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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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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두개.


BY 빨강머리앤 2003-10-30

점점 계절이 바뀌어 가면서 햇살의 방향이 달라져 가는걸  본다.

서남향인 집을 향해 아침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가늠해 보는 해그림자가 조금씩 구부러진채로 방안에 드리워진다.

집안일을 대강 해치우고 아컴에 들어오는 이 시각이면 아침햇살이 가장 찬란하게 비춰들어오는 때이다.

거실 가득 햇살이 촘촘하게 박혀와 그 작은 햇살 알갱이들이 이리 저리 뒹구는듯한 느낌에 젖는 시간이기도 하다.

유리창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오롯이 받고 있는 베란다의 화분들도 아마 이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잊었다는듯 벤자민 화분을 욕실로 옮겨 물을 주었다.

화분의 흙이 바싹 말라 있었다.

여름동안 엷은 분홍빛을 띤 작은 꽃들을 달고 있던 산호수에 몇개의 열매가 달려 있다.

내가 쏟은 작은정성에 비하면 그나마의 열매도 고맙지만 저번에 화원에 가서본 산호수는

빨간 열매를 어찌나 많이 매달고 있던지 상대적으로 열매가 적어서 빈약하기 까지한

우리집 산호수가 떠올라 부끄러웠다. 미안한 마음에 산호수의 꺼끌꺼끌한 잎새를 한번 어루만져 주었다.

 게으른 주인 만나서 물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때도 있고, 영양제 주는 때도 잊곤 해서 늘 영양부족

상태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산호수와 우리집 베란다의 몇 안되는 화분들이

늦가을의 풍성한 아침햇살 아래서 기쁜듯 환호성을 지르는 시각...

그속에 두개의 앙증맞은 화분이 끼어 들었다.

 

아주 특별한 화분 두개는 아이들이 구워온 흙냄새가 아직도 향그러운 화분이다.

딸아인 하트모양의 화분을 만들어 왔고, 아들녀석은 대강 만든 흔적이 보이는 사발 모양의 화분을 만들어 왔었다.

고것들에 무얼 심으면 좋을까, 하고 물으니 딸아인 딸기한그루를 심겠다 그랬다.

싹이 자라서 파랗게 떡잎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싶고, 또 하얗게 꽃을 피우는것도 보고 싶고,

무엇보다 빨간 열매를 맺는걸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녀석은 해바라기를 심겠단다. 딱히 무슨 이유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화분에

해바라기를 심어서 크고 노란꽃을 보고 싶다 그랬다.

 때는 가을...딸아이의 원대로 딸기를 심으려 하니 딸기 모종 구하는것도 쉽지 않고 지금

딸기를 심어 잘 기르기가 쉽지가 않다는 화원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해바라기 역시도 지금 보다는 봄에 심어 여름에 꽃을 보는 쪽이 나을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화원에서 고르고 골라, 딸아이의 하트 모양의 화분에 '나비란'을 ,

사발모양의 아들녀석 화분엔 '포인세티아'를 심어서 집으로 가져왔다.

각자 조심스레 들고 집으로 오는길, 그 조심스런 마음으로 꽃을 길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두개의 화분이 지금 잘 커가고 있는 중이다.

나비란에 작은 꽃대가 올라 왔더니 얼마 안있어 하얗고 작은 꽃을 피워냈다.

연둣빛 여린잎새 속에서 올라온 가녀닌 꽃대에 핀 작고 앙증맞은 하얀꽃은 안쓰러울 만큼 여리고도 고왔다.

딸아인 그 꽃을 보고는 자신이 잘 키운 덕이라고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사실은 화원에서 가져올때부터 꽃대에 꽃눈이 달려 있었던 것이었는데...

아들녀석은 초록잎에 빨간꽃처럼 보이는 잎새가 조화로운 세인포티아를 보더니  와 이렇게 예쁜나무도 있어?

라며 눈을 반짝이더니 그다음날부터 외면한채 자신의 화분에 눈길한번 안주었다.

네 화분이니 네가 잘 돌봐주란 말에 예, 그래놓고서 말이다. 

아들 녀석의 무심함이 너무 한거 같아, 한번은 일부러 아들녀석을 화분앞에 데려가 일러 주었다.

이 식물도 사람말을 알아 듣는단다. 그러니 가끔씩이라도 '잘 자라'란 말을 해주어라.

식물도 사람손길을 알아 듣는단다. 그러니 가끔씩이라도 잎새 한번씩 쓰다듬어 주어라.. 라고.

그랬더니 냉큼 '잘 자라라'한마디 하고는 휑하니 가버린다.

우리집 세인포티아는 주인 잘못 만나서 외롭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원래 그렇게 생명력이 강한지 원래 그렇게나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다.

꽃대신에 빨간 새잎을 틔워 꽃보다 예쁘게 자라는 나무 '세인포티아'가 참으로 대견스럽다.

 

 그꽃을 보면 크리스마스가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일명 '크리스마스 나무'라는데

그 말을 해 주었더니 딸아이가 그랬다.

'엄마, 크리스마스엔 저 나무에 꼬마전구 매달아 놓자'

아이 때문에 늘상 걱정이고 어떻게 하면 저들을 좀더 꾸준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에

사랑을 쏟고 사는 법을 알려줄까를 고민해 온거 같은데 이렇게 식물을 마주하고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눌때면 제법이다 싶을 때가 있다.

 

작긴 해도 화분속에 흙이 가득담겨 있고 뿌리가 튼실한 식물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

그 무게가 아이가 감당하기엔 다소 벅차다.

그래서 화분을 욕실로 옮겨주는 일까지 내차지고 물을 주는 일은 아이들이 하곤 한다.

한번은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물을 주었는데 그 사실을 안 아이가 대단히 섭섭해 했다.

화분이 물을 빨아들이는 사사사.. 하는 그소리를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엄마가 대신 물을 주었냐는 것이 딸아이의 항변이었다.

물빠짐이 좋은 탓인지 아이들의 화분에 물을 부으면 사사사.. 하는 물 빨리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잠시후 뽀금거리며 물이 완전히 스며드는 소리까지 그 소리를 딸아이가 참 좋다고, 그랬다.

꽃을 키우는 마음은 그러한것이다.

동심에 순수를 더해주는 우리집 두개의 화분이 늦가을 따사로운 아침햇살을 받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