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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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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장례식장에서


BY 낸시 2020-12-31

서할머니는 아버지 진갑이라고 친척들이 다 모였을 때 돌아가셨다.
그 때는 환갑이면 동네 잔치를 하고 진갑에도 친척들이 모여 축하를 하였다.
친척들이 모두 모였으니 음식 장만은 기본이다.
평소보다 기름진 음식이어서인지, 그것을 먹고  배탈이 난 할머니가 그만 돌아가신 것이다.
놀라고 당황했지만 잘 가셨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친척들이 모여있고 음식까지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는 때를  기막히게 잘 맞춰 가셨다는 것이다.
돌아가셨다고 해도 안오려고 했더니 미리 알고 선수를 쳤나보다고 말하는 고모도 있었다.

초상이 났으니  할머니가 계시던 방 앞에는 상청이 설치되었다.
상복을 입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조문객이 오면 곡을 하고 조문객과 마주 절을 하였다.
돌아가셨어도 끼니 때가 되면 상을 차려 올리고, 여자들도 모여 곡을 하였다.
슬프지도 않은데 무슨 곡이냐고 싫다는 고모도 있었지만 예절이라니 모두 모여 곡을 하였다.
아이고, 아이고...곡을 하다 말고 막내고모가 킥킥 웃었다.
작은엄마와 다른 고모들도 따라 웃었다.
슬프기는 고사하고 시원하기만 한데 우는 흉내를 내는 것이 우스웠다는 것이다.
초상집에서 이 무슨 경거망동이냐는 아버지의 호령에 고모들은 조용해졌다.
엄마는 누구보다 할머니의 죽음을 반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슬퍼하지도 않았지만 좋아하는 기색도 없었다.
고모들 분위기에 장단을 맞출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평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긴 하지만 그 때도 말없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곡을 해야 할 때는, 아이고 아이고...소리를 내어 며느리 도리를 하였다.

할머니를 고모라 부르던 아저씨가 있었다.
돌아가신 친할머니 조카였는데 서할머니가 친할머니 대신이라고 고모로 불렀다.
진외삼춘 혹은 재식이 아저씨라고 우리가 부르던 아저씨다.
이상하게도 아저씨는 서할머니를 마치 자기 진짜 고모처럼 다정하게 대하곤 하였다.
할머니도 진외갓집을 자주 찾아가기도 하였다.
막내고모와 할머니가 싸워 엄마 눈을 다친 날도 할머니는 진외갓집에 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할머니도 어지간히 마음 붙일 곳이 없었나보다.

할머니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와 재식이 아저씨는 마당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호상도 이런 호상이 어디 있느냐고, 춤이라도 추어야한다고 하였다.
아저씨는 사촌인 고모들도 작은아버지도 춤판에 끌어들였다.
초상을 치른 집 마당에서 이렇게 때 아닌 춤판이 벌어졌다.
고모들도 작은아버지들도 진심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축하하는 것 같았다.
형수님도 와서 같이 춤을 추자고 아저씨가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결국 이 춤판도 아버지의 제지로 길게 가진 못했다.
아버지는 아무리 호상이라도 춤까지 추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였다.

힘든 시집살이를 시킨 서모 시어머니였지만 예의를 지키려 노력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바보 같다고 투덜거렸지만 지금은 엄마의 딸인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