장 감동케 한다. 그모습은 아이들이 있어 내가 이만큼 행복하구나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감동의 순간이 되어준다. 그래, 내가 너희들 피아니스트로 기를 생각 해본적이 없느니...
그렇게 피아노랑 즐겁게 놀면서 크려므나. 그리고 커서도 지금 이 예쁜 모습의 한때를 잊지 말고
기억해서 그렇게 꼭 지금처럼 그렇게 음악과 함께 살아가려므나..그런 모습 상상해 보니 흐뭇함이 가득 밀려온다.
내 이런 기쁨 때문에 지지고 볶고 살아가려니 싶어진다.
볼륨을 켜둔 라디오에서 쇼팽의 왈츠곡이 흐르고 있다, 쇼팽의 피아노 곡을 들으며
다시 내마음에 돋아나려는 욕심의 싹을 살짝 안으로 꺽어둔다.
봄방학 마지막날이다. 꽃샘추위속에서도 봄기운을 숨길수 없는 햇살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가르는 햇살 한줄기가 내가 서있는 베란다에 와서 따사롭게 머물다 가는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