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강산
김용택
느티나무 잎 다 졌네.
꽃보다 고운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느티나무 밑을 돌아오는
내 여인이 그렇고
햇빛 좋아 바람 없는날
강가에서 늦가을 물을 보는
농부의 일없는 등이 그렇다
꽃보다 고운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느티나무 잎 다 졌네.
어제 바람이 많이 불더니만 날씨가 급작스럽게 추워졌다.
계절이 가고 오는거 내가 살아온 만큼 겪은 일인데도 늘상
이렇게 갑작스럽게 날씨가 변화하는 것 앞에선 왜 이리도 낯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추워서 밖에 나서기 싫은날,
오늘도 바람이 제법 불어서 창문을 열고 싶지 않은날..
그러나 밤새 내내 고여있었을 우리집 공기를 밖으로 보내고
차가우나 새롭고 깨끗한 공기를 다시 들여 보내야 하는일.
청소를 하기위해 여느때처럼 앞베란다 뒷베란다인 다용도실 창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바람이 제법 차다. 오늘 아침은 아이들에게 내의까지 입혀보냈는데
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어 두니 사방으로 소통되는 공기들이 저희들끼리
바톤을 주고 받듯 휑하니 스치고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나도 긴팔 티셔츠 위에 겨자색 가디건을 하나 더 걸치고 방안에
쌓인 하룻동안의 먼지를 쓸어냈다. 내 안에 쌓인 하룻동안의 생각의 쓰레기통을
또한 치우듯이. 더 춥기전에 얼른 방 청소를 끝내고 문을 닫으려다
밖을 보니 하루사이에 변한것들이 저리도 많구나 싶게 주변풍경이 달라져 있다.
전나무도 반쯤은 갈잎을 흔들어 대고
끝언저리만 빨갛에 물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단풍나무가 온통 붉다.
감나무 잎새에 주홍빛 물이 짙어졌고 그 잎새 사이로 삐죽 얼굴을 내민
감은 볼이 더 빨갛게 물들어 있다.
목련도 이젠 노랗게 물들인 그 넓은 잎새를 하나씩 힘없이 떨어뜨리고 있고,
아, 느티나무 ,,, 반쯤은 노랗게 잎새를 날리고 있구나.
느티나무를 보니 김용택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제목은 생각이 안나는데
'느티나무 잎 다 졌네'하는 부분만 리듬감을 실고 상념처럼 메아리 친다.
그래서 시집을 꺼내 '느티나무 잎 다졌네'를 찾아보니 아무리 보아도
찾을수가 없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 하고 다시 천천히 살피니
제목이 '적막강산'이라...
느티나무 잎이 다 지면 강산에 적막이 감돌아서인가. 시인의 마음이
표현한 늦가을의 정취가 참으로 쓸쓸하기만 하다.
어제까지 제법 풍성한 잎새를 한들 거리던 느티나무 두그루.
아파트 앞 공터에 설치된 테니스장 뒷쪽에 심어진 두그루의 느티나무가
어제까지 샛노란 잎새를 풍성하게 달고 있더랬다.
그 나무는 내가 베란다 문을 열면 정면에서 보여지던,
그 나무를 보면 내 마음에 노란 봄이 연상되고 섬진강 시인이
떠올라 미소짓게 하던 나무였다.
그 나무가 어제까지 노랗게 가장 절정의 색감을 완성하고 이제 나좀 봐달란
듯이 노란잎새를 살랑 거리고 있었는데 하룻만에 반쯤이나 잎새를 떨어뜨리고
초라하게 서있는 모습을 본다. 바람이 세게 불었던 어제 부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흔들리다 하나씩 잎을 떨구어냈을 느티나무.
........느티나무 잎 다 졌다........ 가을도 그렇게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