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86

영화사랑 궐기대회


BY 빨강머리앤 2003-08-02

취미가 무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영화보는거'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음악감상, 미술감상등 무슨무슨 감상 쯤으로나 치부될 '영화감상'은 어쩌면 흔해빠진,

그래서 취미라고 하기엔 너무 일상적인 습관정도의 것인지도 모르겠을 일을

난 취미를 묻는 사람들에게 어물거리듯 대답해 주곤 했다.

영화에 대해 무슨 대단한 이력이 있는것도 아니고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해본적도

없는 내가 영화를 그냥 '보는'수준으로 영화감상이 취미라고 말하기엔 뭔가

내가 생각해도 허전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라는 우리사는 세상이 워낙에 다양하고 개성적인 걸 원하는 지라

어쩌면 구태의연한 무슨무슨 감상식의 취미는 이젠 낡아버린 유산인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들었기에 나의 취미는 '영화감상'이라 자신있게 얘기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수준이지만 난 영화보기를 좋아한다.

내가 영화를 언제부터 좋아했던가 생각의 실마리를 끄집어 보니,

두가지의 영화와 관련된 작은사건이 있었던듯 싶다.

국민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학교에서 보여주던(극장이 없었으므로)

새마을운동에 관한수기 형식의 영화와(영화라기 보다 다큐멘타리 형식의 성공사례 드마라)

반공을 주제로한 '때려잡자 공산당'식의 영화만을 보아왔던 나에게

영화는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만을 기워주었고, 사람들이(특히, 농촌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지나치게 처절하게 비쳐졌을뿐 더이상의 어떤 감동이나 감성을 자극하는일을

허락하질 못했었다.

그런 내게 극장구경할일이 있었으니 고모가 나를 데리고

시내에 가서 영화관람을 시켜주셨던 것이다. 제목은 생각이 잘 안나는데

한 바람둥이 남자가 여러여자를 그냥저냥 사귀다가 버리기를 반복하다

남자주인공과는 어울리지 않을듯한 수수한 여자가 나타나 결국엔

 진짜사랑을 얻어서 행복한결혼식을 올리는 로맨틱드라마 영화였었다.

영화속엔 요즈음이야 그 흔한 키스씬 한번 나오지 않았지만 국민학생이 보기엔

다소 차원이 높은(등급상)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는

영화가 주는 매력에 한동안 심취해 있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은 그 영화의 줄거리를 더듬어 보며 행복해 하다,

개학을 하던날, 공부를 마치고는 영화얘기 듣고 싶은 사람 남으라 해서는

교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실감나게 그 영화얘기를 들려 주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여자아이가 내 얘기를 듣기 위해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로 한동안 잊고 지내다 중학생이 된 어느날,

윗집 친구가 책을 한권 가지고 왔었다. 대학생 오빠가 보던 책이라며 펼친건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주요장면, 그리고 주인공 남녀의 사진이 실린 영화화보집

비슷한 책이었다.  난 그 책을 보면서 외국의 배우들에 푹 빠져버렸다.

인형처럼 예뻤던, 그래서 천상의 여인으로만 보이던 '데보라카','비비안리','오드리햅번'

'그레이스 켈리''까뜨리느 드뇌브'등등을 영상매체가 아닌 책으로 첫대면을 한거였다.

그 당시에 토요일이면 텔레비젼에서 상영하던 '주말의극장'에 한참 맛을 들이고 있었으므로

그중몇은 낯이 익기도 해서 그 반가운 마음에 난 그 책에 푹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콧수염이 매력적이던 '클라크 케이블'의 미소는 얼마나 부드러웠던가,

험브리보가트의 우수에 젖은 눈은 한동안 내 소녀시절의 정서를 지배했었다.

버트 랭카스터, 숀코네리, 그리고 조각상처럼 반듯한 외모의 애수의 남자주인공 (로버트 테일러 였던가?) 의 얼굴은 이제막 사춘기를 시작한 소녀의 가슴을 두방망이질해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영화 사랑을 조금씩 키워갔었다.

주머니는 늘 가난했기에 영화관에 가는 일이 쉽지 않았으므로 학교에서 단체로 보여주는

영화를 통해 영화에 대한 갈증을 조금씩 풀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국민학교 6학년때 처음본 극장영화와,

친구랑 뒹굴며 영화화보집을 보던 그 기억이 나를 영화의세계로 초대해준 셈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학교 다니느라, 직장생활 하느라,

결혼하고 아이낳는 핑계 대느라... 틈틈히 영화를 찾아보긴 했지만,

그건 정말 틈틈히 였을 것이다.

