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 재워놓고 늦은밤 아컴에 앉는다. 오래된 습관처럼,
여러님들이 써놓은 아름다운글들, 가슴아픈 사연들, 자연의 감상을
보탠 감성적인 글들... 그것들을 읽는 시간은 생활과 문학이 가장 조화롭게
무르익는 행복한 시간들이다.
그 행복한 시간속에 들어가 있으면 시간이 가는줄 모르게 마련이라
어느선에서 그만 엉덩일 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건 아컴이 갖는
숨은 매력 때문이리라..
이젠 내일을 위해 잠을 자두어야지 싶어 아쉬움을 반쯤이나 남기고
컴퓨터가 있는 방을 나와 잠시 티비를 켰다.
아, 그래.. 아침에 신문을 보다가 티비프로그램에 동그라미를 쳐 두었던 프로그램이
있었지. 지금 한창 진행중이네... 너무 늦지 않았나 몰라. 하고 화면을 들여다 보니
시인은 벌써 진안의 마이산을 바라보고 있다.
'로드다큐'라는 프로그램명 아래 가을특집4부작이 방영되고 있었다.
어제가 그 세번째라, 모악산에서 시를 쓰시는 박남준 시인의 발길을 따라 전주의
근간을 이루는 산들이 새겨놓은 가을을 만나는 날이다.
제목이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가을의 기억, 느티나무에 서다'.
느티나무, 고향의 서정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커다란 나무.
마을 중앙에서 그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활을 하던 든든한 나무인 느티나무를
내 언제부터 좋아했던가. 그냥 따스한 느낌이다.그저 편안한 느낌의 나무다.
시인은 진안 마을, 하늘을 이고 사는 산천마을에 닿는다. 마침 감 수확기라 산촌사람들은
감전지를 들고 감나무에 올라 감을 따고 있었다. 파란하늘 아래, 붉은 감잎은 반쯤은
떨어지고 반쯤은 햇살을 받고 반짝이고 있다. 파란하늘에 비춰보는 붉은 감의 색감이
눈을 부시게 한다. 주름진 얼굴의 감따는 할아버지께 슬하에 자녀를 몇 두었냐고 물었다.
'3남1녀 두었고 지금은 모두 시집장가 보냈지'하며 웃으신다. 집 뒷켠에 심어진 커다란
네그루의 감나무에서 딴 감으로 자식들 공부도 가르치셨단다.
지금은 옛날만 못하지만 그래도 가을이면 이렇게 잊지않고 열매를 달려주는 감나무가
자식같다고 웃으시는 할아버지 얼굴이 순박하다.
마을사람들, 마을사람들이라야 모두 할아버지고 할머니다.
할머니들이 가을볕이 잘드는 툇마루에 모여 광주리를 하나씩 끼고 감을 깍는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몇십년을 그렇게 그자리에서 감을 깍곤 하셨다는 그분들의 손놀림은
기계못잖게 정교하고 빨라서 놀라울 정도였다.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손을 빠삐 놀려 감을 깍는데 네다섯 살이 되었을까,
코흘리개 여자아이가 할머니가 쥐어준듯한 감자깎개로 감을 깍으며 한몫을 거드는
모습이 눈물겹다. 이 아이의 엄마는 아마도 대처로 나갔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깍은 감이 주렁주렁 처마밑에 달려있다. 햇살을 받고 익어가는 감도 이쁘지만
깍아놓은 감은 더욱 빛깔이 곱다. 감꽃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감꼭지 위에 가지가 조금
남아있어서 궁금했는데
그건 실에 꿸때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깍인 감들이 다시 한 꿰미가 되어
처마아래 주렁주렁 한줄을 보태고 감따는걸 도와준 시인은 키질하는 작은 키에
홍시몇개를 얻어들고 고샅길 흙담아래 앉아 뭉개진 홍시감을 먹었다. 참 달다며 맛나게
홍시감을 먹었다.
가을깊은 산골, 단풍이 들고 나뭇잎배를 띄운 계곡은 차고 시리게 흐르고 있었다.
군데 군데 하얗게 여울지던 억새무리들. 하얀새들의 군무 같던 억새무리 사이에
들꽃이 숨어 있는걸 들꽃에 대한 예민한 더듬이를 갖고 있는 시인이 발견해 낸다.
남보라색 용담꽃이 하늘거린다. 개미취 미역취 쑥부쟁이, 그리고 구절초까지 거기에
노란산국이 거의 시들고 있다. 시인은 그것들에서 얻은 씨앗을 가져온 비닐봉지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자신의 거쳐, 섬진강가 한켠에 심어두고 그것들을 키우며 살것이라고
한다. 산길을 걷다 만난 넓다란 바위가 한숨돌리기에 안성맞춤으로 시인을 맞이한다.
