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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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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 수목원.


BY 빨강머리앤 2003-10-06

이름이 참 좋았습니다.'아침고요'라니...

그 아침고요가 전해주는 고요함 그리고 아내의 사랑으로 빚은

온갖 나무들과 야생화 정원... 생각만 해도 가슴 가득 사랑이

차오르고 그 정경을 떠올리면 '아침고요'가 저절로 그려지는 곳

아침고요 수목원을 다녀왔습니다.

 

가는길은 고요하지가 못했습니다.

한시간에 한번씩 온다는 현리행 좌석버스가 언제 올지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어 한시간 가량을 기다렸던가요?

도저히 안되겠어서 청평행 버스를 타고 삼십여분.. 청평터미널에

내렸지요.. 아이들을 양손에 잡고 임초리행 버스를 타야 한다기에

또 무작정 기다릴까봐서 터미널에 들어가 물어보니  올 시간이 되었는데

차가 막혀 아직 아니 왔다더군요.

주말을 맞아 가을숲을 보러온 젊은 남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랑 코스가 같은지 그들도 내 뒤를 따라오며 나와같은 질문을 하고 있더군요.

 

또 삼십여분을 기다렸을까요, 차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미리 전화를 해두었으니 아침고요수목원을 왔다갔다 하는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대학생인듯한 젊은이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자리는 이미 만원이었지만 옆으로 낑겨서 아이는 앞에 있는 학생

무릎에 또 내 무릎에 안고서 비탈진 길, 비포장길을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올라갔더랍니다.

 

생각외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란걸 또 첨 알았네요.

그리고 그들이 한결같이 사랑하는 사이인듯 손을 꼭잡고 그렇게

행선질 향하고 있어서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하긴, 그곳에 가면 그들의 사랑도 거대한 인공정원을 만든

한상경 교수님의 애틋한 사랑처럼 뭔가 확신할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얻어 올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습니다.

 

볼게 참 많았습니다. 어른들 입장료도 결코 싸지 않았고, 더군다나

아이들 입장료는 왜 그리 비싼지 싶어 조금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아름다운 자연정원에 들어서 보니 입장료가

결코 비싼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문을 통과하니 고향정원이 제일 먼저 맞아주더군요. 옛날 나설던 집을

생각나게 하던 꼭 그런 느낌의 정원이었어요. 작고 조촐한 화단 잡풀속에

야생화가 피어있던 뒤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담박에 뛰어가서

소리치며 좋아했던 토끼장까지... 햇살이 따갑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고마운 가을햇살이 나뭇잎에 내려와 단풍나무를 붉게 물들이고

은행잎에 내려와 노랗게 채색을 해주고 있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아, 하얗게 무리지어 꿈결처럼 흔들리던 구절초 무리... 환상이었습니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벌들과 나비들도 그 꽃무리가 좋은지

참 많이도 몰려왔습니다. 꽃이 이쁘다고 향기를 맡으려던 딸아이가

꽃송이 송이마다 붙어있는 벌과 나비를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습니다.

 

엄마와 아빠손을 잡고 나들이 온 아이들,

그리고 연인들이 꽃과 나무 사이, 파랗게 잘 가꾸어진 잔듸밭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던 풍경이 아름다운 인공정원과 어우러져

세상은 그만하면 참으로 아름다웠다 싶었지요.

 

은방울꽃, 앵초꽃,,, 팻말을 들고 고개를 숙인 잎새들만 남은 빈가지를

들여다 보고는 아이들은 실망했지만, 아마도 올 봄 이쁜꽃들을 많이도

피워내고 새롭게 태어날 내년을 준비하려 하는 것이겠거니 싶어

빈가지만 남은 그것들 조차 이뻐 보였습니다.

 

영화 '편지'를 찍었던, 그러니까 최진실과 박신양이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파랗게 잔디가 펼쳐진곳이었습니다.

싱싱하게 잘자란 잔디밭이 그렇게 예쁜지 또 그곳에 가서 알았네요.

돌과 꽃과 잔디가 조화를 이룬 넓다란 초지위에도 어김없이 따가운 햇살이

빛의 세례를 뿌려 주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를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림같아 여러번 사진을 찍은 곳이기도 합니다.

