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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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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BY 이쁜꽃향 2003-08-15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해야만 했다.

처음 내 인생의 청사진대로라면야

대학원도 가고 유학도 가고 학문의 길을 택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여건이 날 한가로이 놔 두질 않았다.

명색이 총학생회장이었는데...

남보다 더높은 꿈을 가졌었는데...

 

연로하신 부모님의 신세를 더 질 순 없었다.

아니 그 보다도

아래 두 동생들을 나 몰라라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취업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가족들을 돌볼 겨를도 잠시,

운수 더럽게도(?) 그림자처럼 귀찮게 뒤쫓는 남자가 생겨

계획에도 없는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도 내 꿈을 채 펼쳐 볼 수도 없는 나이에...

 

정말

결혼은 여자의 인생에 많은 걸림돌이 되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

내게 결혼의 첫 인상은 그런 거였다.

늘 부모님 애간장을 끓이는 남동생과 아직은 어린 여동생.

그들은

결혼한 내겐 항상 신경이 쓰이는 애물단지였다.

때로는 귀찮기까지 하였다.

 

삶에 부대끼며 사는 사이에

어느새 세월이 흘러 나도 이젠 쉰을 바라 볼 나이.

막내 여동생도 마흔이 넘었나 보다.

그 사이

아이들 키우랴

직장 일 하랴 허겁지겁 사느라

그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가를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 왔다.

 

때로는 동생들의 못마땅함을

어머님께 푸념으로 대신하곤 했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언짢으셨을까...

당신께는 모두 다  소중한 자식인 것을...

자신이 당해 봐야 안다더니

아들넘 둘 키우다 보니

이제야 내 어머님의 속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거 같다.

 

바쁘다는 이유로 조금은 무관심하게 사는 사이에

이별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내 곁을 떠나버리신 어머니.

일순간에 나 홀로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캄캄한 벽들 사이에 갇혀 버린 암흑천지 바로 그것이었다.

남편이 죽었다해도 이 만큼 허탈할까...

이토록 가슴이 에일까...

미칠 듯한 가슴저림에

보고싶은 엄마 생각에  참다못해 수화기를 든다.

 

별 일 없니...

애들은?...

이서방은...?

태연한 체 느릿느릿 말을 꺼내는 수화기 저 편의 여동생의 목소리도 이미 가라 앉는다.

말 끝을 흐리다 결국은 터뜨리고야 마는 통곡.

나도 울고 막내 여동생도 울고...

 

이제서야 혈육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알 것 같다.

이 세상에 뎅그마니 나 홀로  두지 않으시고

아우들을 함께 남겨 주신 내 어머님께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함께 어머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혈육을 주시어 얼마나 고마우신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내 핏줄이 이렇게 소중한 줄을...

내게 너무나 커다란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아무리 속 썩이는 동생일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뜬금없이 전화하는 이 언니의 마음을 내 동생은 알리라.

언니가 또 엄마 생각이 나는가 보구나...

언니가 또 마음이 울적한가 보구나...

 

승희야!!

이 세상에 내 동생으로 네가 건재해있다는 현실이 너무나 고맙기만 하다.

나 홀로 외롭게 울지 않아도 되고

내 우는 마음을 함께 울며 달래 줄 내 핏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순간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건강하게 오래 오래 서로의 그리운 엄마가 되어주며 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