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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불편함)을 알아야.


BY 빨강머리앤 2003-10-08

며칠동안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주 일요일에 다친 손바닥과 손가락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면서 다친 상처가 나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벗겨져서 왼손은 엄지손가락이 접질러 져서

도대체 힘을 주는 일을 할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주부의 일이란 항상 손을 쓰는 일이 대부분이다.

손을 쓰지 않고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텔레비젼 보는 일쯤) 특히, 주부들에게

있어 손은 절대적인 신체부위인것 같다.

 

그런손을 다쳤으니 이만저만 불편한게 아니다.

가장 어려운건 빨래하는거다. 웬만한건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해결하려고 해도

정말 손으로 빨아야 하는게 꼭 있게 마련이다.

특히 가족들의 속옷과 니트종류의 옷들은 손빨래를 반드시 해주어야 한다.

뭐 그것도 세탁망에 넣고 세탁기를 돌릴수도 있지만 지금껏 그렇게 해왔던 대로

속옷과 니트종류는 아픈손을 잘 요리해가며 천천히 빨아보았다.

 

고르고 골라 정말 손으로 빨아야 할것들을 최소화 시키지만 왜 이리도 손빨래는

어김없이 나오는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싶어 조심스럽게 빨래를 하는데

정작으로 더 어려운건 물기 뚝뚝 긋는 빨래를 짜는 일이다. 대충 수건걸이에

걸어놓고 물기가 빠지기만을 바라보다 그러다 냄새가 날것 같은

주부특유의 불안감이 그걸 또 가만히 보아주지 못하고 결국은 아픈 손가락

살살 거리며 최대한 물기를 제거를 해야만 맘이 놓인다.

걸레를 빠는 일이 특히 일이다. 청소를 하는것만도 쉬운일이 아닌데

걸레는 진짜 세탁기에 돌릴수도 없고,대강은 짜서 말려놔야 냄새 걱정도 없을테니 말이다.

아픈 오른손 손바닥이 안닿게 욱신거리는 왼손 엄지손가락을 되도록 건드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지만, 어디 빨래 짜는 일이 손바닥과 손가락이 필요하지

않던가 말이다.

그러니 요리를 하는건 둘째 치고 설겆이 끝부분이 역시 문제였다. 행주를 짜서

설겆이한 주변을 깨끗이 닦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 거다.

 

그런데 사실은 더욱 불편한 일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목욕하기와 머리감는 일이다.

아픈 오른손바닥에 약을 바르고 붕대와 반창고를 붙였긴 하지만 그곳에 물이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이다.얼른 나아서 집안일 척척해 낼려면 (집안일 할 사람이

나밖에 누가 더 있으랴) 상처부위에 물이 들어가면 안되는 것이다.

물이 들어가면 그만큼 염증이 가라앉는 속도가 느려지고 그만큼 염증이 오래가게

되어 있으므로...

그래도 목욕을 해야 하고 머리도 감아야 한다.

목욕하는걸 늘상 혼자 해결하는 사람이라 남편한테 얘기하기가 웬지 쑥스러워서

머뭇댔다. 좋은일 생겼다고 장난스럽게 나를 쳐다보는 그이의 눈길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결혼 십년째... 이젠 그런 일에 이골이 날만도 한데 아직 무에 가릴게 있다고

쑥스러워 하는 나나, 장난스럽게 대하는 그이나 조금 우스웠다.

대충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겨 줄때는 다소 낭만적인 감정까지 섞여져 올만큼

느긋해 졌다. 내성에 차지 않는 그이의 목욕솜씨에 벌써 기대는 접어야 했지만,

머리를 감겨주는 일은 내심 기대를 했었다.

예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내 머리를 감겨주는 상상을 하고는 했었다.

그건 아마 영화를 보고 나서 였을것이다. '아웃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매릴스트립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햇살이 내리는 가을오후였던것 같다. 배경이 아프리카니

당연 근사한 풍경을 배경으로 말이다. 정말 그림같았고, 사랑하는 여자의 머릴

감겨주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모습은 정말 근사했고, 사랑하는 남자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만족한 웃음을 흘리던 매릴스트립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었다.

 

그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았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저렇게

머릴 감겨 달래야지'하는, 정말 별거 아닌 그런 소망을 품기도 했었다.

손이 아파서 남편의 손을 빌려 머리를 감는 행복한 순간이 너무 엉뚱하게

일어나서일까?

아니면 그간에 몇번은 그렇게 해보았어야 했는데 그런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아서 였을까?

남편의 손놀림은 정말 내가 기대했던 그것이 아니였다.

'좀, 제대로 감겨줄수 없어요?' 몇번을 그렇게 말했던가?

남편의 변명아닌 변명은'맨날 짧은 내머리만 감다가

긴머릴 감기려니 정말 잘 안된다..'이었다.

 

서로에게 꽤 익숙했다 싶은데 아직도 그렇게 익숙하지 못한게 있었구나 싶었다.

그 익숙하지 못한게 있어서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거였다.

조금씩 익숙해 지는 연습 이제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도 나쁠것이 없으니까...

 

늘상 바삐 움직이던 손이 아프니 새삼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더불어 이 두개의 손, 열개의 손가락이란게 얼마나 소중한 우리 몸의 일부인지도

절감하게 된 며칠이었다.

그리고 그런 손마저도 없이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얼마나 큰 불편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가 싶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자고로, 건강하게 태어난 내몸, 내가 잘 지켜야 겠고,

그 건강한 몸으로 부지런히 살아가는 일이 행복이란걸

깨닫는 그런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부족함을 알고서야 가득참이 얼마나 소중한지 비로소 알곤 하니

나는 늘 그렇게 부딪히고 배우고 살아가야 하나 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