겉옷을 벗어들고 소매를 걷고 동그란 소를 이룬 계곡물에 세수를 하려던 시인이
잠시 멈칫하더니 계곡물을 따라왔을 성 싶은 도토리 두개를 건져 냈다. 두개의 도토리를
비닐 봉투에 챙기고 마이산 자락에 깃든 산사를 찾아든다.
그 절의 스님과 안면이 있는지 가방을 어깨에 둘러맨 시인과 연한회색의 장삼을 입은
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절 앞마당에 800년이나 묵었다는 전나무 한그루가
무심하게 서있었다. 스님과 시인이 그 전나무를 바라다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전나무가 그리 오래되면 은은한 향기를 품는다고 스님이 시인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얘길 들던 시인은 일어나 계곡물에 떠밀려 왔던 도토리 두개를
들고 산비탈 한켠에 가서 그것들을 심어주었다. 나무심는 사람. 그 모습으로
시인은 두개의 도토리를 흙속에 묻고는 '잘자라라, 내년에 와서 보마'했다.
시인을 따라 가니 이번엔 마당가득 항아리가 널린 집이다. 집이라기보다
작업실이라 해야 옳을 그런 집. 하얀백구 두마리가 졸랑 거리며 시인을 따라온다.
그곳은 시인의 후배가 전통방식으로 흙을 구워 항아리를 만드는 공방이었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그 후배가 항아리를 굽는 방식에서 특이할 점은 수동식 물레를
써서 형태만 만들고 나머진 돌려 가면서 주걱같은 기구를 이용해 항아리 바깥쪽을
다듬는 거였다. 항아리 안쪽은 돌려가면서 손바닥으로 다듬듯 때리고 바깥쪽은
주걱을 써서 다듬듯 때리는데 그것이 제모양을 갖추어 갈수록 공명깊은
항아리의 울림이 선명해지는 거였다.. 소리가 점점 맑고 투명해 지면서 항아리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자니 '장인'이란 바로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되었다.
시인의 후배란 사람, 그사람마저 가고 나면 그자리를 지킬 사람이나 또 나올까 염려가
되었던건, 진정한 장인이 대접받는 세상이 아닌 까닭이라.
그런사람, 인간문화재로 지정할것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소임에 정진할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해 주어야 할것 이란 생각, 다시 한번 드는 거였다.앵병, 방퉁이,
옹박지,,,, 이런 정겨운 항아리 이름을 오래 기억할수 있게 말이다.
시인과 시인의후배는 가을비가 조분거리는 시골길을 걸어 장계오일장을 보러갔다.
쇠를 벼르고 풀무질을 하는 대장간엔 아직도 대장장이가 벌겋게 단 쇳돌을 달구어
호미며 낫등 연장을 만들고 있었다.
오랜만큼 향기와 매력을 지닌것들이 거기에서 숨쉬고 있었다.
필요없을것 같다면서도 시인은 이것저것 장계오일장을 이끌어 가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로 부터 사들였다.
느릅나무뿌리와 톱날과 호미,,,,를 들고 후배와 나란히 앉아 장터국밥집에
들자 후덕한 주인아주머니가 넘칠듯 국밥을 한그릇 가져다 주는데 밖은 여전히 보슬보슬
가을비가 내렸다. 후후 거리며 장터국밥을 먹는맛, 그 뜨듯한 국밥 한그릇이면 오일장을
들를만 하겠다 싶었다.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제자리에 들어선 시인은 모악산자락을
그림그리는 후배에게 넘기고 섬진강가로 갈 이삿짐을 싸고있다. 앞마당 낙엽송의
딱따구리 부부와 물봉선과 돌확에서 꽃을 피운 산국을 부탁하고...
나래이터가 대미를 장식하는 한마디를 보탰다. '시란,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가는 여정이고 시인을 그걸 기록하는 이'라 그랬다.
그런 의미로 오늘 시인은 충실히 자기 역활을 해낸듯 싶었다.
잃어버릴뻔했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일깨우듯 나의 눈을 작으나
아름다운 것들에 닿게 해주었으니. 세상엔 작으나 아름다운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홀로 길을 떠나는 이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으니....
산죽 푸르고 억새풀 너울거리던 운장산 정상 어디즘엔 용담꽃이 퍼렇게
살아 가을을 수놓고 있음을 알았으니 눈으로 따라간 가을여행은
내 기억의 앨범에 오래 오래 그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밤이 깊었다. 아컴은 내일도 여전히 아름다운 벗님들의 진솔한 글들로 채워질
것이기에 지금은 잠이 들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