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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 미행 좀 해 주세요


BY 이쁜꽃향 2003-08-18

   
 

"선배님! 제 아파트로 차 가지고 와 주실 수 없나요?"

지난 밤 문서 작성하느라  밤을 새우다싶이 하여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겨우 출근,
막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려는데
숨 넘어가는 듯 화급한 목소리로 후배가 전활 했다.

"무슨 일이야?
애가 아파?"

"선배님!
남편이 갑자기 3일간 휴가를 받았다는데요.
아무래도 다른 여자랑 가는 거 같아요. 미행 좀 해 주셔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십여분 후면 남편이 짐을 챙기러 올 거라며
그 안에 자기네 아파트 주차장에서 대기해 있다가
남편 출발 후 그 차를 미행 좀 해 달란 내용이었다.

결혼전부터 수려한 외모로 여성편력이 좀 있었다던 후배의 남편은

결혼 후 한동안 별 탈이 없이 잘 사는 듯 소식이 뜸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듯.
후배 또한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없이 자란  귀엽고 예쁜 여자였다.
마누라 집안 빵빵하고 예쁘지, 나이차도 좀 있고하여
총각 때의 바람기는 아예 사라진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후배에게서 언제부터인가 잊을 만하면 전화가 왔다.
"그냥 궁금해서 전활 했어요."라며
맥빠진 목소리로 별 내용도 없이 안부전화인 양하고 끊곤 했다.
인생 경험으로 비추어 그간 소식이 없던 사람에게서
갑작스럽게 연락이 오는 경우는
살기가 아주 좋아져 자랑하고 싶을 때이거나
아니면 어려운 곤경에 처하여 누구에겐가 하소연하고싶을 때,
그리고 연락처를 수소문하다 알게 되어
너무 반가워 만나고 싶을 때 등이었다.

느낌으로 후배는 내게 무언가 하소연하고픈,
그리고 조언이라도 듣고픈 전화인 듯했다.
그래서 몇 번의 전화가 오간 후,
"잘 사니?
남편이랑은 잘 지내고? 한 번 놀러오지 그러니?"
한 번 운을 띄웠다.
내 말에 엉킨 실타래의 시작을 찾은 듯
후배는 한숨 섟인 소리로
만나뵙고 오랜만에 얘기 좀 하고픈데
밖에서 언제 뵐 수 없느냐 물었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가정에 문제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밖에서 만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냥 편하게 전화로 얘길하라고 했다.

2년전, 남편의 귀가시간이 늦기 시작하더니
차 안에서 여자의 소지품이 가끔 나왔단다.
남편이 늦을라치면 후배가 자꾸 '어디냐?'고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고 캐물으니
신경질 적으로 끊어버리고
집에 와서는 심하게 화를 냈댄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니?
아무 근거도 없이...
남자들은 회식도 잦고,
또 네 남편 직업상 접대 받을 일도 있을 텐데...'

'아무런 근거없이 제가 이러면
절 의부증환자라 하겠죠.'

한 밤중에 차 안에서 웬 아가씨와 단 둘이 있는 걸 목격하고
따졌더니 상사로서 상담 좀 했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는 퇴근 후 술친구로 자주 만나더니
언젠가는 그녀가 사 줬다며 휴대폰까지 가져왔다는 거였다.
그럴 때마다 후배가 따지게 되니 부부싸움이 되고
손찌검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6개월 넘게 서로 소 닭 보듯 살다가
최근에는 후배가 목숨 걸고 덤비니
이젠 그 아가씨랑 헤어지겠다고 하고
휴대폰까지 없앴다고 하더란다.

그동안 새벽녘에 주차장에 나가 미친년처럼
남편의 차 내부를 샅샅이 뒤지곤했다는 후배는
그 고통을 견딜 수없어 용하다는 점집에
조석으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엔 아무리 인텔리 여성일지라도
어쩔 수 없나보다는 생각도 들고
그녀가 안쓰러워 견딜 수 없었다.

이혼할 생각이 아니라면
마음을 비우고 그냥 포기하고 살아라
결국 남자는 돌아 오게 되어있어
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 봐
취미생활이나 그외 모임등을 찾아 봐라 등등
내 딴엔 최대한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결국은 모든 건 거의 세월이 해결해주느니
기다리는 인내를 기러보라고 충고해 줬다.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정말 갈라서고 싶다고
아니꼽고 더러워서 못 참겠다고
울먹울먹 하소연하는 그녀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곤 했는데
출근하자마자 그녀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것이다.

"어쩌지?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도저히 운전을 못하겠는데...
더군다나 차를 미행하는 건 정말 자신없어.
택시를 불러서 하면 안될까?"
"안돼요.
그사람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요...
부탁이에요, 선배님. 시내 벗어나는 데까지만 따라가 줘요."

워낙 간곡히 애원하는지라 결국 동료의 차를 쓰기로 했다.
후배 남편이 내 얼굴을 알 수도 있겠고
내 차도 종종 봐서 알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아래 직원에게 부탁을 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추격전을 방불케하는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사립탐정처럼 조수석에 올랐다.
다리가 후둘거리고 손까지 떨렸다.
나는 통화하는 척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대고
눈은 그의 차를 뚫고 있었다.
후배의 말대로라면 그는 차를 시내쪽으로 돌리게 된다.
거기서 여자를 태우고 시외로 갈 거라는 거였다.

