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내 생일엔 멀리 있는 친구로 부터 묵직한 소포를 받았다.
선물을 보냈다는 친구의 연락이 있었던 터라 소포가 도착할 날엔
선물을 기다리느라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띵동,
저녁을 지으려는 늦은시각에 '소포 왔습니다'하는 소리와 함께 드디어 선물이 도착했다.
묵직한 소포, 뭐가 들었을까?.... 그때의 난 어쩌면 동심 한조각을 간직한 소녀로
돌아간듯 하지 않았을까. 책세권... 내가 보고 싶었던 책목록에 포함되어 있던 책
세권 얌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나를 위해 친구가 고른 세권의 책이 멀리 친구가 사는
바다냄새를 싣고 우리집 까지 전해져 왔다.
친구의 마음이 담긴 세권의 책과 바다냄새가 실린 친구의 주소를 보며 참 행복했었다.
3월 14일 화이트 데이를 앞두고 미리 남편에게 귀뜸을 여러번 했었다.
낼이 화이트데이야..... 지난번 발렌타인 데이에 내가 준 초코렛 이랑, 그속에
내가 쓴 편지 읽은거 생각나?... 남편은 참 무심하게도 내가 기억하고 그 기억의
실마리를 붙잡을 만한 작은 선물을 받고자 하는 내 마음을 한번도 제대로 충족시켜
준적이 없었다. 이남자, 올해도 그냥 지나갈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한번만 더
상기시키자 싶어 화이트데이 하루 전날도 내일이 어떤 날이라고 다시 한번 일러 주었었다.
상가를 불밝히며 여기저기서 초코렛 상자가 넘쳐나고 있었고,
무슨무슨 화원이며 꽃집에선 화이트데이를 겨냥한 무수한 꽃다발이 주인을
기다리며 화안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것들 중 하나를 이번엔 필시 받아볼수 있겠거니
싶었다. 남편의 말마따나 무슨 국적불명의 기념일을 우리까지 챙길일 있냐?는
말에 동조하는 바이긴 하지만 이건 국적불명의 기념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남편의 나에 대한 마음씀을 발견하고자하는 소박한 바람인 것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화이트데이가 열리고 저녁이 다 되어 가면서 하루가 저물려고 하는데
아무런 낌새가 없어 '그러면 그렇지'하고 포기를 할 때즈음, 퇴근해 오는 남편의얼굴이
만면에 미소라... 뭔가 있구나 싶어 달뜬 마음이 되는데. 뒤쪽에 두었던 손을 불쑥 앞으로
보여주며 내밀었던건 노랗게 망울져 오는 산수유가지 두개와 생강나무 가지 세개.
자, 내 선물이다. 봄을 너한테 선물하마.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선물, 봄이 내게
노랗게 안겨왔다. 거의 울음을 터뜨릴뻔 했던가. 너무 좋아서 입술이 귀까지 걸릴 판인데
한가지더, 하면서 내민 안도현의 수필집. 난 그만 그일 꼭 안아주고 말았었다.
안도현의 수필집,'사람'을 내가 읽고 싶다고 한번 얘길 했던것도 같고
안그랬던것 같기도 해서 내 기억이 가물한데 그걸 기억하고 건네주는 남편이 새삼스러워
다시 한번 얼굴을 봐주었다.
그때 남편이 초코렛 대신으로 건네준 이제막 꽃눈이 망울져 오던 산수유와 생강나무
가지를 식탁 유리병에 꽂아 두었었다. 오며가며 맡아지던 알싸한 생강나무 꽃향기가
거짓말처럼 거실을 채우곤 했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날의 그꽃선물이 떠오른다.
내 마음의 선물은 음악이다. 남편의 생일엔 남편이 좋아할만한 요리 몇가지를
올리고' 생일 케이크 촛불끄기'가 취미인 아이들을 위해 적당한 크기의 케잌을 준비해
조촐한 생일 상을 차린다. 그리고 한가지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 방송에 생일축하사연을
적고, 그날 저녁시간에 맞춰 남편이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미리 신청해두곤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사연이 소개가 되고 신청곡이 방송이 되는 행운을 누려왔다.
아내가 차려놓은 생일상차림을 앞에 두고 그인 늘 기대이상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두아이가 돌아가며 '생일축하'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하면 조금은 부끄러워하던 그.
언제쯤 내가 신청한 음악선물이 나올까 싶어 한쪽 귀를 라디오쪽으로 주파수를 맞춰
두었는데 때마침 신청곡이 흘렀었다. 올핸 'tiger in the night'이었지. 내 취향과는 다르게
어떤 음악이 좋아지면 물릴때까지 듣는 습성이 있는 남편이 그즈음 폭 빠져 있던 음악이었다. 감격해 하는 남편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내손을 꼭 잡고는 '고맙다'그랬던가...
물질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내선물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아이들 생일에도 생일상과 음악을 함께 선물하곤 한다.
왜 다른 선물은 없느냐고 불평을 하다가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엄마가 특별히 자신을 위해 신청한 음악이 흐르면 거짓말처럼 얼굴이 부드러워지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진데 대한 수줍음으로 볼을 빨갛게 물들이곤 했던 아이들.
얼마전 책을 보내준 친구의 생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난 그날을 넘겨 버리고 말았고 수첩을 들여다 보다
아차 싶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친구를 꽤나 원망하고 있었던건 아닌지.
그래서 어젠 그앨 위해 하얀 스웨터 가디건을 사왔다.
눈처럼 하얀 스웨터에서 겨울냄새가 맡아지는 가디건.
생일선물 늦어서 미안하다고, 겨울맞이 선물이다 생각하라고 친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이쁜 편지지에 적어서 함께 부쳐야지 생각한다.
첫눈오는날, 그리고 또 눈이 하얗게 내리는 겨울날, 하얀스웨터 입고 눈맞이 하라고.
그리고 멀리 있는 친구생각 하라고 그렇게 적어서 소포를 보내야 겠다. 오랫만에
우체국에 들릴 생각을 한다. 빨갛고 작은 시골우체국에선 단풍잎같은 가을향기가
기다리고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