 

야생화 정원'이란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단연 가을야생화의 여왕은 구절초였습니다. 지금이 한창이었지요.

만개를 하고 하얗게 일렁이는 모습에 발길이 절로 가 닿았습니다.

배초향, 꽃향유.. 이런 꽃이름들이 가슴을 애잔하게 적셔왔습니다.

 

꿩의비름이라는 야생화도 참 많이 피어있었습니다. 이름이 참 독특했는데

꽃모양도 참 특이하게 생긴 꽃이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만났을것 같은

그런 꽃들이 무리져 피어있는 사이로 단풍잎은 붉은 옷을 막 갈아입고 있어서

가을이 무르익는 걸 그곳에서 보았네요.

 

한국적인 정원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지요? 그래서인지 한국정원에

특히 눈길이 가더군요. 잘 꾸며놓은 한국정원은 기와집인 '대갓집정원'과

초가집인 '초가정원'이 있었는데 대갓집마루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초가집으로 향할때 딸아이의 말이 명언이었습니다.

'놀부집 구경했으니 이제 흥부집 가는거야?'

초가집 정원이 더 아기자기 해서 좋았습니다.

디딜방아도 있고, 뒤란에 꽃향유가 온통 차지하고 있어서

아름다운, 깨진 항아리가 굴뚝위에 얹어진 , 돌확과 절구통이 군데군데

놓여있던 정다운 느낌의 집이었습니다.

 

그집앞에 얼마전에 허수아비 축제때 만든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아이들이 재밌어 했던것 같습니다.

부부허수아비가 참 정겨워 보였고, 붉은악마티셔츠에 빨간두건을 두른

톡톡튀는 허수아비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더군요.

 

한국정원을 돌아 에덴동산에 올랐습니다.

지금 가면 가장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었는데

'낙상홍'이라는 나무가 볼만했습니다.

빨간열매를 꽃처럼 가지마다 다닥다닥 매달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을 정도로 이쁘고 고왔습니다.

꽃만이 이쁘고 아름다운게 아니지요. 나무열매도 그토록이나

아름다울수 있음을 낙상홍이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낙상홍 아래, 이스터라는 첨들어보는 꽃이 가득 피어있었습니다.

국화꽃같기도 하고 꽃집에서 본듯한 이스터라는 꽃이

연보라와 하얀색으로 나뉘어져 화단에 한창 곱게 피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을 지나 석정원, 그러니까 돌과 어우러진 우리식에 맞는 정원의

졍형을 여러가지로 보여주는 곳에 이르니 아이들이 다리 아프다고

조금씩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돌아 다 구경하고 가야하는데

빨리 집에 가자고 조르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 버렸습니다.

모가나고 울퉁불퉁한 석탑이 있고, 우물이 놓여있는 사이로

꽃들이 둥그렇게 심어진 정원들을 마음이 바빠 대충 둘러 보았습니다.

물레방아도 있고, 금송화가 황금빛을 이루고 있었는데

서둘러 시가있는 산책로를 접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가을에 볼수 있는 색깔들을 고루 다 만난 듯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셀수도 없이 다양한 색깔을 가진게 바로 가을의 모습이더군요.

시가있는 산책로에 접어들자 무채색의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차분해 졌습니다.

소나무 전나무 마다에 목걸이 처럼 시가 적힌 팻말이 달려 있었습니다.

윤동주의 서시를 비롯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천상병의 시 까지..

소녀시절, 문학을 꿈꾸며 외우곤 했던 시들이 거기에 모두 있었습니다.

시가있는 산책로에서 옛추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가는곳마다 꽃길이니, 자연 꽃향기가 따라왔습니다.

아름다운 꽃과 함께 향기로움을 공유했던 두시간동안

모든 삶의 시름을 가을햇빛이 따스하게 쓰다듬어 주는 듯 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들국화를 보고 싶으면 언제한번

불쑥 다시 찾고 싶은 장소,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사월즈음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아침고요 수목원을

잘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아침일찍 찾아가

'아침의고요'도 꼭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