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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가 하나도 벅찬데


BY 살구꽃 2020-12-09

어제 세상에 이런일이를 보는데. 지적장애 1등급 쌍둥이형제가 있는집 사연을 보여줬다.
딸도 하나있고.애들이 총 3 남매고. 부부가 쌍둥이 형제를 돌보는데 애를 쓰는걸 보니
참말로 저런거보면 자식이 건강한것만도 얼마나 감사하고 살일인가 다시한번 느꼈다

형제가 말도 못하고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는 상황이고 28살 청년들이고 힘은 장사요,
먹는것도 얼마나 잘먹던지.지능이 2살아가들 수준정도라니..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
애들도 인물도 괜찮던데.그나마 다행이라면 애들이 사지육신은 그래도 멀쩡하니 다행이다 싶더라 부부가 너무 힘들거 같은데 그래도 애들에게 짜증도 잘 안내고. 보살피는데.

보면서 참 안타깝고, 나같으면 하루도 저러고 못살겠다 내가 지쳐 금방 나가떨어질거 같았다.
그 엄마도 그러는거다 도망가고 싶을때도 많았다고.그런데 어찌 그럴수가 있었겠나
자식이 눈에 밟혀 더군다나 애들이 멀쩡한 애들도 아니고하니,,힘들게 사는집들 너무도많다.

갑자기 돌발사태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니 한시도 애들에게서 눈을 뗄수도없고,
잘때도 아빠는 거실에서 애들 보초를 서며 자는거다.
애들이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도가고. 용변보면 뒷처리도 못해서 해줘야 한다니..ㅠ
..아빠도 신장암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1년전엔가 신장에 혹을 발견했는데.애들땜에 제때 치료도 못하고 시간이 지체하고 있었단다.
어제 검사하는거 나오는데 암이 아니길 간절히 바랬더니 신장암 3기란다,

다행이도 수술만 잘되면 일주일정도 있다 퇴원을 하는가본데. 그저수술도 맘편히 못하는 실정이다.그저 애들 걱정이 앞서니. 애들이 아빠가 안보이면 찾고 밖으로 나가자하고 떼를쓰니.
어제도 제작진 도움받아 애들을 엄마가 하루 보는데.제작진이 애들에게 힘에서 밀린다.
청년들이니. 빈약한 제작진이 질질 끌려나간다. 제작진도 젊은 사람이던데.ㅎ

울아들하고 동갑인데. 애들이 하나도 아니고 저렇게 둘이나 장애를갖고 태어나면 부모가힘들어서 어찌 살라고. 애들땜에 하던 설비업도 못하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일하며 사는부부였다.
애들을 델고 밭에나와서 애들은 차에있고. 밭에도 나와 서성이고 부부는 일하다 애들살피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사는게 전쟁이겠나싶다.

 엄마가 뭐 안해주고 하지말라하면 엄마팔을 비틀고 그런다. 아빠가 그럼 하지말라 그럼안된다고 달래고 엄마 아프다고. 그래도 아픈건지 뭔지 제대로 애들이 인지를 할리가 없지. 암튼 보면서 같이 자식키우는 입장에서 속상하고 안타깝고.그랬다. 남편도 부모를 5살때 여의고 부모정을 못받고 살아서 그렇게 애들에게 잘한다.

자기가 부모정을 못받아서 얼마나 한이됐겠나 그래서 그렇게 부모정을 느끼게 해주는거다.
부모정 못받고 살은사람들은 그런게 다 한이되서 내 자식에게만은 뭐든지 해줄수있는건
다해주고 싶은게 부모맘이다.나도 그렇듯이, 그래서 나도 하나뿐인 아들에게 내가 못먹고 못써도 다해주고싶고, 아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키웠다.

울아들도 어릴땐 참 많이 병원깨나 들락거리고 나를 애간장을 많이녹였지만, 애기때 열경기로 그때 정말로 집앞에 한의원 이 있어서 아들을 살렸지 안그랬음 울아들도 그때 어디가 하나 장애를 입었던가 하마터면 큰일 치룰뻔 했던 경험이있던지라 열경기 심해서 눈이 돌아가고 사지가 굳어가는데.,.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한의원 원장이 침을 찌르고 조치를 바로 해줘서 애가 살아났다. 두고두고 한번씩 생각나면 원장님께 참 감사하다.

아들 살려줘서 담날 병원에 원장님께 감사하다고 음료수 한박스 사다가 드렸던 기억이있다.
울아들은 꼭 그렇게 애기때 감기만 조금와도 열이나고.폐렴까지 동반되고 장염까지와서 나를 애를 먹였었다. 애을 초유를 못먹여서 더 면역력이 약해서 그런거 같단 생각을 했었다.
젖한번 못물리고 나는 젖을말리는 약을 먹어야한대서 그렇게 했다.

애는 인큐베타에 들어가고 나는 임신중독으로 죽네사네하고 그러는 상황에 젖몸살이 애낳는 고통보다 더하다고 병원에서 어찌나 겁을 주던지.젖을 짜볼 생각도 못했다.
산모나 태아 둘중에 하나를 포기할지도 모를 상황이 온다고하며 겁을 주며 남편에게 의사가 막뭐라하고 남편도 그때 아마도 식겁했을거다.ㅎ

내가 너무 아파서 하긴 아들이에요 간호사 목소리듣고도. 좋은건지 실감도 안나고 나는 설사는 줄줄해대지 머리는 깨질거처럼 아프지 혈압은 높지..미처 관장을 못하고 급하게양수가 터져서 애를 낳으러 가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다.

예정일을 한달을 남겨두고 그런일이 터졌으니 친정에서 시댁에서 다들 새벽에 놀래서들 서울로 엄마랑 올케언니가 둘이 올라오고, 딸하나 있는거 울엄마는 저러다 잘못될까싶어. 다시는 애낳지 말라고.ㅎ둘째를 내가 그래서 무서워서 갖지를 못했다.

두번째도 임신 중독이 걸릴 확률이 높다고 의사가 말해서 나는 의사말을 따랐다.
엄마가 애갖어 잘먹고해야 애가 잘크고 건강한애가 나오는 법인데..ㅠ 내가 편식이 너무 심해서 안먹어서 애가 못크고 결국 임신중독증으로 애를 미숙아로 낳아서 우리둘다 죽다살았으니.

지금도 울아들 낳던 93년도 일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ㅎ 애는 작게낳아서 크게 키우는거라사람들은 말하지만 작아도 너무작은 ,1,6키로 미숙아를 보며 아들에게 얼마나 죄스럽고 네가 건강하게만 아무탈없이 병원에서 퇴원하면 내가 젤로 좋은 엄마가 되주고네가 해달란거 다해주고 그럴거라고, 너에게 최선을 다해서 키우리라 다짐하며 아들을 두고 나는 병원에서 먼저 퇴원해 나와서 엄마집가서 엄마가 해준 호박물을 마시며 내몸에 퉁퉁부은 붓기를 빼고 엄마집에 딱 일주일 있다가 다시 내집 서울로가서 남편 밥해주고 아들은 인큐베타에서 3주를 살다가 집으로 데려오고 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몸조리를 더 했어야 하는데 못해서 지금도 찬바람이 불면 다리가 시리고 그렇다.
그렇게 나를 애간장 녹이던 하나뿐인 아들이 지금은 저렇게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줘서 너무도 감하며 살고있다.

착하고 성실하고 건장한 청년이되어 사회의 일원이되서 지금 열심히 일을 배우고있는 아들이
그래서 늘 대견하고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