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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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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러한 것이다.


BY 빨강머리앤 2003-11-12

베란다 창을 열면 산이 보였다. 그 산자락 중간 즈음에 여즉, 푸르른

잣나무가 자리하고 그 근처를 노란잎을 한 나무들이 촘촘하게 엮어진걸

보며 내가 그랬었다. 저거, 자작나무 군락인가보다고. 그러자 남편은

그냥 낙엽송이라고 했고, 난 자작나무라 자꾸 우겨댔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군생활을 보낸 남편은 자기가 땔감으로 자작나무를 많이 베어보았기 때문에

자작나무를 자기가 더 잘아니 그만 우기라고 했었다.

난 오늘 저기 앞산에 보이는 노란잎새의 나무를 자작나무가 아닌 낙엽송이라

결론 짓는다.

자작나무 잎새는 저 누리끼리한 빛깔보다 훨씬 곱다는걸

어제 다시 한번 비디오로 본 '집으로 가는길'을 보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예모'감독, '장즈이'주연의 조금 오래된 중국영화.

그 영화를 보았던 늦가을 이후로 가을이면 매번 그영화 생각에 자작나무가 그리웠고,

'디'의 사랑이 그리웠었다. 가을의 정취를 마감하는 자리에 노랗게 반짝이는

자작나무는 꼭 들어 있어야할 그리움 한자락이었다.

삼합둔이라는 중국의 작은시골마을에 '디'라는 이름의 이쁜 여자가 살았다.

그 여자는 어찌나 이쁜지 마을총각들이 서로 장가들려고 벼르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자존심 또한 높은 여자였다. 그 마을에 작은 학교가 하나 있고

어느날엔가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한분 오셨다.

도시에서 오시는 선생님을 보려고 마을사람들과 아이들이 모두 마을길에 모여 들었다.

그 마을길은 작고 구불구불한 길이다. 풀잎들이 누렇게 퇴색해서 저녁노을속에선

황금빛으로 빛나는 순한 길이다. 가끔 목동이 양떼를 몰고 가는 평화로운 길이다.

그 양옆으로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다른나무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자작나무가 늘어서서 가을한자락을 노란손으로 반짝거려 주고 있었다.

그길을 배경으로 서 있던 디는 도시에서 온 선생님을 보고 한눈에 그만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학교공사가 시작되고 마을 여인네들은 일하는 남정네들을

위한 '공밥'을 각자 마련해서 내왔다. 디는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선생님이 먹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태껏 아껴두었던 가장 예쁘고

가장 좋은 그릇에 자신이 가장 잘 만드는 튀김만두와버섯만두를 만들어 자작나무 탁자에

놓고는 선생님이 와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길 바라던 디의 간절한 눈길이

아름다웠다.

자작나무가 많은 그 마을은 온통 자작나무가 지천이다. 자작나무 탁자,

학교의 자작나무 울타리,.. 집집마다 담벼락 대신한 자작나무 울바자..아마 학교 책걸상도

자작나무로 만들었으리라... 마을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는 교실천장에 매달 빨간천

(행운이 들어오라는 의미의) 을 짜는 영광된 작업을 맡았다.디는 자신이 좋아해 마지않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에 걸 빨간천을 정성껏 만든다.

 

영화는 디와 선생님의 사랑을 아들이 회상하면서 진행된다.

그 마을에서 사십년을 선생님으로 지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도시에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면서 회상은

시작된다. 회상장면에서 흑백이었던 화면이 컬러 화면으로 바뀐다.

검은색 화면에서 노란자작나무 물결을 이루는 밝은 색조의 화면으로 바뀌는걸

지켜보는 일은 보기드문 아름다운 일이었다.

화면가득 노랗게 자작나무 잎새들이 반짝이고 가을햇살을 받으며 황금빛으로

여울지던 갈잎들이 환하게 열렸다.

장예모 감독은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했던 '아이다'처럼 대형공연을

연출하느니 '집으로 가는 길'처럼 자잘한 아름다움, 그 속에서 느껴지는 깊이있는

감동을 연출하는 일이 더 맞는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무리가 아니었다.

 

자연을 오래도록 관찰하는 자만이 만들어 낼수 있는 최상의 화면.

자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때를 엮어서 만든 영화로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이렇게 편안하게 감상할수 있는 관객은 행복하다.

