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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모 시어머니


BY 낸시 2020-12-30

엄마는 한 쪽 눈이 수시로 찌르고 아프다고 하였다.
흰자가 검은자를 살짝 덮고 있었는데 할머니와 막내고모의 싸움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나중에 수술을 해서 좋아졌다 했지만 우리 키울 때는 그 불편을 그냥 견디었다.

아버지 팔남매를 낳아주신 할머니는 막내고모가 4살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마자 다른 할머니를 맞아드리셨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일이니 우리 기억 속 할머니는 그 할머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서모라고 칭하였다.
서모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아버지의 첩을 칭하는 말이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혼인신고를 안했다는 뜻이다.
글자 하나 하나 뜻을 따지던 아버지가 그리 불렀으면 틀림없어 보인다.
서모든 계모든 호칭과 상관없이 그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다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멋쟁이었고 집안일이나 농사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할아버지와 번갈아 서로 소설책을 읽어주고 육백화투를 치는 것으로 소일하였다.
라디오를 켜놓고 마루에서 춤을 추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멋쟁이 신식할머니에겐 재봉틀도 있었다.
우리가 사는 시골에서 재봉틀이 있는 집은 우리집 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재봉틀을 이용해 바느질하는 것은 본 기억이 없다.
할아버지 옷은 엄마가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다정은 고사하고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농사 일에 바쁜 엄마는 할머니에게 어린 우리를 맡기고 밭일을 해야했다.
집에 돌아와 발견한 우리 모습은 엄마 가슴을 미어터지게 했다고 하였다.
마당 구석에 흙투성이로 잠들어 있거나, 쉬어터진 보리밥 숭늉을 먹고 있기도 했더란다.
할머니는 도리반 상에 밥과 반찬 챙겨 뒤돌아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찬바람이 불었으면 막내고모에겐 어땠을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막내고모와 할머니의 잦은 싸움으로 집안은 살얼음판이었다고 한다.

엄마 눈을 다친 날도 막내고모와 싸우고 할머니가 집을 나갔다고 하였다.
할머니를 찾아오라고, 할아버지는 애꿎은 엄마에게 노발대발이었다.
날씨마저 험상궂어 진눈개비 날리고 바람이 몹시부는 밤이었다고 한다.
전깃불은 당연 없던 시절, 엄마는 할아버지 등쌀에 할머니를 찾으로 나섰다.
깜깜하고 얼어붙어 미끄러운데 더듬거리다 바람에 열린 찬장문 모서리와 얼굴이 부딪쳤다.
눈에서 번쩍 불이 나는 것 같더니 금방 눈주변이 퉁퉁 부어올랐다고 하였다.
밤송이처럼 부풀어 오른 눈으로, 엄마는 그 밤에 할머니를 찾아 빌고 또 빌어 모셔왔다고 하였다.
바보 같은 우리 엄마.

할머니와 싸우면 막내고모는 엄마에게 심술을 부렸단다.
할머니 눈치 보느라 내놓고 고모 편을 들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화도 났을 것이다.
딸처럼 키운 시누이도, 시누이라서 엄마는 설설 기어야했다고.
딸같은 시누이에게 '정가년'으로 불려도 대꾸 한번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막내고모와 싸우는 것만으로 엄마를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농사지은 팥을 주고 비누를 샀다고 할아버지에게 일러 야단을 쳤다고 한다.
집안 어른인 자기에게 묻지도 않고 맘대로 했다는 것이 죄였다.
서모 시어머니 시집살이를 겪은 우리엄마,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였다.
남편을 낳은 시어머니 시집살이는 그래도 자기 자식을 생각해서 한 자락 인정은 남아있단다.
서모 시집살이는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고 혹독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엄마는, 시집살이 맵다 모질다 하여도 서모 시어머니가 최악이라고 하였다.
서모 시집살이까지 겪은 불쌍한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