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건 섬진강가 자그마한 마을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시는 김용택시인입니다. 그리고 이세상 가장 먼저 봄빛이 피어오를것 같은 섬진강가의 그 푸른물빛과 그 푸른물을 바라보며 커가는 낮고 높은 봉우리의 숲, 그리고 숲과 강가의 향기를 먹고 커갈것 같은 이름모들 들꽃들과 산새 ... 뭐 그런 가장 자연스럽고도 이쁜생명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두해가 벌써 지난 얘기입니다만, 그해 봄에 섬진강을 여행했던 일이 섬진강에 막 돋고 있는 푸른 생명들과 함께 떠오릅니다. 봄에 섬진강을 가보았던 탓인지 내 기억속의 섬진강은 항상 '봄'입니다. 그것도 이제막 파란 여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강가의 봄입니다. 섬진강 시인이 그러셨지요. 봄이 되어서 피는 것들은 다 꽃처럼 아름답다구요. 느티나무 여린싹을 들여다 보면 그것이 꽃보다 더 아름다울수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말에 저도 고갤 끄덕인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젠 봄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메마른 겨울나무가 조금씩 땅속으로 부터 수분기를 끌어 올려 봄빛을 더해가며 가지끝에 파아란 새싹을 달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볼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때고 봄이 시작되려는 즈음이면 목련이며 산수유와 산딸나무 가지를 열심히 들여다 보며 혼자 웃고 있는 여인네를 보시거든 혹, 그녀가 아닐까 생각해 주시길...
내 기억속 늘푸른 봄으로 기억되는 섬진강에도 가을이 깊었을 듯 합니다. 푸른강가에 비춰든하얀매화꽃의 선명한 대비와 그속에도 한자리에 제 몸을 가누고 간간히 불어오는 봄바람에 살랑거리던 초록빛 보리밭을 간직한 섬진강의 가을이 자못 궁금해 집니다. 한번 가서 꼭 봐야 하는데 맘만 하늘같이 높아집니다.
하늘이 참 맑고 파랬지요. 강물도 그 하늘빛을 닮아 맑고 파랗게 여울져 흐르면서 돌돌돌 자잘밭을 흐르는 소리를 냈었습니다. 아직 추위가 덜 가셨는데 아이들은 바지를 걷고 바지 안에 입었던 내의도 걷고 물속에 첨벙 뛰어들며 좋아했었지요. 앞산에 파랗게 이끼가 자라고 새잎이 돋는 그 푸른빛들이 그대로 강가에 비춰들어 강은 또 초록으로 짙게 물이 들곤 했었습니다. 초록빛 풀들이 먼저 돋아난 강가에 흑염소 식구가 나란히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엄마 흑염소가 봄햇살을 받고 누워 되새김질 하는 옆으로 새끼염소 세마리는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깔깔거리는 우리 아이들 보다 더 개구장이 처럼 팔딱 거리며 뛰어 다녔지요. 새끼염소들도 따뜻한 봄볕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물속에서 열심히 물장구 치던 아이들이 저희들보다 더 즐거워 하는 새끼염소들이 샘났던지 물에서 나와 새끼염소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살아있는 작은 생명들을 좋아하는 여느아이들 처럼 우리아이들도 봄볕에 기뻐 날뛰는 새끼 염소가 무척이나 사랑스러 웠던지 풀잎을 뜯어다가 새끼염소에게 먹이던 광경은 한편의 시와도 같았고, 수채화 한폭같던 섬진강의 봄.
강가에 낀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 아침햇살이 비춰든 사이로 하얗게 드러나는 억새 무리가 한들 거릴 그 강가를 걸어가 봅니다. 지다만 엉겅퀴 꽃잎에 이슬방울이 달랑 거리는 풍경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시인의 말마따나 가을의 가장 아름다운 정취는 이슬에 젖은 수크렁을 저녁햇살로 보는 일이라니 저녁이슬을 머금고 지는 햇살아래 살짝 고개를 수그리고 있을 수크렁을 또한 보고 싶습니다. 이슬방울을 방울 방울 달고 있을 수크렁에 비춰든 섬진강가의 저녁노을 풍경은 안봐도 그림 , 그자체일것 같습니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에세이 집을 읽다가 섬진강 얘기가 나와서 잠깐 추억에 젖어본 가을아침이었습니다. 순전히 어거지 상념에 불과한 섬진강가의 가을. 하지만 그 정경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이 가득 충만해져 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눈으로 섬진강을 바라보는 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마암분교로 오기 전에는 덕치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덕치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온 동네 개들이 다 모여서 이리뛰고 저리 뛰고 놀았다. 이 개들은 아침에 아이들을 따라서 학교에 온 개들이다. 개들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 안을 기웃거렸다. 개들은 교실 창가에 턱을 고이고, 입을 벌려서 노래를 합창하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학교가 파헤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개들은 아이들을 따라서 집으로 간다-
이런 글을 읽으니 마음 한켠이 말갛게 헹구어 지는 느낌, 강가가 가르쳐준 순수의 노래를 듣는 그낌으로 행복했고 가슴이 아련하게 젖어 오기 까지 했습니다.
또 이런 글이 마음 한켠을 아릿하게 물들게 합니다
.-인수네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3학년인 은미네 할머니도 작년에 돌아가셨다. 6학년인 초이네 할머니도 그 무렵에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아이들끼리 노는 시간에 양지에 모여서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화장실에 가서 함께 운다. 집에 돌아가서도 할머니가 안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수가 없다. 은미는 할머니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은미는 한동안 넋이 빠진 아이처럼 되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늘 혼자서 쪼그리고 앉아서 울었다. 김용택이 안아주고 달래주었지만 은미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이 글을 읽으며 마음 가득 고였던 맑간 슬픔, 섬진강가에 사는 아이들의 그 순수한 동심이 여울처럼 그려져 왔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될것 같단 생각도 함께요. 우리 아이들 모두가 그런 순수를 안고 살아갈수 있기를 소망해 보기도 했습니다. 문득 섬진강 강물에 떠가고 있을 산딸나무 낙엽한장 띄워 보내고 싶은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