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18

산타를 믿나요?


BY 빨강머리앤 2003-12-19

 

날이 많이 추워졌다. 두꺼운 겨울외투를 꺼내려고 옷장을 열어보았다.

딸아이의 인디언핑크색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 버렸어야 하는 걸 아직 못 버리고 다시 겨울을 맞았다.

여전히 새 것 같다. 색깔도 선명하니 곱고 크기도 지금 입으면 딱 알맞을 옷을 그대로 걸어만 두고 보는 중이다.

겉으로봐선 아무렇지 않은 듯해 보이는 아이 옷에 결정적인 하자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코트의 튓면 엉덩이께에 불에 덴 자국이다.

작년, 오랫만에 맘먹고 오리털코트를 장만해 주었었다. 연한 분홍빛, 인디언핑크라는 파스텔톤 색조가 참 맘에 들었던 코트다. 아이도  새 옷을 받아들고 너무나 기뻐 했었고, 줄곧 그 옷을 입고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그 옷을 사입은지 한달 정도가 지났으려나,피아노 학원에 다녀온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뭔가 잘못을 한 것 같은데 쉽게 입을 열지 않고 집으로 들어섰다. 늘상 참새처럼 조잘대던 아이가 아무 말도 없이 옷을 벗어 내게 보이며 '난로에 옷이 타버렸어요'했다.

아뿔싸,

옷 산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태워 먹었느냐.. 아이가 놀랬을 생각은 못하고 야단치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그러게, 조신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결국은 옷 까지 태워 먹었느니, 학원에 들어서면 옷부터 벗어놓을 일이지 칠칠맞지 못하다는둥 아이를 혼을 내주었다.

제딴에는 옷을 태워서 엄마한테 혼날 생각에 아뭇소리 못하고 집에 들어 섰을 텐데, 그런 아이를 앞에 두고  눈물이 쏙 나오도록 야단을 쳤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도 옷이 걱정이 되었던지, '그러면 이옷 이젠 못 입는거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길로 엉덩이께가 타버린 아이의 코트를 들고 수선집을 찾았다.어떻게 메꿀 방법이 없겠느냐,

물으니 불가능하겠다는 대답만 되풀이하는 몇군데의 수선집을 나오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코트 한벌 마련해 주는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므로, 산지 얼마 되지 않는 코트를 그러한 이유로 다시 장만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 일이 크리스마스를 보낸 얼마 후의 일이었다.

두 아이의 겨울코트를 한꺼번에 장만하지 못하고 큰아이 것은 조금 일찍, 그리고 둘째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신해 코트를 마련해 주었었다.둘째아이에겐 크리스마스때 받은 연두색 코트 말고 우선 입을 만한

더블코트가 있었기에, 그 아이더러 연두색 나는 오리털 코트를 누나한테양보하면 안되겠냐고 넌즈시 물어 보았었다. 이 아이가 산타한테서 받은 연두색코트를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두색이 아무래도 여자아이옷 같지 않니?"하고 살살 거리니

'이건 내옷이니 아무한테도 못줘'하면서 아들녀석은 고집을 부렸다.

'봐라, 여기 여자아인듯한 사람이 수놓아졌잖니? 나중에 멋있는 다른코트 사줄테니 그옷 누나한테 주자'는데도

아인 막무가내였다. 산타할아버지가 자신한테 주신 고마운선물을 아무한테도 줄수 없다는게

그 아이의 이유있는 항변이었던 것이다.

아이 옷을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는 기로에서 착찹한 마음이 아이의 그 말에 그만 미소로 바뀌는것 같았다.

 '산타는 없어, 엄마가 산타를 대신하는 거야. 우리가 잘때 머리맡에 선물 놓는건 엄마라구.. 그러니 산타는 없는거야' 언제부터 인지 큰아이는 산타는 없는것이란걸 알아버렸다.  반면에 작은 아이는

제 코트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고 이 선물을 받았으니 산타할아버지는 있을거라 믿는다.

산타가 없는 거라고 말하는 큰아이에게 '이 세상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져서

산타가 한꺼번에 다 선물을 줄수 없어서 엄마가 대신하는 거'라고 부연설명을 해주고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애지중지하여 누나한테 줄수 없다는 작은아이를 달래어 결국은

연두빛의 오리털코트는 딸아이가 입을수 있게 되었다.

그게, 지난해에 있었던 일이다.

올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산타의 진실'을 알아버린 큰아이는 미리 엄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얘기해 둔다. '올 크리스 마스 선물은 해리포터 5권시리즈, 알았지?'

당연 산타는 엄마라는 얘기다. 산타의 존재를 믿고 안믿고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한가지 아쉬운건, '산타'라고 이름지을수 있을 동심의 세계를

잃어버리게 되는건 아니가 하는 거다. 이건 아이만의 탓이 아니다.

일찌기 발달한 정보화 사회는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이 너무나 쉽고 빠르게 접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어른들의 탓이라는 거라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동화로 이루어진 순수하고 아름다운 섬에 가둘수는 없다 손 치더라도 최소한

조잡한 어른들의 오락문화속에 내버려 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른아이들은 대장금도 보고 그런다던데 엄만 왜 못보게해?'

아이가 볼멘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아들녀석의 '산타의선물'인 연둣빛 코트를 딸아이가 입게 되어서 얼마전에 아들녀석에게 줄

오리털 파카를 사왔다.

일부러 남자아이에게 어울릴 듯한 진한베이지색으로 골랐다. 집에와 아이에게 입혀보니 보기좋게 어울렸다.

'멋있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는데 입었던 옷을  벗더니 누나한테 건네주고는 기어이 연두색코트를 품에 안았다.

산타가 자신한테 준 선물을 이젠 다신 누구한테도 주지 않을 거라며... 새옷을 받아 들었으나

색깔때문에 딸아이가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그 아이가 하는 말

'난 터프한게 좋아'였으니...이래저래 아이들 뜻대로 옷이 배정되기 했으되 보는 내 심정은 도무지 뒤죽박죽이다..

 

다행스럽게도 둘째녀석은 멀리 북극에서 루돌프 사슴을 타고 선물을 뿌려줄 산타할아버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꼭집어 뭘 갖고 싶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아이는 어쩌면 자기마음을 읽고 진정으로 원하는 선물을 가져다

줄거라 믿는듯해 보인다. 작년, 둘째아이가 받고 싶었던건 '딱지'였었다. 그것도 '왕딱지'.

그때 딱지가 한창 유행이었었다.

올핸 무엇이 유행인지 한번 알아봐야 겠다.

아직 산타의 진실을 믿는 둘째녀석에겐 진짜 산타가 되어 아이를 기쁘게 하고 싶고

산타를 대신하는 사람은 엄마라는 진실을 알아버린 큰아이를 위해서 '해리포터 시리즈' 를 장만해야 겠다.

어쨌든, 선물을 받아든 두녀석은 크리스마스의 풍요를 맘껏 즐기며 행복에 겨워 할것이다.

그 모습에 나 역시 행복한 웃음을 흘리게 될것임을 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