 

그러다, 과연 내 취미는 뭔가라고 갈등이 생기고 내 좋아하는 영화를 이젠 다시 보고

싶다고 절실해진건 둘째애를 낳고 나서 조금씩 시간적 여유가 생긴 뒤였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특히 금요일 밤에 나만의 '시네마 극장'을 마련하는 일을

꾸려 나갔다. 좋은영화를 일주일에 한편씩 보기 위해선 상당한 기본자료와 시간에 대한 투자와 정보를 요구했다. 신문에 일주일에 하루씩 영화에 대한 자료를 소개해 주는 란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는 했다.

새로나온 영화에 대한 글을 읽고는 내가 어떤 영화를 볼것인가를 정했고,

새로나온 비디오를 접하며 내가 기다려온 영화가 나올것이란 기사를 보면

얼른 비디오 가게로 달려 가곤 했었다.

그렇게 오년 가까이 영화보기를 했었으니 내가 본  영화의 편수만도 백여편 가까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극장에서도 아니고 비디오로 영화보기를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정말 좋은 영화가 무슨무슨 영화제에 상이라도 받았으면 모를까, 비디오로 나와있지

못하고 비디오로 만들어 졌대도, 상업성을 이유로 비디오가게에서 갖다 놓지 않아

못보게된 영화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갈만한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영화를 꽤나 접하고는 했었다. 그런 일주일은, 아니 한동안은

그 영화가 주던 감동의여운으로 행복을 만끽하고는 햇었으니...

그렇게 영화를 보는 동안 난 우리동네비디오의 단골 고객이 되어 어느땐 비디오가게에

나오는 오리지날사운트랙이 실린 CD를 선물로 받기도 했고, 새로온 영화를 먼저 볼수

있는 특전을 누리기도 했고, 보통은 1박2일용 비디오를 조금 늦게 갖다 주어도

연체료를 면제 받는 혜택을 받기도 했었다.

 

지금은 영화를 비디오를 통해서 보는 일마저 쉽지 않게 되어 버렸다.

마석으로 이사를 와서 보니, 문화적 환경이 이만저만 열악한게 아니다.

서울이면 구마다 하나정도로 갖고 있는 문화상영시설이 여긴 전무할 뿐만 아니라

극장이라고 하나 있는 듯 싶은게 거리도 거리지만 무슨무슨 자동차 극장이다.

극장가긴 다 틀렸다고 일찌기 마음을 비워버렸지만

비디오 가게마저 나를 배신하는 현실은 나의 영화에 대한 의지를 시험해 볼 생각인가

싶게 열악하다. 내 나름대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오로지 발견한 상가비디오 가게는

단촐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을 들락거려 봐야, 신작이 한두개 그것도 잘해야 그리 되고,

또가도 같은 비디오만 덩그마니 놓여있곤 해서 내 발길이 무색했던적이

하루이틀 ...나도 조금씩 지쳐가서 이젠 비디오가게에 들르는 일이 내켜지지가 않는다.

 더구나, 직장을 갖게 된 지금은 시간상으로도 자유롭지 못하니

이건 이중삼중고가 덮쳐서 영화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영화사수 궐기대회'라도 열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여기에 하소연하게 된 것이다.

그런중 '그녀에게'를 보게 된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 좋은 영화한편 보고나면

나는 그래도 이 열악한 영화보기의 현실을 다소나마 위로를 받고는 하는 것이니

또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기다리는 느긋함마저 갖게 되는 것이다.

 

토요일이다. 다행히 '주말의명화'는 아직도 살아있다. 상영작이

지지부진한 옛날영화이고, 재탕 삼탕인 영화이지만 말이다.

오늘밤엔 리어나도 디가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주연한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재탕될거란다. 벌써, 두번을 본 영화지만 다시 한번

보아도 무방할 영화였으니 오늘 비디오가게에 들러 내가 찾고자한 새비디오가

없으면 아마도 세번째로 보게될 영화가 될지 모르겠다.

하긴, 디카프리오와, 클레어데인즈가 첨 만나던 그 장면에서 흐르는 'kissing you'

의 그 감미로움에 젖어 보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봐줄

용의가 있다.

 

토요일이다. 좋은영화 한편 감상하면서 늦더위를 피해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