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아일 혼내서 학교에 보내고 마음이 언짢았다.
어제저녁 준비물 챙겼냐는 물음에 그랬다고 분명하게 대답했던 아이가
바쁜 아침에 찰흙판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설치고 다녔다.
마음을 차분하게 갖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생각해 보면 아이니까 그럴수도
있었을 일인걸, 그때 난 왜 그리도 현명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결국엔 찾아지는 대로 동생걸 들고 학교에 갔다. 시무룩해서, 모기만한 소리로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현관을 나서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한
못난 행동이 그때서야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얼른 뛰어가서 한번 안아 주었어야 하는데 한자리에 못 박힌듯 서서 아일 생각하다
베란다 문을 열고 아이가 가는 길을 지켜보았다.
거리엔 벌써 단풍든 나뭇잎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고, 오늘따라 바람이
세게 불어와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들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머잖아 가을도 가리라.. 생각하니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 지고
고갤 수그리고 잎진 가로수 사이를 걸어 학교로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안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미안했었다고 이야기 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시야를 멀리 하니 만산에 홍엽이라... 잣나무 청록색이 저홀로 눈부시고 자작나무 잎새들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게 멀리서도 볼수가 있었다.
베란다를 통해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 숲을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나의 상념을
깨우듯,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살때 친구처럼 가까워진 아이친구 엄마다.
전화 통화를 하기보다 메일로 더 자주 만나는 친구였기에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가
반가우면서도 다소 의외단 생각을 했다. 이러 저러 살아가는 이야기 아이들 교육문제를
놓고 한참동안 이야길 하다가 그 친구가 꺼내놓은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우리아이의 친구였으며 오늘 전화한 그 친구아이의 같은반 여자아이의 죽음에 관한 ...
예원이... 그 아일 나도 잘알고 있었으니 더욱 그 충격이 컸었다.
어찌 그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박에 믿을수가 있었으리요..
10살 여자애, 키가 작기는 했으나 아담하고 똘망하던 아이.
우리 아이랑 오래 오래 인연으로 만난 그래서 그애의 다소 예민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단짝처럼 붙어다니던 아이였다.
뇌졸증이었다지?
그것도 자다가 의식을 잃어 응급실에 실려갔단다.
급히 입원을 하고 뇌수술을 했건만, 그 후유증으로 어제 그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기고 그 어린아이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그애의 한살많은 언니, 이제 갓 11살인 그 아인 동생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까?
늦둥이를 보고는 그 재미에 늘 행복하다며 웃음짓던 그애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울컥, 울어 버렸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던 아이라 그아이의 생김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유난히 머리가 까맸었지. 눈썹도 짙었어. 그아이의 예민한 성격으로 해서
내 아이가 힘들어 했던 일도 여러번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 아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비교적 자세히 알아버렸지.
어른들에게 인사를 참 잘하는 예의바른 아이였지. 뭐든 열심히 하려고 했고
선생님말씀을 그토록이나 잘 지키려고 노력한 아이라면 훌륭한 학생이었고 말이야.
피아노를 참 잘쳤지... 그게 얼마나 부럽던지. 그저 뒤지지 않을정도로
피아노를 배우는 우리 아이에 비해 늦게 시작한 그애가 우리 아이와 그 또래 아이들을
물리치고 앞서갈때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던가...보바처럼.
늘상 그애 엄마는 그애가 안쓰럽다 그랬었다. 연연생이라,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커서 늘상 그앨 보면 미안한 생각부터 든다고 그랬지.
욕심이 너무 많아 얄미울 정도라 했지만 그 욕심이 그애를 열심히 살게 한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는건 그 엄마도 그럴거야. 언니가 분홍색 스웨터를 입으면
자신도 반드시 그거랑 똑 같은 스웨터를 입어야 하고 같은 가방이 아니면 안들고 다니겠다
해서 그애가 학교에 갈즈음엔 그엄마 고민도 했었지.
하두 잘 토라져서 삐질이로 불리기도 했지만, 뭐든 열심히 하려 하니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는데... 키작고 웃기도 잘하고 삐지기도 잘하던 귀여운 아이.
나도 이토록이나 그앨 많이 기억하는데
그아이 엄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뭇생각이
나지 않을지 몰라. 그래서 지금 그애 엄마한테 위로의 전화를 하고
싶지만 당분간은 아닌듯 하다. 지금은 어떤 적당한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는걸..
그래, 너무 아프지 않았는지. 뇌졸증으로 잠든듯 누워있다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으니 그때 너무 아프진 않았는지... 그 후유증이
어쨌길래, 그 멀쩡한 아이를 데려가야 했는지 하느님이라도 붙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잘가라.. 너무 짧은 생이었고, 너무 안타까운 너의 죽음이어서
나 지금 가슴이 아파 뭐라 작별의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잘가라. 예원아.네 이쁜 동생은 너의 죽음을 알까? 네가 없어서 네 동생,
네 책상이 놓여진 그방을 열어보고 너를 찾을 때마다 너의 엄마 가슴 무너질 것을...
아이야, 세상은 이토록이나 불공평하구나. 어린 너 부디 잘가라.
그런데 우리 아이에게는 이 사실을 어찌 알려야 할까?
너무 어린나이에 죽어버린 친구의 죽음을 내 아인 어떻게 받아들일까?
난 뭐라고 그애의 죽음을 알려야 할까? 부디 내가 먼저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