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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BY 이쁜꽃향 2003-08-16

마흔 여섯해를 사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가정 형편 때문에 원하는 대학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어 좌절했었던 사춘기 시절,

결혼할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질 못했는데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해야만 했던 이십대.

그리고 남편도 곁에 없는데

생후 칠개월 밖에 안 된 아들녀석을 장중첩으로 수술대 위에 눕혀 두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애가 다 타버렸던 때,

겨우 내 집 마련을 나는가 싶었는데

남편이 교통사고를 내버려 빚까지 져야했던 삼십대.

크고 작은 사연들이 숱하게 있었겠지만

이 순간 반짝 떠오르는 아픈 기억의 일부분이다.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희생적이셨던,

그래서 평생을 마음 고생만 하시다 가신 친정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삶을 보며 난 절대로 우리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나'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은 결코 살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친정어머니께서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시니

뒤늦게 대학원 공부도 마칠 수 있었고

난 늘 바쁘게 당당하게 내 일을 즐기며

지역사회에서 인정 받을 정도의 내 위치를 다져 갔다.

하고자 하는 일은 기어코 추진해 나갔고

자기 관리를 위해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기도 하며.

 

요즈음 유행하는 유모어 중에

여성의 삶을 풍자한 재미있는 글귀가 있다.

속칭 '가장 배 아픈 여자'라던가.

'여자들이 가장 시샘하는 여자'라 하던가...

십대엔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잘 하는 여자,

이십대엔 좋은 직장을 가진 멋진 남자와 결혼한 여자,

삼십대엔 아이까지 공부 잘 하는 집 여자,

사십대엔 남편은 돈을 잘 벌고 자녀까지 좋은 대학엘 보낸 여자, 

오십대엔 자녀까지 좋은 직장을 얻어 결혼까지 잘 시킨 여자...

 

해가 갈수록 피부에 와 닿게 절실히 느끼는 건

여자의 삶은 그녀 자신보다도

오히려 주변 가족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모임에 나온 여자들의 대화엔

그녀들의 일상이 묻어져 나온다.

젊을 땐 은근한 남편 자랑-흉 보는 듯 하지만 결국엔 자랑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엔 자식 자랑,

더 나이가 들면 손주 자랑에 열을 올린다던가...

그런 여자들을 보면서 예전엔 피식 웃었었다.

난 결코 저렇게 살진 않으리라.

가족이 아닌 내 삶 속에서 행복을 찬을 수 있게

멋진 삶을 살리라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이제는 그 옛날처럼 내 삶은 단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 할 자신이 없다.

언제부터이나 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입으로는 '안돼'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이미 해 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게 몇 번이던가.

'엄마는 역시  외할머니 닮았어.

우리가 해 주라는 건 다 해 주잖아.

아무리 피곤해도...'

한밤중에 둘째녀석이 먹고싶다는 간식을 챙기고 있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하는 소리다.

 

어느새 난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차츰차츰 변해가고 있었나 보다

마치 내 어머니가 우릴 위해 하셨던 것 처럼...

 

나도  어쩔 수 없는 내 아이들의 '엄마'라는 걸

한 남자의 '아내'라는 걸

생활 속에서 수시로 느끼며 살고 있는 요즈음,

친정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던

젊음 날의 내 다짐은

과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진 모르지만

내 아아들을 위해 하는 모든 것들이

즐겁다고 느껴지는 걸 보면 나도 천상 어미는 어미인 모양이다.

문득 내 엄마는 우리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즐거워하시며 고생을 사서 하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쩌면 그 분의 삶이 '고생' 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위로해 보기도 한다.

우리 형제들이

친정어머니의 '희생적인 자식사랑'을 가슴 가득 기억하듯

내 아이들도 훗날

나의 사랑을 그렇게 여겨줄까...

'무늬만 엄마'라는 후배들이 붙여 준 내 별명이

이젠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단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정말 가족들을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해보리라.

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영양식단을 짜 보고

그들을 위해 좀 더 내 몸을 움직여 보자.

내가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묘책을 강구해 보는 건 어떨까...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우리 가족'을 위한 삶.

'행복'이란 게 뭐 별 건가,

어쩌면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 또한

너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