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 바로 앞쪽에 한 여자가 이사를 왔다.
시내에 아이들 옷집을 열고 장사를 하는 그녀를 며칠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다. 부동산 언니라 불리는 그 동네 마당발인 여자분이
앞집에 이사온 '사장님'이라며 나와 인사를 시켜 주었다.
그녀의 첫 인상은 그랬다. 조금 통통한 몸매, 그러나 과감한 패션을 한
피부가 유난히 고운 여자..
조금 부끄러움을 타는 듯도 해 보였고,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구석을 갖고
있는 그런 여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녀가 가끔씩 일회용 컵에 커피를 타오는 아침이 계속되면서
그녀를 지켜보기 시작한건 그녀를 만난지 한 일주일 후였던가.
서른 다섯살이라 그랬다. 아무리 봐도 , 아줌마인 내가 보기에
그녀도 아줌마인데 이상하게 아이들도 아니 보이고 남편이라는 남자도
아니 보이는 거였다. 그래도 물어 보지 않았다.
실례가 될것 같고, 필시 그녀가 먼저 얘기해 주지 않는대도
그냥 그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면 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커피를 나눠 마시며 그녀의 화끈한 성격에 이끌려서
우리는 조금씩 친해져 갔다. 그런 어느날 저녁, 그녀가 내게 털어놓는 얘기는
한편의 드라마 였다. 눈물 없이 볼수가 없는...
결혼을 두번이나 했다고 했다. 한남자랑. 그러니까 결혼한 그남자랑 헤어졌다가
다시 재결합을 했는데 지금은 다시 별거 중이고
아마도 이렇게 끝을 내게 될거라 그랬다.
남편이란 작자는 한마디로 술주정뱅이에 폭력행사를 밥먹듯 하는 그런 인간이라
더 이상 재고의 가치가 없어서 아이들도 두고 그냥 나와 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능하기 까지한 남편 때문에 자신이 아이들 옷가게를 운영하며
살림을 도맡아 왔건만, 집안 일을 돌보기는 커녕 줄창 술을 먹고는 자신을
폭행하니 도저히 같이 살수 없어 한번 헤어졌다는 그녀.
그러다가, 그 남편이란 사람이 두손 싹싹 빌고 다시는 술도 안마시고
이젠 정말 당신 사랑하며 살테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통에
못 이기는 척하고 다시 합쳤었다는 것이다.
그남자를 용서해서가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들, 그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리 했다는 그녀.
하지만 그때 뿐이었단다. 그 남자의 그 술버릇 개 못주고 다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면 너 잘났고, 자기 못 났다며 폭행을 시작하더라니
결국은 그녀가 일하는 매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주변 상인들 얼굴 볼 면목이 없어 그길로 무작정 나온 곳이 이곳이라고
자기는 지금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그랬다.
가만, 생각하니 자신이 재결합 했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 였다고..
시아버지의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면 영낙없이 전남편의 그 행태였다고,
그 피 어디 못가고 그대로 이어져 온걸 보면 영 가능성이 없다고
그녀는 쓸쓸하게 고백했다.
다만, 그런 아버지 아래서 내 버려 두다시피 자라게 될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
보아하니 그 무능한 남편이 바람까지 피었던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오히려 담담해 졌다고 했다. 그저
그 여자가 좋은 여자 였으면 바랄게 없다고 그랬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땅의 그런 못된 남자들의
얘기들은 왜이리도 끊임없이 반복 되는지 ..
가장 나쁜 남자는 술먹고 자기여자 패는 남자다.
그 남자 아무래도 알콜중독인가 보다, 치료 대상이다. 당신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니 맘 아파 하지도 마라고 격려인지 흥분인지 모를 얘기를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녀, 아이들 옷을 팔면서 왜 자신의 아이들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그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싸아해 온다.
수없이 눈물을 삼키며 자신이 아이들을 다시 되찾아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녀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그래도 참 당차서 이쁘다. 혼자서 물건을 떼와선 혼자서 디스플레이 하고
혼자서 판매를 하고 혼자서 밥해먹고 혼자서 자는 그녀.
그러고도 늘 웃음을 지으려 애쓰는 그녀는 늘 씩씩해 보인다.
그녀가 자는 방을 들여다보았다. 두어평 남짓한 창고를 개조해
침대 하나만 달랑 놓아두고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그녀의 오빠가 와서 옥매트를 깐 침대를 설치해 주고 갔다고는
하지만, 살림집이 아니기에 퀴퀴한 냄새가 어디 빠져 나갈 만한
곳도 없이,환풍기 하나 없이 꽉막힌 그곳에서 편히 잠이 올까 싶은 곳이다.
그래서 인지 그녀는 물건을 떼러 서울갔다 오는 길에
차안에서 잠이 들고는 한다고 했다. 추우면 힛터를 틀었다가
깜빡 일어나 힛터를 끄고 잠을 자고 새벽하늘이 부염하게 동터오면
다시 차를 몰아 일터로 와서 하루 일과를 부지런히 시작하는 그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바라보면 내가 힘이 솟는다.
늘 씩씩하게 일하고 싹싹한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그녀.
농담삼아'철걸'이라고 이름 붙여 준다니 '아유, 내가 뭘 했다고 그래?'
하며 오히려 수줍게 웃는 그녀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나약한가 싶어
내 자신을 돌아다 보기도 한다.
오늘도 그녀는 누구보다 빨리 샷터를 올리고 하루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힘들고 지친 모습을 안으로 꽁꽁 숨겨 놓은채.
그런 그녀가 대견하고, 그 씩씩한 모습이 이뻐서
하루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준적이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다 깜짝 놀랐다. 그녀의 단단하게 뭉친 근육이
촉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도 놀란듯 그만 두라고 몸을 움츠렸는데
그제서야 알것 같았다. 몸이 고달픈것 만큼이나 가슴에 마음에
삶의 고단함과 고통스러움을 안으로 삭이고 있었다는걸.
왜 아니겠는가?
부디, 그녀가 지금 처럼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그녀의 꿈인 아이들을 데려다 살수 있을 만한 기반을
빨리 마련했으면 한다.
그녀에게 '화이팅'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