'너 괜히 의심하는 거 아니니?
제자들이 초청하여 간다는 데 무슨 여자를 태우고 가겠니, 설마...?'
사실 장거리인데 병원 개업하는 제자가
스승부부를 초대하지 않고 스승만 부른 것도 얹짢고
3일이나 비우면서 동부인하지않은 그 남편도
어딘가 미심쩍긴하지만
이미 반 정신이 나간 듯한 후배를 안심시키는 게 더 급선무였다.
'아니에요.
그 여자 사무실에 전화해보니 3일간 휴가 냈더라구요.
어떻게 똑같은 날 똑 같은 기간으로 휴가가 되겠어요?
우연의 일은 절대 아니라구요.
지네들끼리 미리 짜고 한 거에요.'
후배의 말이 귓가에 자꾸만 윙윙 거리는데
앞에 가던 그의 차가 갑자기 턴할 장소도 아닌 곳에서
시내 쪽으로 도는 게 아닌가.

"어머, 선생님 ! 저거 좀 봐요.
분명히 휴대폰이 없다고 했는데 전화하고 있잖아요."
운전하던 동료가 놀래서 소릴 쳤다.
사실이었다.
그는 어디론가 열심히, 웃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추격이 어렵지는 않았다.
통화하느라 속력을 내지않고 있으므로...

터미널 쪽에서 갑자기 좌회전을 한 그는
바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우리도 깜짝 놀라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오륙미터 전방에 멈춰 섰다.

사실이 아니길
후배가 좀 예민하여 지레 짐작하였길
제발 후배의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며 이분쯤 기다렸다.
"엄머머!선생님!
웬 아가씨가 그 차에 타려고 해요."
그에게 행여 들킬세라 상체를 한껏 낮추고 있던 내게
동료가 급하게 손가락으로 찌르며 소릴질렀다.

긴 생머리에 늘씬한 그녀는
쇼핑백을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그의 옆으로 자릴 잡았다.
자신의 소지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뒷자리로 옮겨 두며.
상식적으로 우린 남의 차에 탈 적엔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고선 자신의 짐을 대개
무릎에 얹거나 발치에 두고 탄다.
그러나 그녀의 일련의 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녀가 타자마자
그의 차는 유유히 떠나버렸다.

"어떡할까요?
계속 따라갈까요?'
"아니... 그냥 가자..."

맥이 빠졌다.
"선배님. 어떻게 되었나요?"
곧 이어 후배의 전화가 왔다.
어떻게 얘길 할까 망서리다
똑바로 알려줘야 할 거 같아
사실대러 얘길 해 줬다.
그래야 남편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남자란 족속들은 현장을 덮치지않은 담에야
모두가 발뺌한다잖은가.
절대 그런 적 없다고.
생사람 잡지 말라고.
호텔방에서 붙잡혀도,
'하도 더워서 그냥 옷 벗고 얘기하고 있었다'고 한다던가...

그녀는 혼이 다 나가버린 듯했다.
실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풀썩하고 쓰러져버릴 거 같았다.
뭐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너도 바람 펴라. 남자 없니? 옛날 너 쫓아다니던.
돈은 모아 뒀니?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차도 마시고 좀 즐겨라..."
우선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추스려 주어야하는데
휑 한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뭔지 모를 분노가 치솟았다.

막내며느리로
신혼 때부터 고약한 홀시어머니 모시며 사느라
마음 고생까지 심하게 겪었다던데
그런 마누라 두고 그러고 싶었을까, 천하에 나쁜 자식 같으니라구.
"나중에 오면 니가 직접 본 거 처럼 조목조목 짚어 봐.
되려 널 잡으려 할 지 모르니까
확실하게 해.
포기하고 살려면 그냥 모른 체 해버리고..."

사흘 뒤,
뻔뻔스럽게도 혼자 갔다고 끝까지 잡아떼더란다.
몇 번을 재차 확인하고 또 묻고하다
그 아가씨의 옷차림새며, 차를 이동한 코스,
차를 세웠던 곳 휴대폰 등등 확실한 증거를 대자
그제서야 우연히 목적지가 같아서 갈 때만 태워다 주었노라고
오히려 큰 소릴 치더랜다.

점 집으로 신경정신과로 방황하던 그녀는
'선배님 말씀이 맞아요.
여자에게도 정말 비자금이 꼭 필요하더라구요...
의사도 뒷 돈 있느냐고 그러대요.
남편에게만 너무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즐기도록 하라고...'
눈물을 쏟으며 쓸쓸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든 건 세월이 해결해 주나니
아마 얼마 후면 그 아가씨도 제 짝을 찾을 것이고
그 남자도 가정으로 돌아오겠지.
바람 부는 날 있으면
바람 잘 날 있을 것이고
햇빛이 쨍쨍 쬐는 날 오겠지.
그리고 그 남편 옛일 발등 찍고 후회할 날도 분명 오리라.
그 날이 오면
후배는 아마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되겠지.
'세월이 명약이구나...'하며...
어서 빨리 그 날이 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