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꽤 자주 보는 편인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이란 비디오를 통해서 조용히 혼자 감상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서울살때는 아이들이랑 나들이 할겸, 가끔 주변을 환기를 할겸해서 극장나들이를 연중 행사처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이사오고 부터는 영화관 구경할 생각을 아예 접어야 했다. 주변에 영화관이 없기 때문이다. 뭐 굳이 대형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면야 서울까지 나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할수도 있어야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영화매니아 일것도 같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만 가득 대형스크린을 담아두고 텔레비젼 모니터로 만족을 하며 혼자 영화감상하기를 어언 다섯해째에 들어서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를 조금 벗어나면 양수리란 동네가 있다. 아시다 시피 그곳은 북한강가다.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자동차극장'이란데가 한군데 있긴 하다. 그냥 극장이라면 벌써 한두번쯤은 마실삼아서라도 가봤을 테지만 (여기선 엄마의 기질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영화관 나들이는 아이들과 함께 보는 가족영화라야지 가능하다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들이대야 하기 때문이다) , 나에게 있어 자동차극장은 젊은 연인들의 전용장소란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다소 보수적인 생각을 들게 하는 곳이기에 가볼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던 장소였다.
그런 곳을 본의 아니게 엊그제 다녀왔다. '자동차극장'에 가자는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버리고 만것이다. 그것도 자정이 넘어 하는 심야상영으로 말이다. 남편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텅빈국도를 씽씽 달려서 태어나 처음으로 자동차 극장엘 간다는데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나의 온갖 애교와 설득 작전으로 자동차극장 나들이는 드디어 성사 되기에 이르렀다. 아, 영화 그리스에서 한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오픈카와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바르고 느끼한 웃음을 지었던 내 젊은 시절 한때의 우상이었던 존 트래볼다와 디바의 전설, 올리비아 뉴튼존. 그들의 데이트의 한장소였던 자동차극장에서의 헤프닝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막 사랑이 움트기 시작하려는 찰나, 정신적인 사랑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처녀와 육체의 욕망으로 손이 먼저 그 처녀의 가슴으로 향하던 바람기 다분한 존트래볼타와의 그 잊을수 없는 장면이 파노라마 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낭만과 젊음 한조각만 접하다 와야지... 그런 야무진 생각을 했던건 어디까지나 내가 첨으로 자동차 극장을 나들이 한다는 촌스러움에 있었으리라.
아무튼, 친구의 차를 타고 이젠 지나다니는 차도 끊긴 한적한 국도를 씽씽 달렸다.신호등도 무시하고 말이다. 늦은 출발을 무마하기 위한 방편이라기 보다 웬일인지 한적한 국도를 달리다 보니 되살아 나는 듯한 젊은 치기 같은것이 한밤중 국도변을 달리는 우리를 종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이동네에 유일하게 있다는 자동차극장은 소박했다. 소박하다 못해 밋밋하기 까지한 자동차 극장은 자갈밭 같은 넓다란 공터가 있고 그 앞에 스크린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갈밭에 주차를 하고 벌써 시작하고 있는 영화에 눈길을 주기에 앞서 어디선가 풍겨오는 솔향기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뒷편에 소나무가 병풍처럼 무리져 있어 그나마 밋밋함을 만회해주는 듯했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가 보았던 그날로 해서 우리영화사상 초유의 관객몰이를 했다는 '실미도' 였다. 바로옆관에서는 '태극기 휘날리며'가 상영되고 있었지만 망설이것 없이 실미도를 선택했던건 순전히 설경구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스케일이 워낙에 큰데다가 주인공 한사람에게 스포트 라이트가 집중되는 방식이 아니어서인지 설경구의 연기가 다소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실은 영화가 더 짜임새 있게 흘러갔다라고 본다. 강인찬역의 설경구도 아니고 끝까지 의리를 보여주었던 조중사역의 허준호도 아니고 합리적이고도 인간적 성격을 보여준 안성기도 아닌 실미도의 684대원 전부가 주인공 이기 때문이다.
인권유린의 역사를 실미도란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설마 그런일이 있었으리라고 누가 알수 있었을까, 인권유린의 역사를 자행한 정치인들과 그 치졸한 정치의 일련의 과정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거짓보도로 국민들의 알권리를 막은 언론이 두터운 장막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말이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은 강도나 살인범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미도를 보면서 정치인이야 말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부류 들일 거란 생각을 했다. 서른한사람의 목숨을 한낱 개미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정치인들이란 족속,, 그들도 한사람의 아빠이며 남편일 것일 터인데. 게다가 그들은 비열하게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이는 일을 피해가기 위해 훈련병들을 다루는 기간병들에게 살해명령을 내렸다. 훈련병들과 기간병들은 이미 친구가 되어 함께 뒹굴고 해변을 축구장삼아 축구를 할 정도로 가까워 졌는데 말이다.
김신조를 포함한 서른한명의 간첩에 대항해 서른한명의 살인병기로 만들어진 684부대원들의 숨은 이야기 '실미도'가 언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실미도의 숨겨졌던 이야기들이 날마다 새롭게 실리고 한 국회의원에 의해 실미도 부대원들의 실명이 공개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십오년이라는 세월동안 묻혀 있었던 우리역사의 비극 현장을 보러 사람들은 실미도를 찾고 있다고도 한다.
실미도 관객 천만명 돌파와 실미도의 숱한 뒷얘기들, 그리고 실미도에 몰리는 관광객들... 이런 현상들이 어쩐지 급조된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반짝하는 인기몰이 일뿐이며, 우리의 잘못된 근성중 하나인 쉽게 끓고 쉽게 식어 버리는 '냄비근성'의 또다른 현상은 아닐지 하는 걱정은 그저 기우일까?
또,새삼스럽게 그들이 비록 범죄자였을 망정( 부대원 가운데는 평범한 시민도 포함되었다 한다) 그들도 천부적 인권을 지닌 인간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한 정치권에 대한 우리의 분개는 과연 떳떳하기만 할까?
그저 좋은게 좋은것이고 잘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며 인권을 내팽개친 정부의 정책에 비판없이 따라가기만 한 우리들에겐 과연 원죄가 없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 혹시,또다른 '실미도'사건이 조작되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적은 있는지 늦었지만 이제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소 무거운 주제였다. 하지만 684부대원들의 끈끈한 동료애와 조중사가 품속에 간직하다 떨어뜨린 부대원들에게 나눠줄 사탕봉지는 가슴을 적시는 뜨거운 눈물을 쏟게 할만큼 감동적이었다. 간접적인 방법이나마 684부대원들을 살해 할거라는 메세지를 건네주고 결국엔 자살을 함으로써 자신의 손으로 직접 684부대원들을 제거하는 일을 피해간 훈련병대장(안성기)의 최후역시 비장한 슬픔과 감동이었다.
언젠가, 실미도 얘기가 먼 옛날로 회자되는 가까운날 실미도를 찾고 싶다. 썰물로 물이 빠져나간 실미도와 무의도를 바닷길을 걸으며 실미도 대원 서른한명의 명복을 빌어 드리고 싶다. 일몰이 아름답고 해변가의 하얀모래밭이 눈부시던 서해의 작은섬, 그 섬이 보았던 비극의 역사를 살짝 묻고 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가 건네준 눈물젖은 화장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새벽으로 가는 자동차극장에 막이 내려지고 대여섯 대의 차량이 조용히 출구를 향해 극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동차 극장은 멀어지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내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