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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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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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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미지 연출,


BY 빨강머리앤 2003-08-04

흰 바람벽이 있어 - 백 석

오늘 저녁 이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였을 것이다.

겨울보다 여름이 더 싫었던 것은.... 산후풍이라고, 아일 낳고 나서 어깨가 시린 증상이

여름이면 심해지곤 했다.  그해 여름, 사십년 만이래던가, 아무튼, 무지하게 더운 여름이

연이어 열대야로 몰아치던 94년... 일찍 부터 더위가 찾아온 6월 중순에 첫아일 낳았다.

그 더위속에 아일 낳은 나를 보고 엄마 수고했단 말에 앞서 '젊은 것이 참 멍청하기도 하지.

하필이면 여름에 아일 낳을게 뭐냐..'고 면박을 주셨었다.

 

정말 푹푹찌는 여름이었다. 초여름인데, 그여름은 일찍 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낮은 낮대로 덥고 밤은 밤대로 열대야로 시달리던 때였다.

아인 유독스럽게 울었다. 젖을 물려도, 시원하게 목욕을 시켜도 달래고 얼러봐도,

아인 어김없이 해가지려는 저녁무렵 자지러 지게 울곤 해서 안그래도 후텁지근한 날씨에

지쳐있던 나를 힘들게 하곤 했었다.

시어머님이 말씀 하시던 대로, 너무 더웠던 탓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낮더위에 지쳤다가 이제 조금 시원해 지려니 나름대로 긴장이 풀린탓인가, 싶은 생각이

나도 들고는 했으니까..

 

산부인과에서 막 퇴원하고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었다.

벌써 부터 병원에선 내가 누워있던 삼일동안 아이에게 분유를 주었던 모양으로 이미

아인 우유에 익숙해 있었지만 아이가 첫돌이 될때까진 내젖으로 내 아일 키우리라고

다짐한 내 의지를 관철시킬 요량으로 열심히 젖을 물려 보았다.

젖이 잘 나오지 않자, 엄만, 젖마사지를 하라고 했다.

젖이 잘 나올수 있는 여러가지 음식을 많이 먹어보라고 언닌, 매식사에 간식에,

내가 누워있던 방안에 늘 먹을것을 두곤 했었다.

그러고도 효과가 없던 삼일째, 언닌 그냥 젖을 아예 먹이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젖 떼일때 자신이 겪은 힘듬을 아야기 하면서 요즘 다들 분유먹여 키우는데

 편하고 좋지 않냐고, 언니가 그랬지만

나름대로 나의 의지는 확고했던것 같다.

그런 때문인지,  아이가 첫돌을 맞을때까지  젖 하나로 아일 키울수가 있었다.

처음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일은 참으로 쉽잖은 일이었다.

자세가 왜 그리도 안나오던지...

입이 짧은(지금도 여전한) 아인 젖은 잠깐 물고는 말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잘수 없을 지경이었고, 젖을 물린채로 잠이 든 적은 또 몇번이었던지...

 

더위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일로 지쳐서 밤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밤은 열대야로 낮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 더위가 만만치가 않았다.

오죽하면 집에서 못자고 텐트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옥상에 텐트를 치고 모기장을 치고 그렇게 잠을 잤었다.

옥상도 뜨겁기는 매 한가지여서 텐트를 치기전에 물을 몇양동이를 들이 부었던지..

그러면 뜨겁던 옥상은 부시식, 뜨거운 김을 내며 물을 빨아들이곤 했다.

 

옥상을 식히고 텐트를 깔고, 아이의 요람을 준비해서 누우면 그래도

열대야 속에서 바람이 간간히 불어주고는 했었다.

그 바람이 고마워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보다가 문득 올려다 보면

하늘엔 별들이 몇개 반짝여서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기도 했었다.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 아, 그런 라디오가 지금도 어디 있을 것이다.

남편이 학생때 들었다는 그작은 라디오를 켜면 잔잔한 음악들이

아이를 키우느라 지친 심신을 가만히 다독여 주곤 했던 것이다.

 

여하튼, 사우탕 탕처럼 달구어진 집안을 탈출해 옥상에 텐트치고 자는

밤은 그럭저럭 단잠을 잘만했었으나,

아직 몸이 회복되지 못한 산모가 밤새 밤바람을 그리 쐬는 일이 화근이 었던 모양이었다.

어깨랑 등허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난 그저 아일 낳고는 후유증일것이니,

그 증상이란 아이가 어느정도 크고 내가 몸이 회복되면 당연히 좋아질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말썽이다.

 

특히, 이렇게 여름이 한창일때 마다, 어깨의 욱신거림은 더욱 심해져

아무리 무더운 밤이라 할지라도 이불을 덮고 자야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정말 견딜수 없이 더워서 이불을 못 덮을 경우엔 적어도 어깨부위만은 꼭

덮어야 하니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이불을 그것도 얇은거 말고 두꺼운 이불로

어깨근처만 덮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찌 해서 어깨근처를 잘 덮고 잔대도, 아침에 일어나면 어깨가 뻐근해서

잘 움직여 지지가 않으니 오늘아침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였다.

'이러다가 어깨가 고장나는건 아닐까?'

 

오늘이 칠월칠석 이란다. 말복은 낼 모레라니 올 여름도 거지반 지나갔다.

그리생각하면 이 더위가 내리막길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되어 지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덥고 습해서 불쾌지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득, 어젯밤 백석의 시'흰바람벽이 있어'를 들었을때 겨울이미지가 떠올랐다.

잠시 더위를 잊게 해주는 ...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며 배추를 씻고 있다'

이런 싯구를 읽으며

여름이어서 더욱 시린 어깨의 통증을 잊어본다.

여름은 저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여전해서 매미소리 우렁차고

나무잎새 푸른데, 나는 잠시 겨울을 떠올려 본다. 백석의 시를 듣는 여름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