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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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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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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정말 싫어.


BY 빨강머리앤 2003-09-17

낼이면 아이들 학교에서 가을운동회가 열린다.

그래서 어제 아마도 총연습 날이었던 모양인지

운동회날 복장을 하고 책가방은 가져 가지 않았다.

두아이 모두 백군이라는데

붉은악마 티셔츠에, 흰색 반바지에 또 흰색 반스타킹을 신고, 흰장갑으로

차려 입은 모습에서 백군인지 청군인지 분간을 할수가 없었다.

딸아인 그래도 머리에 흰색띠를 해서 백군이라는 표시를 대신한 모양새인데,

아들아이는 빨간모자를 마무리 하고 보니 마치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폼새다.

하여간, 흰색의 반바지와 붉은색의 티셔츠를 받쳐입은 아이들의 모습은

밝아 보여서 좋았다. 여느 때 같지 않게 책가방도 없이 달뜬 기분으로 현관으로 나서는

아이들이 입가에 웃음꽃까지 피워서 여느때보다 아침이 화사하게 열리는 기분이었다.

사람의 옷에 따라 이토록이나 기분이 업그레이드 될수 있다니...

운동회가 아니더라도 가끔씩 학교에서 특정한 복장을 하고 오라는 일이

가끔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늘상 입어야 하는 교복 말고, 밝고 화사해서 지극이 아이다움이 엿보이는 그런 복장을

가끔 그렇게 아이들 끼리 맞춰 입는 날이 계절별로 한번씩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옷 챙겨입느라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엄마아빠를 향해,

얼굴도 보지 않은 채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소리치고는 학교를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순전히 그 빨간티셔츠에

하얀반바지와 스타킹의 조화가 생기로워서 말이다.

 

점심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온 아이는 온통 땀에 절여 있었다.

다른때 같으면 딩동, 초인종을 누르고는 문뒤에 숨어 엄마가 찾을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던 녀석이 문을 거세게 밀어젖히고 집안으로 들어섰었다.

땸으로 얼룩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는 팔뚝을 슥, 내밀었다.

동그란모양의 도장에 '1등'이라는 표시가 찍혀 있었다.

'이게 뭐니?'묻는 엄마에게 '달리기 에서 일등했어. 그래서 이렇게 일등도장 받아온거야'라고

설명하는 아이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흐르는 땀과 함께 번져 왔다.

 

오늘은 운동회 총연습이라는 말을 들었을땐, 그렇구나, 하고만

있었는데 운동회 당일날 출전할 아이들을 가려내는 달리기를 한모양이었다.

예전 우리 운동회때는 우리 아이들처럼 미리 '선수'를 뽑지 않고

그날 몽땅 달리기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이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따로 달리기선수를 뽑는 모양이었다.

하긴, 규모가 작았던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70년대라면 지금보다 더 콩나물 교실이었을테니.. 운동회 당일날 온 학급이 한꺼번에

달리기를 하는 진풍경은 그리 흔한 추억 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기대하진 않았는데 아들녀석이 달리기 1등이라는 도장을 팔뚝에 떡하니 받아온걸 보니

나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달리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어릴때도 달리기를 잘 못했지만 지금에 와선 거의 아니올시다 이니

내게 있어 달리기는 곤욕스럽고 어려운 상대일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동회날은 누구나 한번씩은 달리기를 해야 했기에

그 피할수 없는 운명의 날이 다가오면 전날부터 고민에 휩싸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운동회날은 좋은데 달리기는 정말로 싫었다.

운동회날은 부모님도 오셔서 함께 보고 함께 참여하는 날이기도 해서

엄만 맛난거 준비해서 오랫만에 한복 곱게 차려입고 학교나들이를 하시곤 하셨다.

그게 참 좋았다. 예쁘게 차려입은 엄마랑 맛난 점심 차려서 함께 먹는 일은 참 좋았다.

그래서 운동회날이 기다려 지기도 했지만,

달리기를 생각하면 이내 풀이 죽곤 했으니 어떻게 하면 그 달리기를 안해 볼 방법이 없을까를 연구를 해보았던 적도 있었다.

어떻게 안 달려 볼수 없을까, 라고 생각하고 긴장한 탓인지  내가 뛸 차례가 다가오면

안 마렵던 오줌이 참을수 없을 만큼 마려워서 어찌해야 할바를 모르기도 했다.

바로 내 앞줄이 달려 나가면 참지 못하고 선생님께 화장실좀 다녀오겠다고 얘기하지만

선생님이 흔쾌히 갔다 오라고 하실리는 만무였다. 백미터 달리기는 아무리 늦게 달려도

25초 안팍에서 끝이나는 짧은 시간에 승부가 갈리는 운동이었으니, 조금만 참아라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원망스럽고, 이제 내 차례다 싶어 가슴이 온통 두방망이질 치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곤 한다.

 

그렇게 잔뜩 긴장을 했으니 안그래도 못달리는 솜씨가 더욱 느려질수 밖에.

꼭 발에 쥐가 난것만 같았다. 빨리 달리고 싶은 생각에 몸은 자꾸 앞으로만 쏠리고

그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꼴등을 못 면할테니 이를 악물고 눈을 꼭 감고 그저

앞으로만 달리자하고 달렸던 어린시절 그 운동회.

 

아이의 팔뚝에 찍힌 '1등'이라는 자랑스러운 낙인이

내가 치루었던 그 운동회, 그 달리기의 순간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했다.

그 생각을 하자 지금도 손바닥에 땀이 배이는 느낌이다.

많이 긴장하긴 했었나 보다.

 

그런데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최선을 다해 달리는거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걸.

그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는걸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그토록이나

긴장을 하고 심리적 압박감으로 요의를 느끼며 괴로워 하지 않았을 것을...

 

늦게 돌아온 딸아인 3등을 했다니 예선 탈락이다 .

풋, 딸아인 아무래도 내 달리기 솜씨를 닮았나 보다.

그런데 다행인게 '넌 왜 3등이야?'라고 묻는 엄마의 물음에

'3등이 어때서?'라고 외려 반문해 오는 딸아이의 그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표정에서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단 말이야,, 하는 뜻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달려서 1등도장을 받아온 아들녀석에게도,

3등이어도 어때하는 표정의 딸아이에게도

내일 아침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얘길해 주어야지.

'최선을 다해라. 그래서 잘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도

너무 실망마아라'라고.

부디, 아이들이 즐겁고 신나게 가을운동회를 즐겼으면 좋겠다.

공부에 대한 부담도, 나름대로 받았던 스트레스도 몽땅 날려버리는 한바탕  잔치판을

벌이고 왔으면 참 좋겠다.

 

그래도, 나는 달리기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솔직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