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며칠 비가 내렸습니다. 내마음 강나루에 서러운 풀빛을 짙어 오게할
'봄비'였습니다. 이 시는 언젠가 고교때 선생님이 보내주신 시입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리운 싯구이기도 합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봄이 시작되는 상황을 시각과 청각, 그리고 공감각적 이미지로
그려놓은 참으로 고운 시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봄비가 내리면 제일먼저 이수복님의 이시가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지는 것은요...
참말, 비가 내리고 봄빛이 조금씩 짙어 지는걸 눈으로 확인할수 있습니다.
산봉우리에 남아있던 잔설마저 봄비에 씻기고 나목만 앙상하던 겨울산에
조금씩 생기가 돌듯 반짝 거립니다.
햇살이 잘 비치는 쪽 화단엔 누렇게 퇴색한 잔디 사이로 봄풀들이 뽀족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냉이가 동전만 하게 자리를 차지하며 푸른잎새를 드러내놓고
내리는 햇살에 만족한 웃음을 흘리고 있습니다.냉이를 뿌리째 뽑아 향기를 맡아 봅니다.
큼큼, 흙냄새와 비릿한 풀냄새가 섞여있습니다.
파릇한 이끼도 봄비에 자리를 넓히고 언땅에 온기를 불어 넣어 주려 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종달새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니
종달새 울음소리도 듣고 휘파람새인지, 고운새의 우짖음도 들려 옵니다.
그들은 봄의 전령사 들입니다. 새는 아주 멀리 있습니다. 높은 나무 꼭대기,
사람들의 시선으로 부터 한창 벗어난 곳에서 고운 목소리만 들려 주고 있습니다.
봄비에 깨끗하게 씻긴 하늘이 세수를 막 끝낸 아기얼굴처럼 투명한 날입니다.
동네를 한바퀴 도는 중에 만난 '봄의 전령사' 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을 지그시 감고 낮잠을 즐기던 어린개가 사람을 발견하고 꼬리를
흔들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개가 귀여워 어쩔줄 모릅니다. 주인아저씨 인듯한
분이 '그렇게 이쁘냐, 데려다 키울래?' 합니다.
와,,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고 난리를 피웁니다.
생각해 볼것도 없이 안돼, 라고 단호히 거절하는 엄마를 원망어린 눈길로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꼭 강아지 같습니다.
그래도 어쩔수 없습니다. 나도 애완견 보다는 똥개가 더 친근하지만
내놓고 키울 마당도 없고, 아파트라는 공간은 결코 개를 키울만한
구조가 아니란 생각을 합니다. 누누이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일렀지만
아이들은 개만 보며 귀여워 어쩔줄 모르겠다는듯이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곤
하니 이 실갱이는 언제 끝날련지요...
연신 강아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아쉬워 하는 아이들을 달랩니다.
나중에 마당있는 집에 가서 우리 강아지 많이 키우며 살자.
마당에 강아지가 있는 집을 벗어나니 곡식을 심기 위해 가지런히 고랑을 친
밭이 보입니다. 그길에서 더 이상 나갈수 없어 한동안 밭을 들여다 보려니
아지랭이가 어룽이는게 보입니다.
새싹과 종달새, 강아지와 아지랑이를 만나고 집으로 오는 길입니다.도중에
노란 유치원 복을 입고 선생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꼭 조금전에 만난, 새싹과도 같고 종달새노래 소리랑도
비슷한거 같았습니다. 강아지도 닮았고 아지랭이 처럼 여리게도 보입니다.
노란병아리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봄비 그치자, 봄이 화들짝 놀란듯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마음에 한웅큼 봄을 들여 놓은날,
향긋한 봄나물로 봄을 맛보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