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 아팠으면 좋겠다.
시름시름 찔끔찔끔 아프지 말고 제대로 한번 아팠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열감기가 제격이다.
열은 내 몸을 몽둥이에 맞은 사람처럼 만든다.
다른 아픔은 아직 나를 혼미하게 만든 적이 없다.
고열에 시달릴 때만 맛보게 되는 감미롭고도 평화로운 고통.
그것이 달다.
옴짝달싹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편안히 누워 책 읽을 수 있는 기쁨도 당연히 요원하다.
그야말로 아픔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고통이 지배하는 내 몸은 판단능력도 마비시키고 만다.
오한이 들어 덜덜 떨리면 이불을 뒤집어쓴다.
이불 속에서 느껴지는 단내.
물기 가득한 눈.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모두 귀찮아지고 평소 짓누르는 모든 책임감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는 순간.
손 하나 꼼짝할 수 없고 입술 한번 달싹이기조차 한없이 버거운 상태.
자주는 아니지만 나, 가끔은 그렇게 흠뻑 아프고 싶다.
온전히 나만을 추스리기에 급급한 시간을...
그렇게 앓은 뒤 개운한 깨어남을 누리고픈.
2009년 3월 30일