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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無花果)


BY 빨강머리앤 2003-07-31

무화과나무의 꽃

                              -박 라연-

나는 피고 싶다.
피어서 누군가의 잎새를 흔들고 싶다.
서산에 해지면
떨며 우는 잔가지 그 아픈 자리에서
푸른 열매를 맺고 싶다 하느님도 모르게

열매 떨어진 꽃대궁에 고인 눈물이
하늘 아래 저 민들레의 뿌리까지
뜨겁게 적신다 적시어서
새순이 툭툭 터져오르고
슬픔만큼 부풀어오르던 실안개가
추운 가로수마다 옷을 입히는 밤
우리는 또 얼마만큼 걸어가야
서로의 흰 뿌리에 닿을 수가 있을까
만나면서 흔들리고
흔들린 만큼 잎이 피는 무화과나무야

내가 기도로써 그대 꽃피울 수 없고
그대 또한 기도로써 나를 꽃피울 수 없나니
꽃이면서 꽃이 되지 못한 죄가
아무렴 너희만의 슬픔이겠느냐
피어도 피어도 하느님께 목이 잘리는
꽃, 오늘 내가 나를 꺾어서
그대에게 보이네 안 보이는
안 보이는 무화과나무의 꽃을

 

지금쯤, 남도의 비릿한 해풍을 맞으며 무화과가 한참 토실하게 익어갈

준비를 하고 있겠다.

어찌보면 좁은 땅덩어린 이 한반도에 별스런 토양이 따로이 있어도 그게

별게 아닌것 같은데 어떤곳엔 밀감이 잘자라고 어떤곳엔 대나무가 잘자라고

또 어떤곳에만 무화과가 탐스럽게 열리곤 한다.

 

그러니까 서남쪽 그것도 바닷가를 인접한 곳에서만 무화과가 자란다.

우리나라에선 그렇고, 지중해쪽에 인접한 나라들 역시도 무화과가 잘 자라는걸로

알고 있고, 또 잘은 모르지만 성경책에 나온바로 신성한 과일로 묘사되어 있는걸

보니 아마도 이스라엘이나 이집트(영화 ''프린스앤 프린세스''에 무화과를 맛있게

먹는 여왕이 나오기도 한다) 쪽엔 무화과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무화과는 그래서 특별한 과일이다.

어릴적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못잊어 서울 살 때는 재래시장을 뒤지곤 했지만,

그래서 어쩌다 시장한켠에서 무화과를 만나고는 했지만

그건 크기도 작았고, 어쩐 일인지 맛이 없게 생긴것들 뿐이어서

선뜻 무화과를 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보잘게 없이 생긴 무화과가 비싸긴 또 얼마나 비쌌던가?

 

나 어릴 때 우리 동네엔 집집마다 무화과 나무 한그루씩을 갖고 있었다.

토담 한켠에 우람한 무화과나무가 있는 집이 보통이어서

누구네집 무화과 열매가 빨리 그리고 맛있게 익는가를 친구네 들이랑

가늠해 보는 일이 한동안 우리의 관심사가 되곤 했었다.

무화과는 이름 그대로 ''꽃이 없는 열매''란 뜻이다.

꽃이 피지 않고 열리는 과일이라니...

보시라......... 무슨 나무든 풀이든 그것이 열매를 맺는 것이라면

작든 크든, 풍성하든,빈약하든 꽃을 피우지 않던가.

 

꽃을 피우지 않기에 벌이나 나비가 날아드는 양을 못 본것도 같다.

그런 나무에서 여름이 익어가는 것과 동시에 작고 초록색인 열매가 가지끝에서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면 그게 그렇게 신기한 생각이 들고는 했었다.

 

초록색이면서 단단하기만 한 무화과는 잔뜩 입을 오므린채 조금씩

커가다가 칠월말 즈음해서 조금씩 익어가면서 열매는 서서히 붉은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꼭 다문 열매의(열매의 끝부분이 꼭다문 입처럼 생겼다)

끝부분이 조금씩 벌어질때면 무화과의 단내가 진동하면서 이젠 ''나를 따먹어도 돼''하고

허락하는듯 속살을 드러내 보이곤 했다.

 

그럴땐 누구나가 나무타기를 하는 개구장이가 되어야 한다.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라도 예외가 없다. 이미 몇십년이 되어 둥치가

한아름이나 되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일은 무화과 열매를 따기에 앞서

나무타기를 하는 재미까지 덤으로 안겨 주고는 했다.

그러다가 몇번은 나무 아래로 떨어져 엄마한테 야단맞고

상처에 난 피를 보고 울고는 했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긴 장대로 잘 익은 무화과라도 손에 쥐어 주면

금방 울음을 그치곤 했었지.

너무 달콤해서 그제서야 몰려드는 벌을 피해 얼른 익은 열매를 따야 했다.

무화과는 한번 익기 시작하면 무서운 기세로 단내를 퍼뜨려 온갖 곤충을

불러 올 뿐더러 그 익는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처에 내다 파는 무화과는 앙다문 열매 끝부분이  벌어지기 전에 수확을

해야 한다. 그게  완전히 익어서 따게 되면 곧 물러져서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참 많이도 먹었다. 여기저기 널린게 무화과 였고,

무화과를 가꾸던 과수원도 꽤 되었으니까.

 

지난 여름, 휴가차 시골집에 가보니 나 어렸을때 무화과도 따먹고, 친구들이랑

나무타기를 하곤 했던 무화과 나무가 둥치가 싹뚝 잘라져 있었다.

지나치게 가지가 무성해서 골목길 통행을 방해 한 때문이기도 했고,

무화과 나무가 이젠 나이를 먹었는지 열매도 많이 맺지 못해서

굳이 나무를 잘랐노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한참을

나무 밑둥을 들여다 보았었다.

무화과 과수원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내다 파는 상품이기보다,

아이들 간식거리였던 무화과를 먹을 아이들과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가니

자연히 무화과도 덜 가꾸게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무화과 나무에 대한 아쉬움을 안은 채 강진을 들렀다 오는길에

국도변에서 무화과를 파는 트럭을 만났었다.

바구니에 넘치게 쌓인 무화과가 참으로 먹음직 스러워 보여

한바구니를 샀다. 무화과를 먹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무화과 껍질을 벗겨 입에 넣어 주었다.

의외로 아이들은 무화과를 맛나게 먹었다. 아무렴, 무화과가 얼마나 달고 맛있는 열맨데.

무화과를 좋아하는 남편과 나 그리고 처음 먹어보는 무화과를 맛있노라는 아이들 까지 합세해 한바구니나 되던 무화과는 금새 비워지고 말았다.

 

어젯밤 라디오를 듣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꽃이 없이 맺는 열매로 알았던 무화과도 사실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었다.

무화과나무의 그 까슬하고 볼품없는 나뭇잎새 뒤에 하얗고 작은 꽃이 숨듯이

피어있다는 것이었다.

 

올해도 어디 남도의 국도변을 달리다 무화과를 파는 트럭을 보면

한바구니를 사오리라..

그 무화과 파는 국도변 어디 무화과 나무라도 발견하면 잠시 차를 멈추고

무화과  나무를 살펴 보리라 생각한다.

무화과 나무의 그 하얀꽃이 어쩐지 신비로울것만 같다. 그리고 무화과를

좋아했으나 그 꽃을 알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성도 하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