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난 푹신한 배개를 좋아한다.반면 남편은 조금 딱딱한 느낌의 배개만을 좋아한다. 그것도 습관일까? 푹신한 배개를 줄곧 사용해온 나는 딱딱한 배개를 배기만 해도 답답한데 남편은 푹신한 배개를 배고서 어떻게 깊은 잠을 자냐며 오히려 나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건네다 보았다. 신혼때 우리도 부부개배라는걸 준비했었다. 그이와 나 둘이 함께 살아갈 살림살이중 가장 아기자기하고 이쁘고 사랑스러운 이부자리를 준비하며 서비스로 끼워준 부부개배를 보고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던가!!
부부배게를 배고 둘이 다정하게 잠들고 싶었던 그 소박한 소망으로 미리 행복의 맛을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둘의 배개에 대한 취향이 그토록이나 다를줄이야... 그이에게 있어 부부배개는 너무 푹신한 거였고, 내게 있어 그것은 너무 높아서 배개로 적당하지 못했다. 처음 몇일은 한번 노력해 보자며 부부배개를 억지로 사용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배개로 해서 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지자 안되겠다 싶어 과감하게 부부배개는 장롱속으로 골인...
낮고 푹신한 배개는 여러개 있던 탓으로 난 아무거나 배면 그만이었는데 문제는 남편의 배개였다. 어떤거라야지 적당할까를 고민하다 생각해 보니 친정엄마가 내 신혼이부자리에 끼워주신 배개가 생각났다.
그건 엄마가 그래도 일손이 좀 남아 돌던 겨울동안 딸들을 위해 손수 만든 배개였다.
그걸 만들기 위해 엄만, 집안일이 모두 끝난 한밤 우리가 잠이 들면 우리들 머리맡에
앉아 수를 놓으셨다. 동그란 수틀과, 바늘몇개, 그리고 색색의 실..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수를 놓으면 반짝이던 색색의 실이 생각난다. 엄마가 수를 놓고 있는 걸 들여다 볼라치면 얼른 자고 일찍 일어나라며 당신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셨었다. 엄마는 그 작고 동그란 수틀에 색색의 실로 꽃이며, 새며, 태극무늬를 단정하게 새기곤 하셨다. 무명의천에 밑그림을 그리시곤 수틀에 끼워 엄마가 본을 뜬 그대로 실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무늬를 그리는 그일이 그렇게 신기해 보였다. 엄마의 손길이 가는 자리에 태어나는 꽃무늬며 봉황새와 태극문양이 참으로 이뻐보였다.
엄마는 오랜동안 겨울밤 내내 수를 놓고는 하셨다. 불가까이에 앉아 수를 놓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잡힐듯 선하다. 그래서 물었었다. 왜 그렇게 많은 수를 놓고 계시냐고...'너희들 시집갈때 줄려고 그러지'하시던 엄마의 대답에 그일이 먼먼 아주 먼후일의 애기처럼 들렸었다. 그래서 피식, 웃었다. 그런날이 까마득해 보여서. 가만생각해 보면 엄마가 수를 놓던 내 어릴적 겨울밤과 어린신부였던 신혼의 날들 사이의 시간이 마치 살같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 엄만 속으로 생각하셨을게다. 세월은 그닥 느리지 않는거라고.. 네가 더 커보아야 알겠지만 세월은 살같은 거라고 아마 얘기해 주고 싶으셨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만드신 배개를 남편은 아주 만족해 했다. 우리 부부가 나란히 배라고 쌍으로 만들어 주셨지만 푹신한 배개를 좋아하는 나는 엄마의 배개를 남편한테만 양보해야 했다. 메밀을 넣고 만든 배개, 쌀겨를 넣고 만든 천연의 배개를 배고 남편은 참좋다며 잠이 들고는 했다. 그런데 십여년을 엄마가 만드신 배개를 사용하다 보니 내용물은 상관이 없는데 배갯잇은 자주 갈아주어야 했다. 그냥 씌우게 되어 있는 간편한 배갯잇이 있었지만 어쩐지 그런 배갯잇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귀찮지만 빨때마다 실을 떼어내야 하고 다시 바느질을 해서 메꿔야 하는 방식의 배갯잇을 사고는 했었다.
그러기를 몇번이었을까? 여름에 친정에 들렀을때 엄마가 보자기 하나를 꺼내셨다. 이젠 이걸 네가 가져가라며 펼쳐보인 보자기안엔 내가 중학교때 가사시간에 만든 수놓은 식탁보와 방석등과 섞여 배갯잇이 들어 있었다. 아, 그래 이런게 있었지...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아니 엄마가 꺼내지 않았다면 잊고 있었을 것이었다. 버리기엔 너무 깨끗하고 기계가 할수 없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주는 다정함과 그리고 서투름이 그대로 엿보여서 오히려 정겨운 것들이었다. 쓰게될지 어쩔지 몰랐지만 그것들을 챙겨왔었다. 단발머리에 하얀블라우스 그리고 감색치마를 입은 내 중학교 모습을 떠올리게 하던 그시절 그 솜씨들을 들여다 보며 새삼스럽게 엣날을 추억해보았다.
다른건 우선 제쳐두고 배갯잇은 당장에 쓸수가 있을것 같아 남편의 배개를 꺼냈다. 체인스티치, 새도우스티치.. 그리고 무슨무슨 이름을 가진 몇가지의 바느질방식으로 연결된 꽃과 나뭇잎의 연속무늬 배갯잇... 남편의 배개에 그것들 바느질로 꼭 맞게 씌워놓으니 뭐랄까, 그 마음. 조금은 뿌듯하고 조금은 설레고 기쁘나 그 기쁨이 새로운 그 어떤 감정으로 물결치던 그느낌... 그날밤 잠들기전 남편에게 그얘길 해주었다. 당신이 지금 배고 있는 그배개 이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주 특별한 배개라고 ...
그 배갯잇으로 하여 남편이 내 학창시절 한시점을 공유하는 그 느낌은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여러가지 복합적인 단상을 불러내 주었다. 내 어린시절 잠자는 내 머리맡에서 수를 놓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인지, 가정이나 가사과목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그 수놓은 시간이 참 즐거웠던 생각도 불현듯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오래 머물렀었다. 그때의 그 배갯잇은 지금 남편의 배개로 새롭게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