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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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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사랑한다


BY 선물 2014-05-23

고맙다, 사랑한다.

요즘 귀에 달고 사는 말이다.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은 어머님이시다.

어머님 사랑의 대상은 여럿이지만 그 중 가장 빈도수가 많은 것은 남편과 며느리인 나이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랑의 표현을 거부했다.

그런 말씀 안하셔도 돼요.

민망한 듯 거북한 듯 살짝 찌푸린 미간을 예리한 어머님이 놓치실 리가 없다.

그래도 언짢은 기색 하나 비추지 않는다.

 

에미야, 이 말을 하고 사는 것이 그렇게 좋은 거란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하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

나는 어머님의 말씀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저 길고 가늘게 네~~ 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남편은 네, 저도 사랑해요 응답하지만 나는 그 답을 해드릴 수가 없다.

열에 한번 정도는 정말 어쩔 수 없이 겨우겨우 저도 사랑해요, 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어렵고 어렵게 하는 말임을 모르실 리가 없다.

 

어머님은 세상을 전화로 만난다.

그리고 전화로 만나는 모든 이에게 고맙다 사랑한다, 맘을 전한다.

대부분 저도 사랑합니다, 라고 따뜻한 응대를 하지만 개중에는 마지못한 표현임이 드러나는 분들도 있다.

 

갱년기라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불면의 밤이 오면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비집고 나온다.

내일은 어머님께 조금 더 시간을 내 드리고 한 번 더 사랑합니다, 해 드리자, 크게 어려운 일 아니니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한다.

그래, 내가 그리 모진 사람은 아니지, 스스로 위로하면서.

하지만, 막상 아침에 어머님 얼굴을 뵈면 그것은 다시 크게 어려운 일이 되어있다.

 

몇 달째 침대에서 누워계시는 어머님.

나오셔서 이 것 저 것 간섭을 하셔야 내가 살아 있구나, 느껴지실 분인데 저리도 꼼짝 못하시니 답답도 하시련만 어느 새 적응되셨는지 오히려 평온해 보인다.

대소변을 받을 때면 몹시 미안한 기색으로 고맙다 사랑한다, 꼭 말씀하신다.

자식에게 미안하다, 하는 말 대신 고맙다, 사랑한다, 라고 하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며 미안함을 그리 표현하시는 것이다.

어머님에 대한 대소변 수발은 남편이 거의 다 하는 편이지만 그것이 시간을 정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아내야 할 때도 제법 있다.

남편은 본인의 어머니라 그런지 힘든 내색을 감추지 않는 편이다.

목욕도 남편이 살뜰하게 해 드리고 드시는 것도 남편이 더 잘 챙겨 드리지만 어머님은 며느리인 내가 해 드리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아들은 살뜰히 해 드리는 대신에 어머님을 위한 잔소리도 하게 되고 힘든 내색도 비추지만 며느리는 무심한 대신에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고 싫다 하시는 것은 더 권해 드리는 법 없으니 차라리 편하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냄새가 나도 허리가 아파도 어머님 시중 들 때 힘든 내색 싫은 내색 비추질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 잘해 드리려고 애쓰지 않는 대신 어머님 마음이라도 불편하시지 않도록 배려해 드린다.

그런 무심함이 서운하기보다는 더 편안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생활하시니 부엌이나 거실도 바깥세상이 되어버린 어머님께는 나라도 한 번 더 말 붙여 드리는 것이 큰 위로가 되겠지만 솔직히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것을 행하고 싶지가 않다.

내 평화를 지키고 내 마음을 보살피는 이기적인 내가 되는 것이 어머님 수발을 들면서 더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길이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역설적인 비결이기 때문이다.

 

대신 따님들이 어머님을 자주 찾아 하룻밤 주무시며 어머님 말벗도 해드리고 우리도 위로해 주신다. 오실 때마다 반찬이나 과일 등을 한 수레씩 가져 와서 냉장고를 채우고 비타민이나 화장품 등을 내 손에 건네주신다.

어머님 병원비나 돈 드는 일에도 기꺼이 감당을 해주신다.

그러고도 늘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신다.

그러니 나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겠지.

더 싸늘하게 식을 것을 조금 둔화 시키는 것이겠지.

 

형님, 저는 어머님께 사랑합니다, 라는 말이 안 나와요, 그 말씀 듣기가 거북해서 하지 마시라고까지 했네요.

나의 고백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지금처럼만 해 달라고 하신다.

형님들은 나처럼 절대 못 하실 것 같다며 참 고맙다 하신다.

닫힌 내 마음의 배경을 이해해 주시는 형님들도 고맙다.

그런데 나는 정말 끝까지 그 말을 해 드리고 싶지 않을까, 때때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