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보내고 하루, 어제는 저녁 참에 눈이 내렸다. 고운 분가루가 잉크빛
하늘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차마 추워서 밖으론
못 나가고 베란다에 서서 아이들과 눈구경을 했다. 찬바람이 조금 불었고,
조용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저녁,... 첫눈도 아닌데 눈송일 받아 먹었다.
내리는 눈송이중 가장 큰걸 손바닥에 받아 낼름 거리며 받아먹는 딸아인 행복해 보였다.
곧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저녁 풍경속으로 하얗게 펼쳐진 세상은 겨울의 가장
멋드러진 정취를 자아냈다. 꿈결같은 모습으로 깊어가는 저녁, 멀리 산들도 희끗희끗
눈세상을 연출하고 있어 세상은 모든 반문명적이고 반인간적인 감정 까지도 모두
감싸 안을듯 풍요롭게 변하는것만 같았다.
아직은 그렇게 겨울의 한복판이다. 겨우살이 동안 우리의 식탁은
다른 계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해 질수 밖에 없는 때이기도 하다.
김치면 되었고, 김치찌게면 조금더 풍성해지고 따뜻해지는 우리의 겨울식탁..
우리의 선조들은 채소가 나지 않는 겨울을 위해 김치를 개발했다지만,
오늘날은 채소들의 계절이 따로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선조들이 다시 살아나 겨울에도 파란 오이며 상추며 풋고추를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갑자기 궁금해 진다.
결코 좋다고만 할것 같지 않다.. 순리에 따라야 하느니,하고 한마디 호통이나
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순리를 역행하면 부작용도 반드시 따르게 마련인걸 우린 알고 있다.
풀을 먹어야 하는 소가 동물성 사료를 먹은 탓에 광우병이 생기고 결국은
인간에게 그 피해가 전이되는 무서운 사례를 보듯이.
땅을 넓힌다고 갯벌을 간척해 두니 땅을 척박해서 농사는 잘 안되고
바닷생물들이 죽어가면서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했듯이...
그래서 장을 보다가 파랗고 싱싱한 오이가 나를 유혹해도 겨울철엔 오이를 잘 사지 않게
된다. 고추장에 푹 찍어 점심상에 놓으면 제격일것 같은 풋고추도 잘 사지 않게
된다. 그것들은 제철인 여름에, 태양의 세례를 한껏 받는 그 계절이라야만 가장
맛있고 우리 몸에도 좋은 법인 것이니.
그래도 겨울밥상에 푸른 채소는 그리운 법이다. 이때를 즈음해서 나는 '봄동'과
'섬초'를 자주 애용한다. 그것들의 계절은 고맙게도 지금이 제때인것이다.
북녘보다 상대적으로 햇볕이 좋은 남도의 땅에서 찬바람을 피해 제몸을 한껏
땅을 향해 흙을 보듬듯 자라는 섬초와 봄동을 볼수 있다.
아마도 바다를 향해 흙을 품고 있는 섬에서 자란다는 뜻의 겨울시금치인 섬초의
그 짙푸른 초록색은 바다의 심장을 닮아 그리 짙푸른 색으로 자랐을 거란 생각이
들곤 한다. 저도 꽃이 피고 싶은데 꽃을 피울 심장이 없어 노란 잎을 감싸쥐며
안으로 갈수록 노란 잎을 모두어 꽃처럼 보이는 봄동은 아마도 봄이 그리워
이름이 '봄동'인가 부다고 생각이 들곤 한다.
바다의 심장을 닮은 짙푸른 섬초와
봄이 그리워 노란 꽃술을 달듯 노란잎을 모두고 자라는 봄동...
그것들이 채소가 귀한 이때의 멋진 비타민 친구들인 것이다.
봄동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상추를 대신해 쌈을 싸먹는 일이다.
되도록이면 노란꽃술처럼 생긴 부위를 뜯어 깨끗이 씻은 다음에
쌈장에 싸먹어 보시라. 고기가 없어도 달그작한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봄동은 여러가지 요리가 가능한 채소이기도 하다. 익은 김치가
물리거든 봄동으로 겉절이를 해먹으면 상큼한게 꼭 봄을 먹는 기분이 난다.
봄동의 연한 잎으로 쌈을 싸먹고 푸른잎은 데쳐 나물을 해먹으면 그것도 별미다.
그때는 반드시 소금과 간장을 반반씩 섞어 간을 맞춰야 맛있다.
또 남은 봄동잎이 있거든 버리지 말고 토장국을 끓여 보시라.
된장국에 넣은 봄동잎은 여리게 풀어져 씹지 않아도 절로 목으로 넘어간다.
섬초는 주로 나물로 먹는다. 흙에서 바로 올라온 섬초를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파랗게 데쳐낸다. 나물무치는 방법대로 갖은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내면 달그작한 맛이 있어 입맛을 돋군다. 섬초는 그냥 시금치와
또 다른 맛을 낸다. 단맛이 느껴지고 향이 많이 난다. 뽀빠이가 시금치먹고
힘을 냈다지만 우리에겐 시금치보다 더 좋은 섬초가 있으니 겨울철 입맛을
찾고 싶은분, 그리고 기운을 찾고 싶은 분이 있다면 섬초를 많이 드시길 바란다.
섬초는 '동초'라고도 부른다. 아마도 겨울에 나는 채소라는 뜻일게다.
섬초 역시도 토장국에 넣어 먹으면 맛있다. 겨울철, 가끔 무슨 국을 끓일까,
고민되는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 섬초를 넣은 토장국을 끓여 내면 좋을것
같단 생각이 든다.
섬초와 봄동이 있어 겨울식탁이 푸르러 진다.
더구나 그것들은 추운겨울을 나는 것들이라 벌레걱정이 없어 농약도 안친다니
이건 유기농 그 자체인듯 싶다. 몸에 좋은 것들이란 제철에 나는 우리 음식이라
배웠다. 때는 조류독감이네, 사스네, 광우병이네 하면서 먹거리에 대한 비상시국이다.
이런때 우리의 토종 '섬초'와 '봄동'이 돋보이는건 당연 지사다.
오늘 저녁 봄동여린잎에 삼겹살, 어떠신가요? 대한민국의 힘있고 아름다운 아줌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