 

선생님을 향한 디의 사랑은 끈기와 순수함의 결정체였다.

선생님이 멀리 사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러 자작나무가 서있고, 누런풀들이

평화롭게 깔린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걸어갈때 디는 언제나 먼저 와

선생님을 기다리곤 했다. 자작나무 숲아래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던 디는

멀리서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면 볼이 발개지고 너무 기쁜나머지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 거였다. 멀리서 보다 또 멀리서 배웅하곤 하다가,어느날엔가

선생님을 우연히 마주쳤다. 선생님도 디가 좋다고 했다. 디가 빨간옷을 입는

모습이 예뻤다고... 그 뒤부터 디는 빨간옷을 입고 그길에 나가 선생님을 마중하고

배웅한다. 예전엔 후정에서 물을 길러다 먹었지만, 이젠 학교 앞 전정에서 물을

길러다 먹는다. 한번이라도 더 선생님 얼굴을 보기 위해.

디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는 그 낭랑한 목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자작나무 울타리 아래로, 하루도 빠짐없이 그 목소리를 듣기위해 학교 앞으로 갔다.

 

마을사무소에서 기거하던 선생님께 마을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식사를 대접했다.

드디어 디의 집에 선생님이 오시는날... 디는 정성껏 음식을 마련한다.

울타리를 돌아 선생님이 오시는게 너무 좋아 디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디의 그 웃음과 빨간옷이 너무 예뻐 선생님도 함박웃음을 짓고

디가 마련한 식사를 맛나게 하시는데.... 아 사랑이 오는구나 싶은 데서

갈등은 생기기 마련인것. 무슨일로인가 선생님이 당분간 떠나신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주신 머리핀을 머리에 꽂고 예의 그 빨간옷을 입고 선생님이 좋아한다던

버섯만두까지 쪄서 따뜻하게 데워 두었는데... 선생님이 가는 마차 소리가 마을길에

하얀 흙먼지 바람을 일으켰다. 디는 선생님을 위한 예쁜그릇에 버섯만두를 담고

 선생님을 기다리곤 했던 자작나무 숲길을 뛰어간다. 지름길로 가면

선생님을 앞지를 수 있고 선생님을 위해 만든 버섯만두를 드릴수 있을거라고 뛰어가다

넘어져 그릇이 깨지고 만다. 머리핀은 또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릇이 깨지고

머리핀이 사라지면서 뭔가 불길한 예감을 불러오지만 디의 사랑은 불길한 예감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주신 핀을 찾아야 했다. 그 넓은 들판에서 잃어버린

핀을 찾겠다고 디는 며칠동안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가 기적처럼 울바자앞에

떨어진 핀을 찾고 디의 어머니는 마침 그릇고치는 사람에게서 딸의 그릇을 고쳐 놓는다.

핀도 찾고 그릇도 때웠으니 이제 사랑이 다시 오겠지. 근데

선생님이 돌아오신다는 12월이 깊었는데 선생님은 아니오고 그런 선생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디. 눈보라속에서 몇시간을 선생님이 오는 방향에서 기다리다가

쓰러진다. 선생님을 부르며 신열을 앓다가 깨어난 디, 학교에서 낭랑하게 들려오는

선생님의 소리에 이끌려 아픈몸을 끌고 학교로 가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비켜주고 선생님이 나와서 자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병을 얻은아가씨에게

다가간다. 둘은 그렇게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다.

 

한결같은 사랑이 예있다고 둘은 평생동안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았다.

디는 아침마다 학교앞 자작나무 울타리에서 남편의 낭랑한 글읽는 소리 듣는걸

빼먹지 않았고 아버진 살아있는 동안 아이들을 가리키며 디를 향한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그러한 것이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부터 운구행렬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고집, 아버지가 그길을 기억했으면 한다면서 굳이 걸어서 집으로

모셔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눈보라치는

길을 걸어 마을로 들어선다. 선생님이 어린학생이었던 자신들을

데려다준 그 길을 더듬어. 자작나무 숲아래서 선생님을 기다리던

디가 걸어간 그길을 더듬어... 집으로 가는길은 장엄했다.

숙연했고, 아름다웠다.

가을이 간다. 자작나무 잎새가 가을햇살을 받으며 노랗게 흔들리는걸

직접 가서 보지 못할바에야,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까지 곁들인

'집으로 가는길'을 보는 것은  세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 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