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방송에서 가을노래를 들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가을하늘처럼 맑고 투명한 신영옥의 목소리로 듣는 우리가요가
새삼스럽게 마음에 한자락 가을바람을 불어넣고 간다.
벌써부터 가을의 전조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걸 감지하고 있었다.
저녁무렵,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길에, 잠깐 가게엘 들르기 위해 밖을 나서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귀뚜라미 울음 소리를 들은지가 일주일째.
흔히들 가을의 전령사라 부르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가을을 벌써 부터
부르고 있었는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선선해져 있다.
새벽엔 추워서 두꺼운 이불이 필요했었다.
팔월이 가려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 벌써 여름이 끝났다는 말인지..
그 지겹던 더위에 굴복하며 얼른 가을이 왔으면 했던 일이 무색해 지려하고 있다.
아직은 팔월,복더위도 한단계 남겨둔 시점이니.. 아직은 가을이라 말하기 시기상조는
아닐까 싶은데,
어쩌자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마음을 싱숭생숭 거리게 하는지.
하늘에 대고, 천지신명이라도 불러내서 물어보고 싶어지는 맘이다.
떠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심사인가,
여름이 지겨워 차라리 겨울이 빨리 왔으면 싶었던 마음으로 여름을 보냈던 내가
入秋를 보내고는 귀뚜라미소리와 함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새삼스럽게
떠나려는 여름을 붙잡고만 싶어진다.
읍내를 나가는 버스를 탈때가 있다. 잠깐동안이지만 도로 가까이에 있는 산을 들여다 보는
일이 좋아서 멀지 않는 그길을 버스를 타고 갈때가 있다. 걸어서 가는 시간과 맞먹는 동안
읍내로 곧장 달리지 않고 경춘가도쪽으로 난 길을 에둘러 가는 그 버스길이 좋아
버스를 가끔 이용하곤 하는 것이다.
버스에서 도로옆에 묵묵히 자연을 이고 있는 산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젖는 일이
좋았었다. 그 잠깐의 시선속에 담겨져 오는 푸른 자연의 싱그러움이 참으로 좋았었다.
새순이 돋아나 녹음 짙은 여름숲을 완성하고는 뜨거운 여름볕에도 늘 싱싱함을 뽐내던
숲의 기운을 나도 닮고 싶었다.
그 여름숲이 전해주는 싱싱함을 들여다 보며 여름은 저 숲으로 해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하고는 했었으니...
그길을 어제 다시 돌아보며 계절의 순환을 읽을수가 있었다.
녹음짙은 숲은 그대로 이되, 그속에 이는 바람의 결, 그 섬세한 결이 느껴졌던 것이다.
보라, 하늘은 저 만큼 높아져 있지 않은가.. 그 아래 더 많은 바람들이 들어차 있다가
아침과 저녁에 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었구나.
그렇게 조금씩 여름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새삼스럽게 대자연의 자연스러운 이치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었다.
한낮, 아직은 땡볕이 따갑다.
과실에 마지막 단물을 들일 마지막 여름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한낮을 걷는 동안에도
내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지난날의 덥고 습한 그 바람이 아니다.
어딘가 서늘하고 건조한, 그래서 가을냄새가 물씬나는 그런 바람이다.
아, 가을인가? 그런 말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때다.
어젯밤 환하던 보름달 아래 아이들과 저녁산책을 했었다.
달이 유난히 노란 빛을 은은히 뿌려주는 아름다운 저녁길을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었었다. 달맞이꽃이 제철을 만난듯 피어 하늘거렸고,
귀뚜라미가 수풀속에서 귀뚤거렸다. 쓰르라미, 여치... 그런 밤벌레들의 합창소리가
달이 뜬 하늘을 향해 깊고 청아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에 몸을 움추리며 준비해 갔던 가디건을 아이들 어깨에 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